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고향임 명창, 추임새와 함께 8시간 완창 대성공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청중으로부터 터져나온 ‘대명창’ 연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아이고 나 못 살것다! 이얘 방자야 너와 나와 우리 결의형제 하자. 야, 방자 형님아, 사람 좀 살려라!” “도련님, 대관절 어쩌란 말씀이오?” “여보게, 방자 형님, 편지나 한 장 전하여 주게.” 존귀하신 도련님이 형님이라고까지 허여노니, 방자놈 조가 살짝 낫든 것이었다. “도련님 처분이 정 그러시면, 어디 편지나 한 장 써줘 보시오. 일 되고 안 되기는 도련님 연분이옵고, 말 듣고 안 듣기는 춘향의 마음이옵고, 편지 전하고 안 전하기는 소인놈 생각이오니 편지나 한 장 써줘 보시오.”

 

판소리 춘향가 가운데 ‘이도령 편지’ 대목의 아니리(판소리에서 소리와 소리 사이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 줄거리를 설명하는 것) 대목이다. 대전시무형문화재 제22호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 고향임 명창의 이 대목에서 객석의 청중들은 자지러진다. 어제 12월 10일 낮 1시 30분부터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 “2019년도 고향임 명창의 춘향가 완창” 공연에서 있었던 일이다.

 

 

 

소리꾼 한 사람이 한바탕 전체를 소리하는 ‘완창판소리’. 판소리는 매우 긴 줄거리와 독특한 기교 때문에 짧은 기간에 익힐 수가 없는 고도의 예술장르인 것은 물론 한 마당을 완창하려면 길게는 여덟 시간이 넘게 걸리기에 쉽게 도전할 수가 없다. 다만, ‘완창판소리’는 판소리 한바탕 모두를 감상하며 그 값어치를 오롯이 느낄 수 있기에 소리꾼으로서는 평생에 꼭 해봐야 하는 무대며, 판소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청중이라면 꼭 들어봐야 할 공연이라고 한다.

 

국립극장에서는 매달 완창 판소리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어려운 공연은 대부분 젊은 소리꾼들이 도전하는 무대고, 나이가 있는 소리꾼들의 경우는 제자들과 분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63살의 고향임 명창은 그 어려운 공연을 과감히 선보였다. 고수도 혼자가 아니라 박근영(대전시무형문화재 제17호), 권혁대(전주대사습놀이 명고부 장원), 최광수(제28회 전주 전국고수대회 대통령상), 박현우(남천예술원 예술감독), 송원조(서울시무형문화재 제25호 판소리고법 보유자), 김규형(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이수자)가 번갈아 가며 북채를 잡을 정도였다.

 

 

 

10년 전인 2009년 고향임 명창은 이미 춘향가 9시간 완창을 해낸 바 있는데 이제 나이 들어 더욱 원숙한 소리로 도전하는 것이다. 고 명창은 무대에 오르자 단가 ‘사철가’로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이윽고 “영웅열사와 절대가인 삼겨날 제 강산 정기를 타고 나는디...” 동초제 춘향가를 시작한다. 원래 ‘동초제’란 김연수 선생이 창시한 유파로 사설이 정확하고 너름새(동작)가 정교하며, 부침새(장단)가 다양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고향임 명창의 완창판소리로 듣는 ‘동초제 춘향가’ 과연 어떨까 200여 명의 청중은 긴장했다.

 

하지만 그런 기우도 잠시뿐, 고 명창의 걸쭉한 소리와 능청맞은 아니리, 그리고 젊었을 때의 연극배우 경력을 뽐내듯 자연스러운 너름새는 청중들을 기어코 사로잡고야 말았다. 이내 청중들은 소리꾼과 하나가 되었다. 마치 대중가요 가수들의 공연장을 보듯 끊임없는 추임새의 연발은 흥분 그 자체였다. 심지어는 옥중가 부분의 ‘농부가’를 부르는 대목에선 소리꾼과 청중은 하나 되어 우렁찬 합창이 되었다. 감동적인 순간이다.

 

 

 

고 명창의 뛰어난 점은 바로 쉼 없는 청중, 고수와의 교감 속에서 꽃 피고 있었다. 아니리 대목을 하려 할 때에 고 명창은 청중에게 묻는다. “아니리 시작하는 게 맞아유?” 청중들은 고함친다. “네!” 고 명창은 고수에게 다가가 “앗따! 북 기가 막히게 치는디!” 고 명창은 ‘1고수 2명창’과 ‘귀명창(추임새로 하나 되는 청중)’의 진리를 이렇게 공연에서 잘 드러내고 그것이 바로 그 어려운 완창을 성공할 수 있도록 한 비결이지 않을까?

 

저녁 시간 청중들은 20분 동안 쉬면서 요깃거리로 배를 채웠지만, 소리가 안 나올까 봐 그것도 삼간 고 명창의 대사투는 밤 11시 20분이 되어서야 끝났다. 무려 8시간 30분 꼼짝 않고 듣는 청중들에게 고 명창은 엄지를 치켜세웠지만, 청중들은 “대명창!”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날 공연을 본 한국전통음악학회 회장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는 “판소리의 여러 가지 조건을 아주 잘 표현했으며, 부족함도 넘침도 없는 공연이었다. 소리란 어느 정도 쓰면 목이 쉰다든지, 변화가 있게 마련이지만 9시간에 가까운 공연 마지막까지도 전혀 지치지 않고 소리 변화 없이 끝낼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의 치열한 정진이 이루어낸 결과일 것이다. 그야말로 집념과 연습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명창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다.”라고 칭찬했다.

 

 

 

 

객석에는 미국 뉴욕에서 왔다는 빈센트 아파(Vincent Apa, 45살) 씨가 눈에 띄었다. 8시간을 꼼짝 않고 공연을 본 연유를 물었다. “사설 모두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전해오는 느낌이 참으로 재미있고, 감동적입니다. 예전에 3시간짜리 판소리를 들어봤고 이제 8시간 완창도 들어봐야 해서 왔는데 정말 대단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서울 면목동에서 온 차상현(54) 씨는 “평소 판소리를 좋아하는데 나도 8시간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왔다. 하지만 8시간이 넘게 앉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청중과 완벽하게 소통하는 고향임 명창의 대단한 소리에 푹 빠질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도 이젠 완창 판소리 공연에 함께 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됐다.”라며 기뻐했다.

 

밤바람이 차가운 깊어가는 겨울밤, 이 시대의 대명창 고향임 소리꾼이 진정한 귀명창들과 함께 8시간 완창 공연을 대성공으로 만든 사건은 그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