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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겨울에 더 잘 보이는 구부러진 나무

고관대작치고 바른 도를 소유한 자 없다
[솔바람과 송순주 2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장생(張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집을 지으려는 생각에 산에 들어가 재목을 찾아보았는데, 빽빽이 들어찬 나무들 모두가 구불구불하게 비틀어져 용도에 맞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산 속 무덤가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앞에서 보아도 곧바르고 왼쪽에서 보아도 쭉 뻗었으며 오른쪽에서 보아도 곧아 보였다. 그래서 '좋은 재목이구나'라고 생각하고는 도끼를 들고 그쪽으로 가서 뒤에서 살펴보니 슬쩍 구부러져 쓸 수 없는 나무였다. 이에 도끼를 내던지고 탄식한다.

 

“아, 재목이 될 나무는 얼른 보아도 쉽게 알 수가 있어 고르기가 쉬운 법인데, 이 나무의 경우는 내가 세 번이나 다른 쪽에서 살폈어도 쓸모없는 나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니 용모를 그럴듯하게 꾸미면서 속마음을 숨기고 있는 사람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 말을 들어 보면 조리가 정연하고 그 용모를 살펴보면 선량하게만 여겨지며 사소한 행동을 관찰해보아도 삼가며 몸을 단속하고 있으니 영락없이 군자의 모습이라고 할 것인데, 급기야 큰 변고를 당해 절개를 지켜야 할 때에 가서는 본래의 정체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마니, 나라가 결딴나고 마는 것은 늘 이런 자들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들은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는 이렇게 얘기해준다. ​

 

“내가 세상을 보건대, 나무가 구부러졌을 경우는 비록 보잘것없는 목수라 하더라도 가져다 쓰는 법이 없지만, 사람의 경우에는 곧지 못하더라도 아무리 정치를 잘하는 시대에도 내버리고 쓰지 않은 적이 없다. 자네도 큰 건물을 한 번 보게나. 마룻대나 기둥이나 서까래는 말할 것도 없고 구름 모양으로 꾸미거나 물결처럼 장식할 경우에도 구부러진 재목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조정을 한 번 보게나. 고관대작으로서 화려한 관복(官服)을 입고는 조정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자들치고 바른 도를 소유한 자는 보지 못하였다. 이처럼 구부러진 나무는 늘 불행하지만 비뚤어진 사람은 오히려 행복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옛말에 활줄처럼 곧으면 길가에서 죽고 갈고리처럼 굽으면 공후(公侯)에 봉해진다.’라는 말도 있는 것이다."

 

위 문장에서 "활줄처럼 곧으면 ~ 공후에 봉해진다."라는 말은 한나라 순제(順帝) 말년에 수도에서 유행되던 동요로서 《후한서(後漢書)》 ‘오행지(五行志) 1’에 나오는 말이란다. 구부러진 나무에 대한 이 같은 글은 장유가 쓴 곡목설(曲木說)이라는 산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

 

장유의 친구 가운데 이모 씨가 있었다. 그는 글쓰기를 좋아하여 일찍이 어떤 사람에게 부탁해서 족제비털로 만든 붓을 얻었는데, 터럭이 빼어나게 가늘고 번질번질 윤기가 흘러 기가 막히게 좋은 붓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붓을 한 번 털어 보니 그 속에 더부룩하게 이상한 점이 느껴지기에 먹을 붓에 적셔 시험 삼아 글씨를 써 보니 바로 구부러져 꺾이고 마는 바람에 글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에 주의 깊게 살펴보니 그 속에 집어넣은 내용물은 대개 개의 터럭으로서 가늘고 윤기가 나는 족제비 털을 겉에다 살짝 입혀 놓은 것이었으므로 마침내 경악하였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 정신을 차린 그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을 만든 사람은 남을 속여 먹는 재주가 뛰어난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아무도 가짜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간사한 상술(商術)이 통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까지 야박해질 수 있단 말인가.”​

 

이에 장유는 다시 말한다.​

 

“자네는 어째서 유독 이런 것만 괴이하게 여기는가. 대저 오늘날의 사대부(士大夫)라고 하는 자들을 보더라도 이 붓과 비슷하지 않은 경우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몸뚱이를 의관(衣冠)으로 감싸고 언어를 그럴듯하게 구사하면서 걸음걸이도 법도에 맞게 하고 얼굴색 역시 근엄하게 꾸미고 있으니, 그들을 바라보면 모두 군자(君子)나 정사(正士) 같게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남이 보지 않는 곳에 있거나 이해관계가 걸린 상황을 만나게 되면 평소의 뜻을 완전히 바꿔 욕심을 마구 부리며 어질지 못한 마음을 품고 불의(不義)한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할 것이다. 대체로 뛰어난 듯 번드르르하게 외양을 장식했지만 그 속은 온통 개의 털로 채워져 있는 것이 이 붓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데, 그들을 살피는 사람들이 제대로 눈여겨보지 않은 채 외양만 보고서 속마음까지 믿어 버리기 때문에 간사한 사람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어도 뉘우쳐 바꾸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장유선생은 1638년에 돌아가셨으니까 이런 글을 쓸 때는 17세기 초반이었을 것이다. 가장 청렴하고 가장 곧은 사람이라고 믿었던 사람이라고 중용을 했다가 나중에 신뢰가 배반을 당하는 사례도 역사 속에는 꽤나 있었다. 그가 걱정한 정치가, 올바른 재목으로서의 곧은 정치가는 예나 지금이나 찾기가 그리 어려운 것인가? 여름에 잎이 무성해서 그 실체를 알 수 없었던 나무의 곧고 굽은 것, 재목과 비재목의 구분이 가을 이후 겨울이 되면 보다 분명해진다. 앞에서는 번듯해 보이던 나무들이 뒤로 돌아가 보면 온통 벌레 먹고 흠집 투성이어서 재목은 커녕 불쏘시개로도 적합하지 않은 나무들을 보게 된다.

 

21세기가 시작돼 이제 20년을 넘는 이 시대 지금 우리나라는 확실히 겨울인 것 같다. 뒷모습이 영 아닌 나무들이 앞면의 화려함이 아니라 뒷면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번듯한 재목으로 소문나려던 사람들이 더욱 그렇다. 그저 뛰어난 인재보다도 겉과 속이 다르지 않으며 작은 집이라도 지을 때 쓸 수 있는 재목을 찾아내고 만나는 것에 만족해야 할까? 그런 분들이 이끄는 정치가보다 더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