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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플라멩코의 향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22]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지난달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자양스테이션에서 플라멩코 공연을 보았다. 조그마한 공연장에 들어가니 사방의 벽에는 그림이 걸려있고 그 앞으로 돌아가면서 이동식 의자들이 놓여 있다. 공연은 그 가운데의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무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플라멩코 공연을 바로 눈앞에서 그것도 플라멩코를 추는 무용가의 숨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고, 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바로 앞에서 본 것이다.

 

‘플라멩코’ 하면 정열의 춤 아닌가? 정열의 나라 스페인의 춤이고, 또 집시의 춤에서 유래한 것이니 정열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정열을 더하는 것이 탭댄스처럼 신고 있는 구두를 바닥에 다닥다닥 부딪치며 소리를 내면서 춤을 추는 것이다. 그래서 그 소리를 좀 더 잘 내기 위해서 바닥에 판까지 깔았다. 무용가가 한창 절정에 오르며 발을 구를 때에는 발 구르는 것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발을 현란하게 놀리고 있다.

 

 

내가 어떻게 해서 이런 플라멩코까지 보게 되었는지에 대해 얘기해야 하겠다. 이 공연을 기획하고 주최한 블루로터스 최혜원 대표가 한 번 보러 오라고 초대하였는데 최 대표는 원래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쟁점》이라는 책도 낸 사람이다. 나는 10년 전에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었다. 그래서 이번에 그 독후감도 보내주려고 블로그를 검색하니 안 나온다. 아! 이런! 그 때 독후감을 블로그에 올리지 않은 모양이다. 다만 그 얼마 뒤에 거제도 갔다 온 이야기를 하면서 최 대표에 대해 언급한 부분만 아래와 같이 검색이 되었다.

 

“《미술쟁점》이란 책을 쓴 최혜원님은 알고 보니 바로 나와 함께 '몸살림 운동'을 하고 있는 분이었다. 같이 운동을 하면서도 이 분이 그 분이라는 것은 전혀 생각을 못하다가, 이를 알게 되니 무척 반가웠다. 내가 읽은 책의 작가분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경험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공연 얘기로 돌아와서, 처음에는 플라멩코 무용가 로사, 안주희, 김지현 세 분이 기타리스트 강정민의 기타 연주와 플라멩코 가수 김지선의 노래에 맞추어 ‘세비야냐스’라는 춤을 춘다. 여기서 안 것은 플라멩코 춤을 바일레(Baile), 노래를 칸테(Cante)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김지선씨가 알레그리아스(Alegrias), 안주희씨가 쏠레아(Solea), 로사가 띠엔또스(Tientos)라는 바일레로 플라멩코의 진수를 보여준다. 플라멩코 가수 김지선씨도 춤 없이 자신의 독무대로 땅고 데 띠띠(Tango de Titi)라는 칸테를 부른다.

 

그리고 순서 중간 중간에는 최혜원씨가 사회자로 나와서 공연자들과 다음 공연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노련한 최대표의 설명만 들어도 앞으로 나올 춤에 대한 기대가 저절로 올라간다. 최대표가 설명 중간에 퀴즈를 하나 냈다. 발레, 바벨탑, 마천루 등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그의 말로는 모두 하늘을 향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플라멩코는 그 반대로 땅을 향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플라멩코 무용가들은 하늘을 향해 뛰지 않고, 땅을 쓸 듯이 어루만지고, 강렬한 탭댄스 동작으로 대지를 깨우고 있다.

 

플라멩코가 정열의 춤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오늘 공연을 보면서 눈앞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플라멩코의 진수를 맛보니 정말 황홀하기만 하다. 특히 안주희씨는 빨간색 스페인 전통 복장을 하고 춤을 추니 더욱 정열적으로 보인다. 게다가 바로 내가 몸을 굽혀 손을 뻗치면 닿을 수 있는 곳에서 춤을 추면서 치마를 살짝 들어 올려 망사스타킹 신은 다리를 보여주니 숨이 멈출 듯하다.

 

 

독자에 따라서는 내가 허풍을 떠는 것으로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망사스타킹은 중학교 때의 내 개인적 기억과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애들이 중학생이 되면 한창 성에 대한 호기심이 넘쳐날 때 아닌가? 그렇기에 학교에 가면 누군가 가져온 소위 빨간책이 돌기에 이를 안 볼 수가 없었다.

 

나 또한 친구가 보여주는 빨간책을 보았는데, 내가 처음 본 빨간책에 등장한 백인 여성이 망사스타킹을 신고 있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여자 누드를 보는데 그 여자가 망사스타킹을 신고 있으니, 아직 대가리도 완전히 여물지 않은 중1 남학생에게 그것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그런 망사스타킹을 정열적인 플라멩코 무희가 신고 춤을 추니 숨이 멈출 듯 했다는 것이다.

 

로사의 플라멩코까지 끝나니 벌써 한 시간이 훌떡 지나가버렸다. 정열의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르다니 아쉽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세 무용가들이 다 같이 나와 피날레를 장식했다. 같이 추다가도 한 명씩 무대를 휘젓기도 한다. 그런데 세 무용가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니 무대는 더욱 정열적으로 되고 열기가 고조된다. 그야말로 화려한 피날레이다. 이윽고 아쉬운 피날레도 끝나고 잠시 흐르던 정적 뒤에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손뼉으로 화답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에는 플라멩코의 정열의 기운이 아직 남아서인지 훈훈하다. 자연 발걸음도 가볍게 한 발 한 발 집으로 향한다. 가끔 나도 모르게 플라멩코 무용수처럼 신발로 아스팔트를 두들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