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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삶과 책들의 운명, 그 불멸의 역사가 가능한 이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도서관은 이야기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고여 있는 연못이다. 불멸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다.” (24p.)  -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가운데-

 

이 책은 미국의 논픽션 작가 수전 올리언(Susan Orlean)이 1986년 4월 29일에 일어난 로스엔젤레스 공공도서관 화재 사건을 다룬 책이다. 이 도서관은 로스앤젤레스 사람들이 저녁에 가족들과 십자말풀이를 하다가 정답을 모르겠으면 도서관에 전화해 물어보고, ‘넥타이가 욕조에 빠졌어요’를 스페인어로 어떻게 말하는지를 물어보는 등 온갖 사소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 도서관이 없으면 못살 것 같은 사람들의 자랑스러운 도서관이었다.

 

 

그런 도서관이 섭씨 1,100도까지 불길이 치솟으며 장장 7시간 38분 동안 활활 타버리는 대참사를 지켜보았을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상상조차 어렵다.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도서관 화재 사건이었지만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묻혀 로스엔젤레스 지역에서만 크게 보도되는 바람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수전 올리언은 도서관에서 불 냄새가 나지 않느냐는 사서의 말을 듣고 호기심에 이 사건을 조사하였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증언을 듣고, 범인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큰 줄기로 삼으며, 그 사이에 미국의 공공도서관 체계와 역사, 지역사회에서의 역할 및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등을 적절하게 구성하였다.

 

방화범이 누구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물에 젖은 책을 복원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당초 도서관 건축과정에서부터 화재 후 도서관 복원에 힘쓰는 사람들의 모금과 자원봉사까지 성숙한 시민들의 위기대처 방식도 다루었다.   작가는 도서관 화재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드나들었던 도서관의 추억을 떠올리며, 생명체로서의 책과 도서관의 존재를 자각한다.

 

도서관을 발전시킨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흥미롭다. 열여덟 살에 관장으로 임용되어 도서관을 발전시킨 메리 포리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해임당하여 여성들의 공분과 항의를 불러일으킨 사건, 도보여행으로 화제를 모으며 기행을 일삼았던 작가이자 언론인인 찰스 러미스의 업적 등 우리가 알지 못하던 초기 미국 공공도서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도서관 터주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는 노숙인 문제와 소지품 도난이나 컴퓨터 사용 시간 때문에 이용자와 실랑이하는 모습은 현재 우리나라 공공도서관과도 너무 흡사한 풍경이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기금을 모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직원들은 낮이고 밤이고 이용객들을 상대하면서 서고에서 일하는 게 어떤 것인지 행정부와 도서관 위원회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 사서의 말은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이어서 도서관 사서라면 누구나 공감할 얘기이다. 

 

 이 화재로 로스엔젤레스 공공도서관은 수많은 ‘보물’을 잃었다. 프랑스 판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가 실린 1860년대판 ‘돈키호테’를 비롯하여 성경, 기독교, 교회사에 관한 책, 인물 전기 및 영미 지역 희곡, 세익스피어 선집, 과학 관련 원고, 특허 목록 550만개, 문학작품 5만 5천권, 경영관련 도서 9천여권, 사회과학 도서 1만 8천권, 요리책 1만 2천권, 예술 간행물 및 예술관련 도서, 조류학 분야 소장도서 전체 및 사진 2만여 점 등 불타거나 훼손된 책은 분관 15개의 장서를 모두 합친 것과 맞먹었다.

 

만약 우리 도서관에 화재가 발생하여 이런 귀한 자료가 모두 불탄다면, 시대의 역사와 문명을 담은 그 책들을 어디에서 다시 구한단 말인가. 눈앞에서 책이 불타는 광경을 무기력하게 지켜만 봐야했던 사서들이 후에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고 개인적인 삶 마저 무너지는 내용은 사서들의 삶에 도서관과 책이 주는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게 한다.

 

  이 책의 원제는 <The Library Book>, 즉 ‘도서관 책’이다. 처음 책장을 펼쳤을 때 깜짝 놀랐다. 이제는 이미 사라진 ‘북 포켓과 북 카드’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장(章)을 나누면서 내용에 해당하는 도서 목록을 기술하고, 청구기호까지 표기한 것은 저자가 전해주는 참고문헌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에 도서관 서가에 꽂힌 책은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도서관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이 책을 집필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갔다. 그녀는 연기 자욱한 건물 안에서 문밖으로 책을 나르는 시민들을 ‘시민들로 살아있는 도서관’을 이룬 것 같다고 묘사하였다. 1993년 도서관은 재개관하였고, 책과 도서관 그리고 지역사회는 부활하였다. 도서관의 삶은 불멸의 역사인 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정신과 영혼에 각자의 경험과 감정이 새겨진 책이 있다고 하였다. 각 개인의 의식은 스스로 분류하여 내면에 저장한 기억들의 컬렉션이자, 한 사람이 살아낸 삶의 개인 도서관이라는 것이다. 이는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으며 우리가 죽으면 불타 사라진다. 그러나 세상과 공유하게 되면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충격적인 도서관 화재 사건을 매개로 미국의 공공도서관의 역사와 역할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 이 책은 도서관에서 또 하나의 생명이 되어 서가에서 숨 쉴 것이다.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수전 올리언 지음, 박우정 옮김, 글항아리

<자료: 이정수, 서울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