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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법정스님과 성철스님 누가 셀까?

병산, 스위스인에게 ‘한국엔 노래 잘하는 그룹 많아’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20>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삼위일체 대성당을 구경하고 사람들에게 생명탈핵 유인물을 나눠주면서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지하도를 건너는데 벽에 그림이 잔뜩 그려져 있다. 그림 아래에서는 거리의 악사가 음악을 연주하고. 다리를 다시 건너와서 트빌리시 구시가지의 골목길을 지나왔다. 카페와 식당, 그리고 기념품 가게가 많았고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도 많았다. 오래된 종루에서 시간에 맞춰 종을 치는 행사를 하는데,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다. 나는 사진을 찍는 관광객을 사진 찍었다.

 

 

 

저녁 식사는 숙소 바로 앞의 식당에서 현지 음식을 주문하여 먹었는데, 천막을 치고 야외에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병산이나 나나 여행 체질이어서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식사를 끝낸 후에 테이블에 앉아서 행인들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조금 있으니 식당 앞마당에서 공연한다. 남자 무희와 여자 무희가 나와서 음악에 맞춰 전통춤을 춘다. 춤은 한 10분 정도 짧게 추는데, 손님을 끌기 위한 무료 공연이다. 30분에 한 번씩 나와 춤을 춘다고 한다.

 

 

테이블 앞자리에 중년의 외국인이 앉더니 맥주를 주문하여 마신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되어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니 스위스에서 온 여행객이다. 스위스 남자는 다른 곳에서 이미 한 잔 걸치고 온 듯, 얼굴이 발갛고 말을 하는데 혀가 약간 꼬부라진 것 같다. 연신 담배를 피워댄다. 민폐였다. 내가 민폐를 참고서 이야기를 걸어보니 그는 횡설수설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자기는 30년 전에 서울의 남대문 시장에 갔었다고 한다. 트빌리시에는 부동산을 사려고 왔다고 한다. 이것저것 말하는데 조리가 없다. 그는 자기가 6개 국어 (스위스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영어, 히브리어)를 할 줄 안다고 자랑한다. 그러더니 스위스 남자가 나에게 묻는다.

 

“조지아와 한국 어디가 더 좋으냐?”

나는 외교적인 답변을 했다.

“스위스가 더 좋다.”

그러자 다시 엉뚱한 질문을 한다.

“한국 여자와 조지아 여자는 누가 더 예쁘냐?”

이 친구가 술에 취했나? 조금은 심술이 났다.

“너의 부인이 더 예쁠 것 같다.”

 

그랬더니 부인 자랑을 한다. 자기 부인은 예루살렘 연구소에서 근무하는데 유전공학 박사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도 조지아 여행을 끝내면 예루살렘에 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더니 우리에게 자기가 손말틀(휴대폰)로 찍은 조지아 전통 무용을 보여주면서 한국 여자들은 춤을 잘 추느냐고 묻는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병산이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병산이 말하기를 “너는 교황을 만난 적이 있느냐? 나는 서울에서부터 걸어왔는데, 내년 8월까지 로마로 걸어가서 교황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서 병산은 그 친구에게 블랙핑크를 아느냐고 물었다. 블랙핑크? 방탄소년단은 들어 봤어도 블랙핑크는 나도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 친구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병산은 손말틀을 꺼내어 유튜브로 들어가 블랙핑크의 공연을 보여준다. 블랙핑크는 한국의 걸그룹인가 보다. 병산이 그 친구에게 “한국에는 블랙핑크보다 노래를 잘하는 그룹이 많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더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다시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를 싫어하는 병산이 숙소로 들어가자고 말했고 우리는 그 친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숙소로 들어온 병산이 말했다. “그 녀석이 우리를 깔보아서 내가 한 방 먹였다.” 나는 그런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병산은 생명탈핵 실크로드를 걸으면서 외국인을 많이 만났고, 그러다 보니 외국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독심술을 연마한 것 같다. 병산의 말을 듣고 보니 그 친구가 우리를 깔본 것 같기도 하다. 왜 그 친구는 우리에게 그런 엉뚱한 질문을 했을까? 병산의 설명은 그 친구가 서양인으로서 동양인인 우리를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권력을 가진 자처럼 행동했다는 것이다.

 

병산의 주장에 따르면 권력은 마약과 같다. 누구나 권력에 취하면 마약에 취한 것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권력을 싫어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못 보았다는 것이다.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부자이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성직자이거나 평상인이거나, 누구나 조그마한 권력이라도 가지게 되면 좋아하게 되고 또 놓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인류사의 수많은 전쟁도 권력을 더 가지기 위한 투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수원대 사례에서 보듯이 비리사학이 물러나지 않는 것도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권력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권력욕은 명예욕과 통한다고 생각한다. 권력욕이나 명예욕을 떨치기 어려운 것은 그것이 자기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은 욕구가 권력욕이 되고 명예욕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겪었던 일화를 하나 소개한다.

 

어느 날 나는 독실한 불교 신자인 ㅈ 교수에게 평소 궁금했던 질문을 하나 던졌다.

“법정 스님과 성철 스님은 누가 더 셉니까?”

이것은 장난스러운 질문이 아니다. 나로서는 매우 진지한 질문이었다.

ㅈ 교수가 나에게 되물었다.

“교수님은 누가 더 센 것 같습니까?”

법정스님을 좋아하는 내가 평소의 생각을 말했다.

“나는 법정 스님이 더 훌륭하신 것 같습니다. <무소유>를 비롯한 좋은 책을 많이 써서 수많은 국민이 그 책을 읽고서 공감하고 법정스님을 좋아하고 또 불교를 긍정적으로 보게 되었을 것 같아요.”

 

그러자 ㅈ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불교계 밖에서는 법정스님이 더 많이 알려져 있고, 또 법정스님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계 내에서는 성철 스님을 더 훌륭한 스님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내 예상과는 다른 답변이었다.

“아, 그래요? 왜 성철 스님이 법정 스님보다 더 훌륭하다고 평가하나요?”

그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인간의 기본 욕구에는 식욕, 성욕, 물질욕, 그리고 명예욕 등이 있습니다. 수행하는 스님으로서 식욕이나 성욕은 절제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절에서는 공동으로 식사하면서 반찬은 3가지를 넘지 않으니 식욕 절제는 저절로 해결됩니다. 조계종에서는 결혼을 안 할 사람만 스님이 되니 성욕 절제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가끔 성욕을 억제 못 하여 파계하고 절집을 떠나는 스님도 더러 있기는 합니다만.

 

그다음, 물질욕은 쉽게 말해서 돈에 대한 욕심입니다. 일반인들도 그렇지만 스님으로서도 물질욕은 억제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큰 절의 주지스님 정도가 되면 관리할 수 있는 돈이 엄청나고, 주지 자리를 맡으려고 경쟁도 치열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법정 스님이나 성철 스님은 물질욕은 떨쳐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명예욕입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떨치기 어려운 것이 명예욕 아닐까요?

 

명예욕이란 자기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려는 욕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법정 스님은 수많은 책을 내고, 또 신문에 칼럼도 많이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책까지 내셨지요. 책을 내는 행위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책을 쓰는 행위는 불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명예욕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를 알아 달라, 내 생각을 알아 달라는 욕구가 명예욕이고 책을 쓰는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봅니다.

 

성철 스님은 상ㆍ하 두 권으로 된 <백일법문> 외에는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백일법문>도 스님의 법문을 모아서 출판한 것이지요. 성철 스님은 심지어 제자들에게 ”책을 읽지 말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남의 생각을 써놓은 책을 읽는 것보다는 수행하여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겠지요. 성철 스님을 만나려면 3,000배를 해야 했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지요.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성철 스님은 명예욕까지도 떨쳐버렸는데, 법정스님은 그러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성철 스님이 세다는 ㅈ 교수의 설명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