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토지수탈자 무라이 기치베와 경남인의 저항

김정태ㆍ김용환ㆍ김우현ㆍ김성도 애국지사, 만세운동으로 저항
[맛있는 일본 이야기 544]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무라이 기치베(村井吉兵衛, 1864~1926)라는 사람을 일본 위키에서 찾아보니 ‘일본의 실업가, 명치시대의 담배왕, 무라이재벌을 이룬 사람’ 등으로 적어 놓고 있다. 이런 식의 기술대로라면 이 인물은 그저 평범한 일본 재벌의 한 사람쯤으로 이해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무라이 기치베는 일본 땅에서 실업가로 사는 것도 부족해 한반도로 건너와 무라이농장을 시작으로 경상남도 일대의 엄청난 토지를 소유하여 조선인들을 소작인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람이다.

 

그가 한국으로 건너와 경상남도 지방에 눈독을 들인 것은 경남 지방이 당시 항만 물류기지인 부산과 진해에 인접해 있어서 농장에서 거둔 소작료나 생산품을 일본으로 빼돌리기 쉬운 이점이 있어서였다. 한편으로 당시 낙동강과 밀양강을 중심으로 자연재해인 홍수가 빈번하여 대규모 미개간지들이 있었기에 이곳에 근대적인 제방을 갖춘다면 농지로 전용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을 염두에 두기도 하였다.

 

 

그는 이러한 셈법으로 정치권 및 관리들과 은밀한 거래를 통해 경남지역으로 진출하여 경남의 경제권을 거머쥐었다. 그 뒤 무라이는 1904년 김해군 하계면 진영리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토지를 집중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하였다. 이 지역은 1905년 1월부터 경부선이 개통되었고 5월에는 진영역이 생겨 김해의 중심도시로 성장할 것을 미리 계산해 두었다.

 

무라이가 현재의 주남저수지를 중심으로 한 창원군 대산면, 동면, 김해군 하계면의 주요토지를 집중 매수할 수 있었던 것은 이토히로부미와 이완용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무라이는 통감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조선인 소유의 토지를 점차 매수해나갔다. 그는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농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그 보상으로 토지 매수를 보장받아 조선인의 피를 빤 악덕 인물이다.

 

 

이 도표에서 보듯이 무라이 기치베의 조선 땅 매수 규모는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토지를 헐값에 빼앗기듯 팔고 소작농으로 떨어진 조선인들은 일제의 수탈 구조 속에서 신음하다가 급기야 3.1만세운동 때 그 분노는 폭발하게 된다. 1919년 3월 29일, 진영 장날 만세시위에서 김정태, 김용환, 김우현, 김성도 지사 등은 김해군 하계면 제1차 만세시위 주동자로 뛰었다. 그대로 주저앉아 일제의 악행을 지켜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정태( 1900-1958) 지사 등은 장터 근방의 흙다리에다 10척이나 되는 장대에 매어 단 대형 태극기를 세워두고, 시장에 모인 2천여 명의 군중에게 태극기와 격문을 나누어주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시위로 김정태 지사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고향 땅을 일본인들의 토지 수탈 마수에 빼앗기고 소작인으로 전락하여 피폐한 삶을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은,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끊임없이 이들의 불법에 저항하며 투쟁하는 삶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