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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허종ㆍ허침 형제 다리에서 낙마, 화를 면하다

종교교회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1]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세종문화회관 뒷길에서 경복궁역 쪽으로 가다 보면 ‘종교교회’라고 있습니다. 종교교회는 캠벨 선교사가 1900년 부활절에 배화학당 기도실에서 처음 예배를 드리며 시작되었는데, 교인이 늘어나면서 1908년 지금 자리에 예배당을 세웠습니다. 역사 오랜 교회지요. 저는 대학 다닐 때 제 고교, 대학 선배가 이 교회에 다닌다고 하여 처음 ‘종교교회’라는 이름을 접하였습니다.

 

처음에 종교교회라고 하니, 당연히 ‘종교(宗敎)’가 먼저 떠올랐겠지요? 그래서 “굳이 교회 이름에 ‘宗敎’라는 이름을 쓸 필요가 있나?” 하며, 피식 웃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宗敎’교회가 아니라 ‘琮橋’교회였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종다리교회’가 될 텐데, 교회 이름에 다리 ‘橋’자가 들어가는 것도 여전히 특이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 여기에 ‘종침교(琮琛橋)’라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청계천의 상류 부분인 백운동천과 백운동천에 합류하는 사직동천이 여기에 있어서 이를 건너가는 종침교라는 다리가 있었던 거지요. 백운동천과 사직동천은 지금은 복개되어, 그곳을 지나다녀도 여기에 시내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종교교회가 들어설 무렵에는 이미 사람들이 ‘종침교’를 줄여서 ‘종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1908년 이곳에 예배당을 세우면서 근처에 있던 다리 이름을 그대로 교회 이름으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종침교’라는 다리 이름에도 재미있는 유래가 있습니다. 종침교는 허종, 허침 두 형제의 이름을 따서 종침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 형제가 다리를 건설하였기에 종침교라고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들 형제가 말을 타고 이 다리를 건너가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쳤기에 종침교라고 한답니다. 말 타고 다리를 건너가다가 떨어졌다고 다리 이름을 사람 이름으로 하나? 단순히 이것만으로 사람들이 다리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면, ‘별 싱거운 사람들 다 보겠다.’ 하겠는데, 그들이 말에서 떨어진 사연이 재미있기 때문에 그들 이름을 따서 다리 이름을 부르게 된 것입니다.

 

성종의 아내였던 폐비 윤 씨 있지요? 윤 씨는 부부싸움을 하다가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냈습니다. 지엄한 임금의 얼굴에 상처를 냈으니 조정에서는 윤 씨를 쫓아내야한다고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윤 씨가 오죽했으면 임금의 얼굴에 상처를 냈겠어요? 성종이 워낙 바람을 피우고다니니 말다툼을 하다가 홧김에 얼굴을 할킨 것이겠지요. 성종은 몰래 궁을 빠져나가 밀회를 즐기기도 하였다지요. 어쨌든 성종은 윤 씨를 폐비(廢妃)하는 문제로 신하들을 소집하였습니다.

 

자아~ 임금의 소집령이 내렸으니 안 갈 수도 없는 법. 그런데 다들 폐비를 해야 한다는 분위기에서 이를 반대할 수도 없고, 그러자고 찬성했다가 후일 윤 씨의 아들이 왕이 되었을 때 자칫 그 피바람에 휩싸일 수도 있고... 허 씨 형제는 고민하다가 누님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누님의 만류에 말을 타고 입궐하다가 이 다리에서 일부러 말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실수로 딱딱한 돌다리 위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는데, 임금도 강제로 들어오라고 하진 못하겠지요.

 

 

하여 허 씨 형제는 누님 덕분에 뒷날 연산군이 자기 엄마 폐비하는데 찬성한 신하들을 모조리 죽일 때(갑자사화), 그 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내력이 있기에 사람들이 다리 이름을 종침교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들 형제는 고의로 떨어진 것을 당연히 숨겼을 텐데, 결국 사람들이 이를 알게 되면서 다리 이름도 종침교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연산군이 갑자사화를 일으킬 때 이런 내력이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갔다면 이들도 참화를 피할 수 없었겠지요?

 

이들 형제가 갑자사화를 피할 수 있게 해준 누님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 알려진 것이 이 누님이 장수하였다는 것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80대까지 살아도 장수하였다고 할 텐데, 이 누님은 무려 104살까지 장수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허 씨 누님 이외에 조선 시대에 100살 넘어서까지 장수하였다는 사람이 또 있던가요? 물론 있었겠지만, 역사에 전하는 이로서 그렇게 오래 산 사람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종교교회 앞을 지나다 보면 이런 종침교 내력을 적어놓은 표석이 있습니다. 다음에 종교교회 앞을 지나실 일이 있으면 한 번 이 표석도 읽어보고 종교교회도 올려다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종침교가 이 근처 어디쯤이겠지 하면서 허종, 허침 형제 이야기도 떠올려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