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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그리고 행사

고주리 6인 순국선열 무덤에 뫼절하다

늦게나마 올해 초에야 봉분을 돋우고 정비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101년 전 오늘(1919년 4월 15일)은 경기도 화성시 제암리와 고주리에서 29인의 독립운동가가 순국한 날이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추모행사는 취소되었다. 대신 고주리 순국선열6위(김성열, 김세열, 김주남, 김주업, 김흥렬, 김흥복)의 무덤에 조촐하게 헌화분향하였다.

 

 

 

이 무덤에는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 3월 31일 발안장터 만세 항쟁을 주도한 사람들이 잠들어 계신다. 일제는 발안장터 만세 항쟁에 대한 보복으로 4월 15일 근처 제암리에 있는 제암교회에 모이게 하여 출입구를 봉쇄하고 불을 질러 22인을 불태워죽였다. 그리고 그에 항의하는 젊은 부인을 칼로 베어 죽이고 이웃마을 고주리로 달려가 천도교인이자 독립운동가 6명을 칼로 베어 죽인 다음 그 주검을 불살랐다.

 

마을 사람들이 타다 남은 주검을 몰래 수습하여 천덕산을 넘어 십리 밖 덕우리에 뭍었다. 그때 어린 나이로 살아남은 김세열의 아들 김원기의 후손 김연목 선생이 무덤을 지키고 계신다. 음력 3월 15일 한날한시에 돌아가신 여섯 분의 제사를 매년 모시며 살아온 후손의 삶이 어떠했을까 상상하기 힘들다.

 

 

지난해에는 화성시 광복회(회상 안소헌)에서 무덤에 헌화하러 찾아갔었다. 그런데 너무나 초라하고 봉분도 작아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생생하다. 안내 팻말도 허술하고 비석 하나 제대로 세워져있지 않아 찾는데 애먹었다. 100년 동안 그 자리에서 쓸쓸히 묻혀 계셨다.

 

후손들과 광복회에서 수차례 건의하여 올 초에야 겨우 봉분을 돋우고 활개를 조성하고 진입로도 정비하였다. 독립운동가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기리고자 하는 것이다. 늦은감이 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