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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전문가가 일하는 세종 때와 지금의 시스템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45]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현재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코로나19’와 연관한 대응은 주로 처리 주체의 전문성, 뉴스 처리 방법, 사회적 거리 등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각국의 대응전략에서 전문가가 앞에 서서 적극적이냐 그리고 뉴스 처리에 있어 공개적이고, 투명하고 적극적이냐 그리고 사회적 거리를 잘 지켜내느냐다.

 

코로나 해결 방법 비교

 

이번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로 각 나라의 정치 행태와 인명에 대한 자세 등이 비교되어 나타났다. 외국의 현황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응 그리고 시대를 거슬러 세종시대의 환경들을 비교해 보자.

 

이른바 선진국의 의료시스템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정책으로 영국이나 스웨덴이 대표적이다. 영국에서는 NHS라고 하여 국가가 의료를 대신해 무료로 고쳐준다는 것이다. 고쳐주기는 하는데 순번을 받으려면 기다려야 한다. 이 경우 문제는 당뇨, 폐렴, 심장병, 관절염 등 당장은 죽지 않으나 계속 치료해야 할 병은 치료 시기를 놓치기 쉽다.

 

이번에 그 결과가 나타났다. 영국과 스웨덴은 각 개인이 알아서 조심하되 국민 전체가 면역성을 키우면 그 병이 잦아들 것이라고 한 정책의 결과 많은 사람이 코로나에 걸리고 또 죽어갔다. 4월 21일 기준으로 미국은 78만여 확진자에 사망 4만여, 이탈리아는 18만여에 2만4천여, 독일은 14만 6천여, 프랑스는 확진 15만 8천 여에 사망 2만여 명이다.

 

영국이나 스웨덴은 개인이 조심하든지 아니면 병을 이겨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신사도나 여성 배려 등의 좋은 매너를 가진 서구인들이 다음날부터 통제가 된다고 하자 마지막 파티라며 밤늦게까지 거리파티를 즐겼다. 이때 밀집된 상태에서 감염이 상당수 이루어졌을 것이다.

 

일본은 밀폐(密閉)ㆍ밀집(密集)ㆍ밀접(密接)이라 하여 삼밀(三密)을 주의하라고 매체 등을 통해 홍보하고 있다. 정작 시행에서는 구체적인 장소를 적시하지 않고 추상적인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리하여 코로나 확산 경로를 파악하고자 추적 조사를 하면 개인 비밀이라 하며 말하지 않는다. 나아가 자기가 다녀온 술집 이름을 이야기하면 그 집이 문 닫게 된다며 꺼린다.

 

일본의 바[bar}라는 술집은 10여 명 이내의 탁자 몇 개가 밀집한 술집이 많다. 그 집을 알려준다 해도 그 집을 소독하고 며칠 후면 다시 쓸 수 있고 정작 필요한 것은 그날 그 집에 같이 있던 사람을 찾아내 검진을 받게 해야 하는데 확진자 동선 감염경로를 60% 이상 모른다고 한다. 밀폐는 작은 술집, 밀집은 파친코인데 그런 장소도 막지 않는다고 한다. 내세우는 구호와 실제 행정이 맞지 않는다. 21일 우나라 확진자는 10,683명에 사망자 237명인데 일본은 확진, 사망 다 우리를 넘어섰다.

 

우리나라 검진은 정부가 거의 무료(무료, 2만 5천 원, 25만 원 3단계)로 해준다. 하지만, 서구는 무료라는 이름 아래 검사받거나 치료받을 기회가 적은 것이요, 우리나라는 국가 의료보험과 개인의 치료비를 합하여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 사회 시스템이나 의료 시스템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몰랐으나 이번에 자연스레 국제간에 비교로 나타났다.

 

전문가가 일하는가?

 

전염병 같은 환란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면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의학 전문의 질병 담당자보다 아베 수상이나 트럼프 혹은 경제나 법학 전문의 정치인이 앞에 서서 질병을 정치적으로 무마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국민에게 보조금을 주느냐, 얼마를 주느냐, 언제 주느냐가 죽어가는 인명보다 더 중요해 보인다. 미국에서도 일부 지역에서는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나의 목숨은 나의 자유’라고 외치며 봉쇄를 풀라고 데모를 한다.

 

우리나라는 오전, 오후 의학을 전공한 질병본부 담당자가 공개적으로 브리핑을 한다. 전문가들이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가 전문 분야에서 일하게 하는 정신, 이것이 바로 세종시대 집현전 학사와 통유(通儒), 장인(匠人)들이 한 일이다. 유능한 인재는 선비라고 일컫는다. 당시는 글을 다루는 문인이나 손기술이 아닌 이론으로서의 기술도 모두 선비들이 맡고 있었다.

 

선비를 어원적으로 보면 우리말에서 ‘어질고 지식이 있는 사람’을 뜻하는 ‘선’라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선비는 한자어의 사(士)와 같은 뜻을 갖는다. 이에 견주어 한자의 사(士)는 ‘벼슬한다’는 뜻인 사(仕)와 관련된 말로서, 일정한 지식과 기능을 갖고서 어떤 직분을 맡고 있다는 의미가 있다.

 

세종 조에는 여러 분야의 인물이 많았다. 정무의 황희, 영토개척의 최윤덕, 김종서, 천문의 이순지와 장영실, 과학의 정초, 음악의 박연, 훈민정음의 성삼문, 정인지 등 여럿이 있다. 그가운데 선비라 하더라도 통유(通儒)라 불리는 선비가 있다.

 

▪통유(通儒) : (대언이 계사한 것에 대해 박연이 세상일에 통달한 학자라고 말하다) 임금이 대언이 계사(啓事)한 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박연(朴堧)은 세상일에 통하지 아니한 학자가 아니라 세상일에 통달한 학자라 할 수 있다." 하였다.(《세종실록》10/2/20) 통유는 사유(思惟)의 학문만이 아닌 아악이나 풍수와 같은 실체의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실학적 선비에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공장(工匠) : 우의정 정탁으로 도성수축도감도제조를 삼고, 제조 33명과 사(使)ㆍ부사ㆍ판관ㆍ녹사를 합하여 1백 90명을 더 두다. 처음에 병조참판 이명덕이 그 일을 주관하여 여러 도의 일꾼을 합계 43만 명을 징발하였다. ...이에 감하여... 모두 32만 2천 4백 명이요, 공장(工匠)이 2천 2백 11명이다. ... 군사를 거느린 경력과 수령이 모두 1백 15명이다. (《세종실록》 3/12/10) 전문 기술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을 공장(工匠)이나 장인(匠人)으로 불렀다. 세종은 전문가를 키우고 적재적소에서 일하게 했다.

 

세종 조 역질 발생과 대처

 

서울에 역질(疫疾)이 유행하였다.

▪역질 : 이달에 서울과 지방에서 큰 역질(疫疾)이 있어, 죽은 사람이 매우 많았다. (《세종실록》4/3/29)

▪역질 성행 : 서울과 지방에 역질이 성행하였다. (《세종실록》 6/3/1)

 

▪전염 방지 : 서울 안의 진제장에서 기민이 죽은 것을, 처음에 생각하기는 주리고 피곤한 사람이 너무 배불리 먹어서 상한 것인가 하였더니, 요사이 한성부에서 아뢰기를, ‘이처럼 날씨가 따뜻한 때를 당하여 한곳에 모여 있어서, 역기(疫氣)가 서로 전염되어 많이 사망하는 것이라.’ 하기에, 내가 병자(病者)를 활인원(活人院)에 옮기도록 명령하였다. 병이 없는 자는 본가와 친족이 있으면 나누어 주도록 하고,... 비록 역질이 있는 자가 있더라도 서로 전염하지 않도록 하고, 도내에 만일 역기가 있게 되면 이 예에 의하여 조치하라."

 

진제장의 병자에 의해 전염되는 일이 없도록 각도에 명하였다. (《세종실록》19/3/8)

각도에 역질이 도니 수령들에게 구료 처방을 주었다.

 

▪역질 구료 : 임금이 말하기를, "이제 들으니, 각도에 역질이 성행한다고 하니, 수령에게 가르쳐, 구료(救療)에 힘쓰지 아니하면, 일찍 죽게 될 것이니, 내가 심히 민망히 여겨서 향소산(香蘇散)ㆍ십신탕(十神湯)ㆍ승마갈근탕(升麻葛根湯)ㆍ소시호탕(小柴胡湯) 등의 약을 여러 도의 감사에게 하사하여, 본방(本方)에 의하여 구료하라." 하였다. (《세종실록》 1/5/1)

 

▪역질 치료와 처방 : 예조에 전지하기를, "내가 들으니 지방 각도에 역질이 퍼져 있다 하나, 그 고을 수령들이 마음을 써서 살리려고 하지 아니한다고 하니, 그들에게 향소산(香蘇散)ㆍ십신탕(十神湯)ㆍ승마갈근탕(升麻葛根湯)ㆍ소시호탕(小柴胡湯) 등을 약재로 만들게 하게 하고, 의학생도(醫學生徒)들을 시켜서 병이 나는 대로 바로 진찰하여 치료(治療)하도록 하고, 또 각기 그 근처에 있는 무녀(巫女)들을 시켜 아무 때나 출입하며 죽을 쑤어 공급하게 하고, 항상 고찰하여 비명에 죽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하였다. (《세종실록》 6/2/30)

 

▪역질 환자 일 못하게 : 형조에 전지하기를, "공사간에 사용되는 남녀들이 혹은 두진(痘疹), 혹은 역질(疫疾)에 걸린 것을, 병세가 비록 대단치 않다고 하더라도 아직 확실히 쾌차하지 않은 자를 일 시켜, 병이 다시 도져 목숨을 잃게 하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니, 이 뒤로는 병세가 아직 쾌차하지 않은 자는 사역하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 (《세종실록》 16/1/19)

 

형조에 전지를 내려 두진ㆍ역질에 걸린 남녀들은 병이 쾌차하기 전까지 사역하지 못하도록 한다.

▪전옥 역질 구제 : 형조에 전지하기를, “지금 전옥(典獄)에 역질이 크게 번졌으니 의원을 정하여 구제하라. 약 재료 같은 것은 반드시 병 증세를 살펴서 보고하기를 기다리면, 때에 늦어져서 미치지 못할 것이다. 각종 약 재료를 미리 혜민국(惠民局)에서 받아, 때에 따라 요량해 주는 것이 마땅하며, 시기에 맞추어 치료하여 죽는 자가 없도록 하라.” 하였다. (《세종실록》19/11/9)

 

전옥에 역질이 번져 의원을 정하여 구제하게 했다.

세종은 사회적인 질병인 역질에 적극적으로 대비해 나갔다.

 

사회적 거리

 

일반적으로 사회적 거리는 50센티 내외인데 코로나 시대에는 1미터에서 이제는 2미터를 떨어져 있으라 한다. 사람 사이의 거리를 사회적 거리라고 부르며 이 시대에는 사람 사이의 거리는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로 서로 뜻을 나누어야 할 것이다.

 

시대를 거슬러 백성 혹은 국민이 보살핌을 받는 정치가 바람직한 정치일 것이다. 세종의 백성의 개성과 인명을 중시하는 대응은 오늘날에도 되돌아볼 정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