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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눈 우리 엄마

[‘우리문화신문’과 함께 하는 시마을 2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까막눈 우리 엄마

 

                                                     - 이 상 희

 

       정 들인 편지 한 장 건넨 적 없어도

       자취방 문 앞에 두고 간 미숫가루 봉지 안에는

       당신 사랑 구구절절 넘치게 담겨 있었지요.

 

       꾹꾹 눌러 가계부 한 줄 써본 적 없어도

       주춧돌 하나 밥그릇 하나에 담긴 셈은

       보릿고개 넘어가는 디딤돌이었습니다.

 

       70여 생, 책 한 권 본 적 없지만

       삶의 행간에 채워놓은 지혜는

       팔 남매 이정표에 길라잡이가 되어

       오늘도 헤매지 말라 손을 잡아 줍니다.

 

 

 

모래는 우리 겨레 삶을 지탱해온 24절기 열다섯째로 흰 이슬이 내린다고 하는 백로(白露)다. 옛사람들은 백로 즈음에 편지를 보낼 때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후 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하옵시고”라는 인사를 꼭 넣었다. 그것은 이 무렵 포도가 제철인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쯤 되면 ‘포도지정(葡萄之精)’을 잊지 말라고 한다. 그것은 어머니가 아이에게 포도를 먹일 때 한알 한알 입에 넣고 씨와 껍질을 발라낸 뒤 아이의 입에 넣어주던 정을 일컫는다. 예전 우리의 어머니는 그런 존재였다.

 

“닭들도 깨지 않은 이른 새벽, 어머니는 쪽진머리에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으시고, 깊은 우물에 두레박을 내려 길어 올린 정화수를 장독대에 차려놓고 가족들의 평안을 두 손 모아 빈 다음 아침밥을 지으셨다. 애간장을 태우는 일이 생겨도 그러셨다. 엄마가 속이 많이 상하실 때면 장독대 뒤편에 가서 소리 없이 우셨다. 어린 막내아들이 옆에 가서 가만히 쪼그려 앉으면 그제 서야 소맷귀로 눈물을 훔치시고 두 팔로 꼭 안아주셨다.”

 

충북일보에 실린 김규완 전 충청북도 중앙도서관장의 글 일부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그런 어머니가 있었다. 이상희 시인도 물론이다. 시인은 자취방 문 앞에 두고 간 미숫가루 봉지 안에는 당신 사랑 구구절절 넘치게 담겨 있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또 삶의 행간에 채워 넣은 지혜가 팔 남매의 이정표에 길라잡이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잔잔한 이상희 시인의 시에는 우리 모두의 그런 어머니가 되살아난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