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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이 감도는 청평산 청평사를 찾아서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한가위 전날 찾은 청평사는 고즈넉했다. 코로나19 탓도 있지만 한가위 전날이기도한 평일(화요일)이라 더욱 고요했다. 아직 단풍은 이른 모습으로 신록 상태지만 어딘가 모르게 가을빛이 도는 듯해 보였다.

 

청평사는 고려시대 인물인 이자현(李資玄 : 1061~1125)이 중창한 청평산 문수원(文殊院)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내용이 빼곡하게 적힌 비석이 청평사 경내에 있다.

 

 

이자현은 승려가 아니고 고려조정에서 벼슬을 하던 인물이다. 이자현은 고려 중기의 명문가인 인주 이씨(仁州李氏) 출신으로 젊어서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지만 29살 때인 1089년(선종 6)에 관직을 버리고 청평산으로 들어갔다. 그는 벼슬길보다는 선(禪) 수행에 흥미를 느꼈던 사람이다. 마침 당시 중국에 유학하여 새로운 선사상을 펴고 있던 혜소국사(慧炤國師)와 교유하며 고려 중기 선사상을 펼쳐갔다.

 

 

이자현은 청평사에 은거하면서 다시 한강을 건너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끝까지 그대로 지켰다고 한다. 한강을 건너지 않겠다는 맹세는 벼슬길에 어른거리지 않겠다는 맹세이리라. 이자현은 불교 가운데에도 귀족과 밀착된 화엄종이나 법상종을 버리고 선종(禪宗)을 택하여 오직 참선과 간경(看經)에만 몰두하여 극히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

 

 

청평사는 소양강에서 배를 타거나 구불구불한 산길을 차로 달려야 갈 수 있는데 고려시대의 청평사는 두

메산골 가운데서도 첩첩산중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곳에서 ‘과거 합격으로 벼슬길이 보장된’ 29살의 젊은이 이자현이 닦았던 선수행(禪修行)의 길이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경내에는 이자현이 중창한 청평산 문수원(文殊院)의 내력 및 이자현의 생애에 대하여 기록한 글이 비석에 새겨져 있는데 이는 김부철(金富轍 : 1079~1136)이 1130년(인종 8)에 지었으며, 대감국사(大鑑國師) 탄연(坦然 : 1070~1159)이 글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