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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라. 너만의 길로 걸어가라

박노해 사진에세이 3집 《길》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48]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박노해 사진에세이 3집 《길》(도서출판 느린걸음)이 나왔습니다. 현재 종로구 통의동에 있는 라 카페 갤러리에서 <길>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데, 그 전시와 함께 사진에세이집도 나온 것이지요. 전에 나온 사진에세이집 제목은 《다른 길》인데, ‘길’은 박 시인의 인생 화두인 것 같습니다.

 

 

에세이집을 펼치니 서문의 제목은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이네요. 박 시인은 우리 모두는 길 위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길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가장 많은 지식이 흘러 다니고 세계와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지구 끝까지 길이 이어졌으나, 정작 우리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길을 잃어버린 것은 길이 사라져 버려서가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길이 나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면서 박 시인은 계속 말합니다.

 

"우리가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어둠이 깊어져서가 아니다. 너무 현란한 빛에 눈이 멀어서이다. 우리가 희망이 없다는 것은 희망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다. 너무 헛된 희망을 놓지 못해서이다. 그리하여 길을 잃은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이 길이 되고 말았다. 다들 가니까 그 길로 달려가고, 다들 가는 그 길을 앞서가고자 비교 경쟁하고 인정 투쟁하고, 잠깐 흘러 가버리는 유행과 팔림에 휩쓸려 갈 때, 길은 나를 지나쳐 버린다. 나는 나를 지나쳐 버린다."

 

박 시인의 사진은 그렇게 잃어버린 길을 찾아나서 빛으로 쓴 시입니다. 시인은 진정한 길을 찾기 위해 팔레스타인, 아프카니스탄 등의 분쟁 지역의 길을, 안데스의 오래된 미래의 길을 걸으며 그들의 사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그렇게 찾아다니던 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여 나는 지상의 가장 멀고 높고 깊은 곳을 찾아다니며 오래된 토박이들이 지켜온 인간의 길을 탐구하고 경청하고 담아왔다. 우리가 앞만 보고 달리다 놓쳐온 것, 진보했으나 결핍된 것, 무언가 온전하고 올바른 것, 잃어버린 시원의 순수, 수만 년 이어온 희망의 씨앗을 찾아 헤맸다. 우리에게 사라진 그 원형질을 품고 돌아 나와 진보한 오늘의 우리 안에서 새로이 살려내는 여명의 길 하나 찾고 싶었다. 그것이 살아남은 혁명가의 사명이라 생각하여 나를 내몰았다."

 

당신은 길을 찾았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길 위에서 헤매고 있습니까? 시인은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슬퍼하지 말라고 합니다. 포기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이란 없으니. 모든 새로운 길이란 잘못 들어선 발길에서 찾아졌으니. 나만의 빛나는 길은 잘못 내디딘 발자국들로 인하여 비로소 찾아지고 길이 되는 것이니.” 그리하여 ‘결정적 한 걸음’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삶의 목적을 향해 온 존재를 정렬시킨 결정적 한 걸음을 내딛을 때, 자신의 두 발로 인생의 대지를 걸어가는 한 인간이, 진정한 인간이 탄생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세계에 고요한 파동이 일고 거기 이어진 인간의 마음으로 공명된다고 합니다.

 

그럼 박 시인의 사진 몇 장과 그에 대한 박 시인의 에세이를 볼까요?

 

 

‘하늘까지 이어진 밭’이라 불리는 ‘안데스’ 고원.

만년설산의 흰 기침이 선득 이마에 닿는 아침,

눈바람 사이로 눈부신 태양이 길을 비춘다.

지구의 저 높고 험준한 고원에서 차빈Chavin 문명과

나스카Nazca 문명 그리고 잉카Inca 문명을 일군 사람들.

수천 년 된 안데스의 고원 길을 걸어갈 때

맨발로 이 길을 내어온 발자국 소리가 울린다.

지상의 무거운 중력을 이고 지고 걸어 오르는

안데스 농부들의 하늘 걸음이 울려온다.

 

 

황하가 처음 몸을 틀어 아홉 번 굽이쳐 흐르는

루얼까이 초원의 강물 위에 붉은 석양이 내린다.

관광객들은 절경을 촬영하느라 분주한데,

종일 손님을 태우지 못한 티베트 여인이

무거운 어깨로 저녁 기도를 바친다.

말은 미안한지 가만가만 그 곁을 지킨다.

굽이굽이 흘러온 강이 전하는 이야기.

삶은 가는 것이다. 그래도 가는 것이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릴지라도

서둘지 말고 가는 것이다.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이다.

 

 

에티오피아 고원에 바람이 불어오면

아이들은 어디로든, 어디로든 달려 나간다.

초원을 달리고 흙길을 달리고 밀밭을 달린다.

허기를 채우려는지 온기를 찾는 것인지

소년은 소녀를 만나고, 친구는 친구를 부른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내 영혼은 달려 나간다.

어디로든, 어디로든, 그리운 네가 있는 쪽으로.

 

전시회는 내년 3월 7일까지 이어집니다. 어떻습니까? 한번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서촌으로 나들이하여 <길> 사진전 한 번 보시지 않으시렵니까? 저도 조만간 박 시인이 보여주는 ‘길’을 보기 위해 오래간만에 라 카페 갤러리를 찾으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박 시인이 사진에세이집에 쓴 자신의 시를 인용하며, 저도 제 길을 찾아 나서겠습니다.

 

먼 길을 걸어온 사람아

아무것도 두려워마라.

그대는 충분히 고통받아 왔고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자신을 잃지 마라.

믿음을 잃지 마라.

걸어라. 너만의 길로 걸어가라.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길을 걸으면 길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