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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독립투쟁의 큰 등불 대종교 창시한 '나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48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57년 전인 1863년 오늘(12월 2일)은 “대종교(大倧敎)는 삼신일체(三神一體) ‘한얼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단군 한배검을 교조(敎祖)로 받드는 한국 고유의 종교다.”라는 대종교를 창시한 나철 선생이 태어난 날입니다. 나철(羅喆, 1863 ∼1916) 선생은 관직에서 물러나 구국운동에 뛰어들었고, 을사늑약 매국노들을 살해하려다 실패하고 유배까지 된 분입니다. 유배에서 풀려난 선생은 1909년 1월 15일 구국 운동의 하나로 단군 신위를 모시고 제천 의식을 올린 뒤 민족종교 단군교를 선포했고 1910년에는 대종교로 이름을 바꾸었지요.

 

 

대종교는 상해 임시정부의 총령 일곱 가운데 이동녕ㆍ이시영ㆍ신규식 등 3명과 임시정부 29명의 의정원 의원 가운데 21명이 대종교인이었음을 물론 한글학자 주시경ㆍ이극로ㆍ김두봉도 대종교인이었을 정도로 구국운동과 대종교는 떼어놓고 말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은 대종교에 큰 빚을 지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의 죽음과 대종교 본부의 이전은 독립운동에 새로운 전기가 되었습니다. 대종교 회원을 중심으로 한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를 만들었으며, 이를 통한 독립운동을 펼쳤나갔습니다. 또 1918년 대종교의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3·1운동 이전에 처음으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기도 했고, 1920년 대종교도(大倧敎徒) 김좌진ㆍ이범석 등이 청산리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요. 이후 대종교 지도자인 신규식ㆍ박은식ㆍ신채호ㆍ김구ㆍ조소앙 등이 줄기차게 독립투쟁을 펼쳤습니다. 이처럼 나철 선생의 대종교 창시는 우리나라 독립투쟁에 큰 등불이 되었는데 정부는 1962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