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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을 지키기 위한 투쟁, 향전(鄕戰)

한국국학진흥원, 웹진 ‘담(談)’ “바람이 붕당(朋黨)” 발행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조현재)이 발행한 웹진 담(談)에는 “바람이 붕당(朋黨)”이라는 주제도 보인다. 코로나19 사태와 더불어 사회 전반에 불안과 갈등이 커지면서, 여러 깊은 대립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조선시대 ‘향전’을 통해서도 그 사회적 갈등이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향전’은 단어 뜻 그대로 ‘지역사회[鄕] 안에서 높은 수준의 사회적 갈등[戰]’을 이야기하지만, 주로 영조, 정조 때부터 지방을 장악하고 있던 사족 세력에 대해 새로운 세력이 대항하면서 생긴 불화를 일컫는 말이다. 숙종 때 이후 관료들의 중앙집중화가 지속하면서 지방 세력의 중앙 진출이 어려워지자 끊임없이 권력에의 진출을 시도한다. 그러면서 특히 수령을 통한 지방 통제책에 대해 거세게 저항했다. 그러나 백성의 처지에서는 위에서 군림하는 자들의 갈등이기에 어느 쪽이나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하고 수탈하는 싸움이었다.

 

이번 호에서는 향전 이외에도 현대에도 일어나는 권력을 둘러싼 ‘갈등’과 그것이 지닌 ‘함의’에 대해 조명하고 고민해보고자 한다.

 

술술 읽히는 시나리오와 만나는 얄팍한 이권 싸움의 현장

 

박찬민 작가는 <바람이 붕당(朋黨)>을 통해 향전을 뮤지컬 시나리오 형태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등장인물인 남인과 노론은 머물고 있던 명륜당 근처에 화마가 덮쳐오고 있으니 진화를 도와달라는 유생의 부탁을 향교를 지킨다는 핑계로 가볍게 무시한다. 협조는커녕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명륜당 현판을 방에 들여놓고 현판을 화마로부터 지킨다는 명분을 만들 때만 똘똘 뭉친다. 나름 명분이 세워지자 당벌에 눈이 멀어 또다시 작은 것 하나까지 거론하며 싸우고 만다. 향교를 지킨다던 명분은 불이 그들 근처까지 번지자 다시 똘똘 뭉쳐 함께 아득히 퇴장하고 만다.

 

무너져가는 재지사족의 위상 그를 지키기 위한 투쟁, 향전

 

정철 작가는 <지역의 터줏대감 뚫는 법-향전(鄕戰)>에서 과거나 현재나 지역에서 다양한 이유로 갈등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향전’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점부터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며, 향전의 유래를 세세하게 풀어냈다.

 

향전이 일어나기 전 조선에서 양반의 유일한 사회 진출 방법은 과거시험에 합격해 관리가 되는 것이었다. 과거시험은 소과 또는 사마시로 불리는 1차 시험과 대과 또는 문과로 불리는 2차 시험으로 나뉘는데 이 두 시험에서 최종 합격한 극히 일부의 양반만이 한양을 중심으로 살아갔다. 1차 시험 가운데 생원시, 진사시가 있어서 이것만 합격한 생원만 진사만 해도 그 수가 적어 그들은 드물고 고귀한 존재였고 지역에서 엄청난 사회적 지위와 위세를 보장받았다.

 

중앙에서 전국에 보낸 수령들은 해당 지역에 연고가 없고 단지 임기 동안 몇 년간 머물다 떠나는 사람이기에 이들의 힘은 당연히 제한되어 온전히 지배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조선은 지역에 상당한 자율권을 주었고, 지역에 터 잡고 사는 양반들인 생원이나 진사를 중심으로 한 조직인 유향소나 사마소가 진정한 지배자들의 거점이 되었다. 그들은 ‘지역에 뿌리박고 있는 양반집 사람들’이란 뜻의 재지사족(在地士族)이라 불렸고, 수령도 재지사족의 협조 없이는 지역을 다스리기 어려웠다.

 

그러나 18세기에 나타난 사회적 상황에 재지사족이 힘을 잃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나 권력이나 부를 좇는 사회적 경쟁은 대개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를 만들기 마련이고, 그 경쟁이 가족이나 가문을 통해서 지속하면 그 효과는 가속화된다. 한양으로 소수의 승리자 세력들이 몰리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지방에서의 과거급제자 수가 줄어들었다.

 

이러한 양극 분해 현상은 양반, 평민 할 것 없이 모든 계층에 고루 나타났다. 주로 서울에 있는 잘나가는 양반들은 전보다 훨씬 더 큰 권력과 부를 누렸다. 중인이나 평민 중에는 부의 축적에 성공한 이들이 나왔고, 심지어 그들 가운데 일부가 과거시험에 붙기 시작하여 유향소, 사마소, 서원, 향교의 구성원 명단에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재지사족이 보기에는 근본 없는 자들의 어이없는 요구였고, 이러한 사유로 자신들의 사회적 존재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인 ‘향전’이 시작됐다고 그 유래를 밝혔다.

 

권숯돌 작가의 <이달의 일기-향전이 뭐길래>에서는 다소 어렵게 느껴지거나 생소할 수 있는 향전의 의미와 배경을 쉽게 만화로 소개한다. 대부분 향전과 관련된 상소는 임금이 따로 비답을 내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정조는 안동 유림으로부터 수차례 받은 상소에 대하여 더는 반복되지 않도록 지방 수령인 안동부사를 징계하여 마무리했다. 향전은 단순한 지방 양반 간의 싸움이 아니라 끝내 임금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조선 후기 권력 구조의 다층성과 변동양상을 보여주는 현상이었다.

 

 

 

거슬리는 사또가 마뜩잖은 토착 세력의 서열 싸움, 향전

 

시나리오 작가 홍윤정은 <증오 권하는 사회>를 통해 분열과 반목을 목격하는 것이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렸음을 이야기한다. 싸움은 늘 비슷한 배경과 비슷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곤 한다고 말하며 영화 <방자전> 변학도 부임 잔치 장면에서의 향전을 그 예로 든다.

 

대과에 합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파랗게 젊은 변학도가 사또로 부임하니 몇 대에 걸쳐 그 지역에 뿌리박고 사는 토착 세력에게는 사또가 당연히 마뜩잖았다. 영화에서는 단박에 서열정리를 끝내지만, 고을 수령에게 있어 토착 세력 가운데서도 아전을 비롯한 관아의 아랫사람 다스리기는 예민하고도 중요한 문제인 것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사또가 지역유지와 밀착하든 반목하든, 누가 권력의 핵심이 되든 백성들의 삶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맺는다.

 

<편액이야기>에서는 한가위를 맞아 가족ㆍ친지 간의 필요한 정신을 되새겨보고자, 자손과 형제들이 길이 화목하게 지낼 것을 당부하는 의미가 있는 경북 영주 두암고택의 사랑채 ‘함집당’ 편액을 소개한다. 건립자인 함집당(咸集堂) 김종호(金宗灝, 1630~1682)의 호와 이름이 같다.

 

‘함집’은 《중용(中庸)》에 “종묘에서 거행하는 제례의 핵심은 소목(昭穆, 종묘나 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차례)의 차례를 정하는 것이다.[宗廟之禮 所以序昭穆也]”라고 하였는데, 주자가 이것을 해석하여 “자손과 형제들이 각각 자신의 소(昭)와 목(穆)에 무리를 이루고 있어도 모두 그 차례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子姓兄弟群昭群穆 咸在而不失其倫焉]”라고 한 것에서 인용하였다. 곧, 함집당 편액은 형제, 자손 모두가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부모와 선대에게 효(孝)를 표하는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스토리이슈>에서는 2020년 10월 10일(토)에 열린 ‘밀레니엄 시대 20년, 전통문화 콘텐츠를 말하다, 2020 전통문화 창작 콘퍼런스’를 앞서 소개한다.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된 콘퍼런스는 두 개의 마당으로 진행되었다. 1마당에서는 ‘전통문화와 콘텐츠의 만남과 헤어짐’ 관련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디지털 전통문화 소재’ 발표를 다루었으며, 2마당에서는 ‘영화, 드라마, 장르소설, 웹툰’과 전통문화의 만남 관련 해당 전문가들의 발표내용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 호 웹진 편집장을 맡은 이수진 뮤지컬 작가는 코로나라는 세계적 역병 속에서 “온갖 비이성과 부조리들이 투명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을 목격”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이 광기들이 그저 가라앉게 둔다면 돌림이 사라진다 해도 사라진 것이 아니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는 조선시대 일기류 247권을 기반으로 5,480건의 창작 소재가 구축되어 있으며, 검색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