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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엄지 없는 세상이란 게

엄지손가락이 가장 크고 새끼손가락이 가장 작은 법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75]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하다가 일이 터졌다. 애들 다 출가시키고 둘이서 사는 우리, 지난 주 집사람이 갑자기 김장한다고 해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소식을 전했더니 “도와주어야지, 여자 혼자 하려면 너무 힘들다.”라고 하기에 큰맘 먹고 바깥 일정을 줄이면서 들어와서 배추 속을 만들기 위한 무채 썰기 시작했는데 무 두 개를 썰고 나서 그만 채칼에 오른 손 엄지 끝을 베이고 말았다. 손톱도 조금은 잘리는, 엄지손으로 보면 중상이다.

 

그냥 지혈로 버텨보는데 지혈이 안 된다. 결국, 집사람의 성화로 자정 무렵에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니 당직 의사와 간호원이 고생고생하면서 봉합수술을 해주신다. 집에 오니 새벽 1시 반. 일단은 안심하였지만,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였다.

 

말하자면 오른손 엄지가 없어진 셈이다. 붕대로 감아놓으니 힘을 쓸 수가 없다. 물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물에 손을 담글 수가 없으니 면도를 하려고 해도 오른손으로 하던 면도기를 제대로 잡을 수가 없어 면도가 안 되고, 머리를 감을 수 없고, 옷을 입으려니 단추를 꿸 수가 없어 못 입겠다.

 

 

나는 골프를 안 치니 그립 잡는 것으로 고민할 이유는 없지만, 오른손으로 하는 작업 중에 엄지로 받쳐주어야 하는 것들, 말하자면 과일도 깎을 수 없고 캔도 딸 수가 없고 젓가락을 잡기가 어려워 막 새로 만든 김치를 집어 먹기도 어렵다. 엄지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있으면 텔레비전의 리모콘도 누를 수 없다. 말하자면 엄지 때문에 생활에 불편이 생각 외로 엄청난 것이다.​

 

누구는 이렇게 엄지를 제대로 쓰지 못해 불편을 겪는 상황을 ‘엄지의 반란’이라고 표현한 것이 기억이 난다. “너희들이 평소에 그처럼 시도 때도 없이 부려먹었지만 정작 내가 탈이 나니 내가 얼마나 소중한 줄 알겠지?”라고 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아주지 않는 사회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는 뜻이렸다.​

 

그래 나도 엄지손가락을 쓰지 못하게 되니 엄지의 소중함을 다시 알겠다. 사실 손가락을 놓고 보면 다섯 개의 손가락이 있는데 엄지를 제외한 네 개의 손가락은 한 방향으로 뻗어있고 그것은 서로서로 하나가 빌 때에 공백을 메우거나 의지를 할 수 있지만, 엄지는 그게 아니라 나머지 네 개의 손가락과 합쳐 무엇을 잡거나 들거나 하기 때문에 엄지가 없으면 손의 기능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게 됨은, 없어 봐야 비로소 보인다는 명 구절이 아니더라도 이제서야 실감을 하게 된다.

 

그러게 옛사람들이 한자를 만들 때 사람 ‘인(人)’을 서로 기대도록 한 것인가? 마주 보거나 기대지 않으면 사람은 전혀 존재할 수도 없고 힘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는 뜻이 아닌가? 사실 다섯 개의 가락이야 손에도 있고 발에도 있지만 같은 방향으로만 나 있는 발가락은 평형을 유지하는 역할 외에는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심지어는 인간과 유인원의 차이를 엄지손가락의 발달 정도에서 찾는 학자도 있다. 침팬지, 고릴라 등은 손의 크기에 비해서 엄지가 인간보다 훨씬 짧아서 도구 사용에 한계가 있고 이 때문에 인간처럼 문명을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말로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당연한 듯이 무시했던 엄지의 효용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손가락 다섯 개 가운데에 가장 짧고 못생긴 손가락이지만 이 손가락이 없으면 손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장애인 등급심사 때 6급 이상 받으려면 나머지 손가락은 엄지를 제외한 3개 손가락이 문제가 있어야 하지만 엄지손가락은 엄지손가락 하나만 문제 있으면 장애인 등급을 준다고 한다. 범죄인을 압송할 때에 쓰는 수갑가운데에 엄지만을 채우는 수갑이 있다는데, 그것만 채워도 손을 제대로 못 쓰기 때문이란다. 군대 가는 신체검사를 할 때에도 엄지가 없으면 무조건 면제라고 한다. 총을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엄지손가락이 가장 짧고 못생겼지만, 사실은 엄지손가락이 손가락 가운데 가장 길다고 한다. 엄지손가락을 움직이면 손가락뿐만 아니라 손바닥 부분까지 일부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는데 손가락의 정의는 자의적으로 움직일 수 있냐의 여부기 때문에 엄지가 움직일 때 같이 움직이는 손바닥 안의 뼈도 엄연히 엄지 일부고 이 길이까지 합치면 중지보다도 길다고 한다.

 

해부학적으로 보면 이 부위는 엄지의 첫째 마디로 손목 힘줄부터 시작하는데 손가락이 시작하는 위치가 다른 손가락보다 아래에 있기 때문에 한마디가 손바닥 안에 숨어 있어서 짧게 보인다고 한다. 결국엔 엄마의 역할이 그런 것이라 하겠다. 그러기에 엄마손가락인 엄지손가락이 귀하고 중요한 것이다.​

 

우리말 엄지를 한자로는 무지(拇指) 또는 벽지(擘指)라고 한단다. 무지의 무(拇)는 엄지손가락 무이다. 벽지의 벽(擘)은 소리를 나타내는 벽(辟)과 뜻을 나타내는 수(手)가 결합된 글자인데, 辟이란 글자는 피한다는 ‘피’로 읽기도 하지만 임금을 뜻할 때는 ‘벽’으로 읽는다. 곧 임금 노릇을 하는 손가락이란 뜻이 된다. 우리들은 훌륭한 것을 보면 으뜸이라는 표현으로 엄지손가락을 펴서 하늘로 향하고 나머지 네 손가락은 가지런히 오므린다. 마치 엄지손가락이 으뜸인 임금이 되며 나머지 네 손가락은 임금을 받친다는 것을 상징하는 몸언어다.​

 

로마 시대의 황제들은 엄지손가락 하나로 사람을 죽이고 살렸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엄지척! 했던 손가락이 아래로 내리는 순간 상대 검투사의 생명은 요절이 난다. 그 밖에도 일반적으로 기각이나 거절, 거부의 의미가 있기도 하다.

 

그만큼 엄지의 역할도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처럼 엄지의 역할을 가정에서 비유한다면 아마도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부모가 될 것이다. 부모가 있고 제대로 역할을 하면 그 손이 작동이 잘 되듯 가족도 가정도 원활하게 돌아갈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가정이 엉망이 된다. 한 나라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다산 정약용은 그의 역저 《경세유표》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나라는 하나의 몸뚱이와 같아서, 엄지손가락이 가장 크고 가운데 손가락이 가장 길며 새끼손가락이 가장 작은 것이 법이요,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오른쪽 손은 제대로이고 왼쪽 손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이 자는 병신이다. ”

 

... 《경세유표》 제7권 지관수제(地官修制)ㆍ전제(田制) 7

 

 

손은 손대로 엄지의 역할이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몸 전체로 보면 좌우의 두 손이 모두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게 안 되면 병신이라는 뜻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뒤죽박죽, 법과 규정도 자의적으로 집행하고, 법이란 이름으로 상식을 무시하는 일이 많은데도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그것은 엄마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는 주석도 붙는다.

 

또 좌우 두 손이 균형이 맞지 않아서 나라가 제대로 서지 못하는 상황인데 그걸 균형 있게 잡아주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렇기에 개인으로건 사회건 엄지손가락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김장김치를 준비하다가 잠시 상처가 난 엄지손가락을 보며 그동안 결혼 40년 동안 김장한다고 수없이 손끝을 베이며 고생한 부인 생각은 안 하고 그저 제 한 몸 걱정에다 엉뚱하게 나라 걱정까지 하게 된다. 너무 나간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