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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와 어려운 한자말로 잘난 체하는 풍경들

글은 소통하기 위한 것, 쉬운 우리말로 써야만 한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발행인]  최근 우리 신문에는 “'나도 쓰레기 없애기' 함께하기!”라는 기사를 올린 적이 있었다. 이는 원래 컴퓨터 백신 ‘V3’를 만든 안랩 콘텐츠기획팀에서 작성한 글로 내용이 아주 좋아 우리 신문 독자들에게도 유용할 것으로 생각하여 옮겨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원문을 보면 일반 독자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많아 쓰여 있었다. 우선 제목부터 ‘제로웨이스트’라는 말을 쓴 것이다.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란 ‘쓰레기를 줄이자’라는 뜻으로 쓴 영어로 지구가 오염되면 마침내는 사람이 더는 살지 못할 세상이 되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쓰레기를 줄여보자는 운동이다.

 

제로웨이스트 뿐이 아니다. A4 용지 3쪽의 글에는 스토리, 고고챌린지, 플랫폼, 에코백, 업사이클링, 패키지 프리 스토어, 라이프스타일, 슬로건, 트렌드, 그로서란트, 프리사이클링, 패브릭, 비건 카페, 숍, 비건 디저트, 리필 스테이션, 메인 보컬, 론칭 등 무려 20여 개의 영어를 쓰고 있다. 따라서 ‘여기가 미국도 아닌데 꼭 이렇게 영어를 써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신문에는 이런 말들을 될 수 있는 대로 우리말로 풀어 기사를 올렸다.

 

<'나도 쓰레기 없애기' 함께하기!> 기사 읽으러 가기

 

그리고 어제는 이상훈 교수의 글 “원스푸드 거리가 무엇일까?”라는 기사도 올랐다. 여기엔 평창군에서 ‘여기서부터는 원스푸드 거리입니다.”라고 써서 세워놓은 간판 사진이 커다랗게 실렸다. 이상훈 교수는 “한국에서 한국인들을 위한 운동이고, 한국인들에게 알려 나가는 목적의 간판인데도 한글로 쓰지 않고 굳이 영어로 써야만 하는지 말이다. 잘난 체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간판을 모든 한국인이 잘 이해할 수 있게 쉬운 말로 그것도 한글로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라고 꾸짖었다.

 

지난 2018년 9월 13일 나는 “땅이 꺼지는 지반침하 현상?”이란 글을 우리 신문에 올리면서 땅이 꺼지는 현상에 쉬운 우리말 ’땅꺼짐‘이 있는데도 영어 ’씽크홀(Sinkhole)‘, 한자말 ’지반침하((地盤沈下)‘을 쓰는 언론들을 나무란 적이 있었다. ’씽크홀(Sinkhole)‘나 ’지반침하((地盤沈下)‘ 등의 남의 나라 말을 쓰면 유식하고 우리말 ’땅꺼짐‘을 쓰면 무식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일제강점기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주시경 선생은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가 내리나니”라는 말을 했다.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아끼고 썼을 때 우리의 국격도 오른다는 얘기다. 반대로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천시하고 남의 나라 말 쓰기를 즐긴다면 그 어떤 외국인도 우리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우리나라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지 않을까?

 

지난 2007년 서울에 온 중국 연변대학교 김병민 총장은 글쓴이와의 대담에서 “만주족은 말에서 내렸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김 총장이 말한 ’말‘이란 사람이 입으로 하는 말과 타는 말을 함께 뜻했다. 그는 말타기를 즐겼던 만주족이 말을 타지 않게 되었지만, 그보다도 삶에서 자신들의 말을 버렸기에 정체성이 사라지고, 마침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지적이었다. 이 말은 우리가 뼈아프게 들어야만 한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국인이니까 한국말만 써야 한다.라고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그저 글이란 글쓴이와 글을 읽는 독자 사이의 소통이며, 더 많은 사람이 글을 읽어줘야 글 쓴 보람이 있을 것인데 많은 사람이 글을 읽기를 바란다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써야만 한다고 외치는 것이다. 이렇게 외국어를 써서 잘난 체하고, 버릇처럼 어려운 한자말을 남발한다면 글을 쓰는 목적 곧 소통을 달성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외래어와 한자말 쓰기에 무조건 손사래만 치지는 않는다. 꼭 필요한 때, 곧 외래어와 한자말을 써서 글쓴이의 뜻을 분명하게 밝힐 수 있다면 쓰되 우리말 다음 괄호 안에 넣어 쓰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외래어와 한자말을 씀으로써 글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글을 쓰는 목적을 소통에 두지 않고 ’잘난 체‘에 두고 있음인가?

 

 

우리나라 법 가운데는 <국어기본법>이란 것이 있다. 이 법 제14조 제1호에 보면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는 공문서뿐만이 아니라 공공기관이 쓰는 모든 말에 해당하는 얘기다.

 

그런데 정부가 국민과 소통하기를 원한다면 <국어기본법>이 없더라도 당연히 공문서 등에는 쉬운 우리말로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많은 공공기관이 앞장서 외국어와 한자를 써서 우리말을 짓밟는 것을 자주 본다. 그 까닭을 살펴보면 공직자들에게 우리말 사랑이 없는 것은 물론 <국어기본법>에 벌칙 규정이 없기에 공직자들이 이를 지키려 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진정 나라 사람의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이제 한 달 뒤면 우리에게 세상 으뜸 글자 한글을 만들어준 세종임금의 탄신일이다. 또 6달 뒷면 제575돌 한글날이다. 우리나라는 세종임금의 탄신일과 한글날만 되면 한글을 기린다고 온갖 떠들썩한 행사들을 치른다. 하지만, 요란하게 행사한다고 해도 그들 각각의 마음속에 우리말 사랑 정신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 아닐까?

 

 

 

대한민국 말글정책의 큰 틀 만든 최현배 선생은 일제강점기 한 음식점의 금서집(방명록)에 "한글은 목숨"이라고 썼다. 최현배 선생처럼 한글을 목숨처럼 받들지는 못하더라도 제발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우리말과 으뜸 글자 한글이 있음을 잊지 말자. 그리고 내가 다른 이와 소통하기에, 정부가 국민과 소통하기에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말로 쓰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