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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아내와 남편 사이 15~16세기에 쓴 한글편지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65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998년 4월 14일 경북 안동에서는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 한기를 이장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이 무덤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무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무덤을 헤쳐나가자 죽은 남편을 향해 애끓는 사랑과 비통함을 토하는 편지가 나왔습니다. 유물들을 통해 밝혀진 것은 무덤에 묻힌 이가 1586년 31살의 나이로 갑자기 죽은 이응태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응태의 아내 곧 원이엄마는 한지에 한글로 편지를 써서 망자의 가슴에 덮어둔 것입니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하얘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시 이 편지가 발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라며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지요.

 

 

그런데 무덤에서 나온 한글 편지는 1586년에 쓴 원이엄마 편지보다도 앞선 15C중반~16C전반에 쓴 것으로 보이는 군관 나신걸(羅臣傑)의 편지도 있습니다. “분(화장품)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가네.” 당시 분과 바늘은 매우 귀한 수입품이어서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과 식구에 대한 그리움을 알 수 있지요. 또한, 편지에는 16세기에 주로 쓰였던 높임말인 ‘~하소’라고 적고 있어 조선 전기 부부 사이에 서로 높임말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 한글편지들은 훈민정음이 반포(1446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쓴 것으로, 훈민정음이 뜻밖에 이른 시기에 백성 사이에 정착이 되었고 한글 편지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중요한 소통 도구였다는 것을 확인시켜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