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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임시정부의 자금줄 백산상회와 안희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65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943년 오늘(8월 3일)은 백산 안희제 선생이 숙원인 광복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둔 날입니다. 백산 선생은 1916년 무렵 고향의 논밭 2천 마지기를 팔아 자본금을 마련하고, 뜻 있는 이들과 함께 부산 중앙동에 포목과 건어물 따위를 파는 백산상회(白山商會)를 세워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소규모였던 상회는 1917년 합자회사로 바꾸고 1918년이 되자 주식회사로 전환했는데 이때 중요 출자자는 안희제, 경주 최부자집 주손 최준, 경상우도관찰사를 지낸 윤필은의 아들 윤현태였지요.

 

 

백산무역주식회사는 독립운동자금을 위한 나라 안 독립운동기지로 삼기 위해 영남지역 지주들이 여럿 참여해 조직한 대규모 무역회사였습니다. 그런데 독립운동자금은 회사의 손익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지원해야 했기에 결손이 거듭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도 그걸 알고 있는 주주들은 1921년 한 차례, 1923년 두 차례나 자금을 보태 자금 위기를 막아주었는데 이러한 지원은 장부거래 형식을 띄었기 때문에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광복이 되고 귀국하여 경교장으로 온 김구 선생은 최준 선생을 불러 독립자금 지원에 고맙다는 말을 한 다음 독립운동자금 장부를 보여주었는데 이때 최준 선생이 준 자금이 고스란히 장부에 적혀있는 것을 보고 최준 선생은 백산 선생을 생각하며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최준 선생이 백산 선생을 의심한 것은 아니었으나 자금 가운데 일부는 여비나 활동자금으로 썼으려니 생각했던 것이 못내 죄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만큼 백산 선생은 독립운동에 자금을 완벽하게 관리했고 선생이 있었기에 어려움 속에서도 독립운동은 지속될 수 있었지요.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