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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이름에서 한자만 떼어냈다

한자이름에서 한자만 떼어냈다 이봉원씨 법원에서 개명허가 받아 ▲ 이봉원 씨의 개명허가 신청에 대한 수원지방법원의 결정문 ⓒ 이봉원 대한민국 사람의 대부분은 한자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민등록증 등 일부를 빼면 한글로만 쓸 뿐이다. 이봉원 한말글 이름의 날 법정기념일 추진위원장은 "이름에 한자가 붙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개명신청을 내 허가를 받았다. 이 씨는 법원에 낸 '개명신청이유'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어차피 이름에는 한자 이름이나 한글 이름, 영어 이름도 마찬가지로 동명이인이 있을 수밖에 없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민등록번호란 게 있어서 사람 구별도 잘 됩니다. 따라서 오늘날엔 이름을 반드시 한자로 지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또 이름을 한자로 적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생활을 하는 데 불편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일은, 제가 날마다 지니고 다니는 주민등록증에는 한글 이름 옆에 한자가 적혀 있습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저는 수치심을 느낍니다. 떳떳한 자주독립 국가의 국민으로서, 왜 남의 나라 글자로 이름을 적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국 사람은 제 이름을 '리 펑 왠'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특히 대학생 시절 이후 오랫동안 한말글운동을 해온 그로서는 자존심이 크게 상하는 일이었다. 또 이름은 단순히 그 사람의 이미지일 뿐 한자이름이기에 한자의 뜻을 생각하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5월 7일 수원지방법원에 개명 신청서를 제출했고, 담당 판사는 6월 19일 이유가 있다며 개명 허가 결정문을 보냈다. ▲ 한말글 이름의 날 선포식을 주재하는 이봉원 한말글 이름의 날 법정기념일 추진위원장 ⓒ 김영조 실제로 한자이름은 호적이나 주민등록증에서만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일상생활에서 전혀 필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자존심만 상하게 하는 이름의 한자 표기는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한자로 써도 변별력이 없는 '성' 또한 한글로만 적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명허가신청은 신청취지, 신청이유가 적힌 개명허가신청서에 호적등본 1통, 주민등록등본 1통과 인우보증서 등의 소명자료를 덧붙여 주소지 관할 법원에 제출하고 한 달 정도 기다리면 결정문을 받아볼 수 있다. 특히 인우보증서는 신청인을 잘 아는 사람이 추천서나 보증서 쓰듯 쓰면 되지만, 한글 관련 단체장의 인우보증서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며, 기타 덧붙일 서류는 한글 명함이나 한글 사랑을 주장하는 신청인의 원고 같은 것을 복사해 제출하면 된다. ▲ "효창원, 국립묘지로 승격하라"는 시위를 하고 있는 이봉원 ⓒ 김영조 법원에 낼 비용은 2만원 정도밖에 안 돼 부담이 없으며, 법원에서 결정문 (개명허가결정등본)이 오면, 거주지 시청, 구청, 군청의 민원실에 가서, 그곳에 있는 개명신고서를 작성하고, 법원 결정문과 함께 제출한 뒤, 10일쯤 지나, 거주지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증을 다시 발급받으면 모든 개명 절차는 끝난다. 이름을 다른 말로 바꿀 경우에는, 직장서류, 자동차면허증, 카드, 은행통장 등 이름을 고쳐야 할 데가 많은 데 비해 비교적 간단한 절차일 뿐이다. 이제 한자 없는 한자이름이 등장하고 있음이다. '이봉원'이란 이름은 한자로 시작했지만 한글로만 적는 이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로써 한말글운동가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이 한자이름에서 한자를 떼어버리는 개명허가신청이 물밀듯 쏟아질 것이란 짐작을 해본다. "한자이름에서 한자 떼어내는 일 내 자존심이었다" [대담] 개명허가를 받은 이봉원 ▲ 대담을 하는 이봉원 ⓒ김영조 - 개명허가신청을 내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있는가? "주민등록증에 이름이 한자로만 적히던 시절, 내 주민등록증에는 오랫동안 내 이름이 아닌 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가운데 이름이 '鳳'(봉)자가 아닌 '風'(풍) 자가 적힌 채 발급됐던 것이다. '鳳' 자를 어느 유식한(?) 동사무소 직원이 약자랍시고 '風' 자의 약자를 쓴 것인데 '几' 속에 '又'를 쓰면 그런대로 '鳳' 자의 간체자가 되지만, 획이 하나 없는 'X' 자를 썼기 때문에 '風'의 약자(간체자)가 돼 버렸다. 물론 나는 잘못된 줄 모르고 오랫동안 그것을 사용했고, 그 뒤로 어느 정부 기관에서도 내 주민등록증이 잘못됐다고 지적한 적이 없었다. 그런 중에 중국에 가서 중국 간체자를 대면한 순간 이름이 잘못됐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이때부터 나는 이름에서 한자를 떼어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 그래도 세상엔 관습이라는 게 있는데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이 혼란스러움을 만들지 않을까? "한자 이름은 전해 내려온 관습일 뿐이고, 현대 사회에서는 결코 필수적인 게 아니다. 나 역시 한자 이름을 부모님한테서 받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자로 이름을 적는 경우는 이따금 공문서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또 소설가나 방송작가로서 또 연출가나 직장인으로서도 나는 이름을 사용할 때 언제나 한글로만 '이봉원'이라고 적었고, 남들도 내 이름이 한자로는 어떻게 되는지 알지를 못한다. 아니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의미 없는 단순한 관습을 버린다 해서 전혀 혼란스러움은 없을 것이다." - 원래는 토박이말 이름 즉, 한말글 이름이어야 하지 않나? "물론 새로 태어나는 아기의 이름은 아름다운 한말글로 지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사회생활을 오래 해온 사람이 전혀 다른 이름으로 바꾸게 되면 남에게 다소 혼란을 줄 수가 있고, 또 이것저것 다 고치려면 매우 번거롭기도 할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이름으로 오랫동안 창작생활을 해왔거나, 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면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한말글 이름으로의 개명을 주저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찾은 방법이 이것이다. 이 방법이야말로 한글 이름으로 개명은 하되,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리지도 않으면서도 남에게 피해나 불편을 전혀 주지 않고, 한글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떳떳이 남 앞에 나설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다." - 이번 결정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까지는 한자이름에서 한자만 떼어 버리는 한글이름 개명 신청이 법원에서 허가되지 않을 것이란 선입견이 있어 다들 생각을 못하거나 주저했지만 이번에 받은 판결로 그 일이 가능하게 됐으니 더는 머뭇거릴 까닭이 없어졌다. 특히 한말글 운동가들은 누구나 우리말 이름으로 바꾸든지 아니면 나처럼 모두 '한자이름을 한글로만 적는' 개명 신청을 해야 할 것이다. " - 앞으로 더 남은 과제가 있다면?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호적의 효용성을 의심하고 없애자는 움직임도 있는데 굳이 호적을 남길 필요가 있다면 호적에서 반드시 한자를 병기해야 하는 성과 본관까지도 한자 없이 한글로만 적게끔 해야 한다. 뿌리는 찾는 일은 족보 하나로도 충분할 것이다. 모든 사회생활의 시작은 이름에서부터인데 정체성이 없는 일은 이제 버려야 할 때이다." 이봉원 씨를 백범 58주기 추모식날 백범 묘소 앞에서 만났다. 대담을 하는 도중 그에게서 한말글과 겨레에 대한 굳건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한말글 이름의 날 법정기념일 추진위원장',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등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흔적을 찾는 일에도 온 힘을 쏟고 있다. 오는 11월에는 임시정부가 간 길을 따라가는 여행일정을 마련해 회원을 모집하고 있기도 하다. /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