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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70. 톡톡한 ‘기모바지’ 한 장으로 겨울나기


애들은 날씨가 추워지면 톡톡한 ‘기모바지’ 하나 입혀 놓으면 겨울 걱정 안 해도 되지요. 바지는 고무줄 바지가 편하더라고요. 기모바지는 조금 싼 것도 있던데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거라서 가격에 조금 신경써야합니다. 우리 딸은 4살인데 9호 입힙니다. -다음- 

날씨가 추워지니까 엄마들이 아이들 옷에 신경을 쓰게 된다. 예전에 어머니는 올망졸망한 자식들이 행여 추울세라 초가을만 들어서면 손수 스웨터 짜기에 바쁘셨던 기억이 새롭다. 

‘기모바지’라는 말처럼 요즈음 부쩍 기모를 이용한 제품이 눈에 많이 띈다. 등산복에서부터 스타킹, 양말, 목도리 등 기모의 쓰임새가 날로 개발되고 있는 느낌이다. 

표준국어사전에 보면 ‘기모 (起毛) :모직물이나 면직물의 표면을 긁어서 보풀이 일게 하는 일’이라고만 나와 있다. 어린 학생들이 이 설명을 읽는다면 ‘왜, 옷감의 표면을 보풀게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 것만 같다. 나 같은 어른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물론 일본말이라는 말은 없다.  

<다음 백과사전>을 보면 국어사전보다 훨씬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다. ‘모직물(毛織物)ㆍ면직물(綿織物)에서 피륙의 날 또는 씨에 보풀을 일으키게 하는 일. 이것은 피륙을 부드럽게 만들어 그 보온성을 더하며, 잔보풀로 설핀 천의 바탕을 덮어 외관(外觀)을 아름답게 하려는 데에 목적(目的)이 있음’으로 나와 있다. 기모란 한마디로 ‘보온’과 ‘멋내기’를 위한 옷감 가공법의 한 종류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표준국어사전이나 다음백과 사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일본 국어사전과 백과사전을 그대로 베낀 흔적이 엿보인다. 

일본국어대사전<大辭泉>에는 ‘きもう【起毛】:布の表面の維を毛羽立たせること’이라고 되어 있으며 번역은 한국 사전과 같다. 기모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한 일본대백과사전 <小學館>에는 ‘織物、あるいはメリヤスの仕上げ方法の一つで、その表面または面に、組織された維をかき出して毛羽を起こし、生地を厚くするとともに、感を柔らかくし、ときには保力を加させる方法。織物組織からみると、緯(よこいと)に甘撚(あまよ)りのを使い、表面に緯を多く出すように織ったのち、毛羽立ちさせるのが普通である。起毛するには、古くはアザミの(チゼルともいう)を使い、その刺(とげ)先で織物の表面を何回もこすって毛羽を立てた。’ 로써 <다음백과사전>과 뜻이 같다. 다만, 일본국어사전 끝부분 ‘기모를 하려면 예전에는 엉겅퀴 열매를 사용하여 뾰족한 가시로 옷감 표면을 여러 번 문질러 털을 세웠다.’는 부분은 한국 사전에는 없다. 

문제는 ‘기모’가 일본말이라는 국어사전 표시가 없기에 확인 차 기모의 어원을 질문한 것에 대한 국립국어원의 답이다. ‘기모라는 말은 일본말이 아닌가요? 그 유래를 알려주십시오.’라고 글쓴이는 2010년 11월 1일 ‘가나다온라인’에 질문을 올린 적이 있다. 바로 다음날 국립국어원에서는 답변이 올라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안녕하십니까? ‘기모’는 그 원어가 한자어이며 이 말이 순화어 목록이나 일본어투 용어 순화 자료 등에서 검색되지 않아 이 말을 일본에서 들어온 말로 볼 근거가 없습니다.’라는 답이 전부다. ‘원어가 한자어’라는 말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원어가 한자어라면 ‘貸切(대절,가시기리), 追越(추월,오이코시), 宅配(택배,타쿠하이), 告發(고발,고쿠하츠)’... 이런 말들도 원어가 한자어란 말인가! 그러나 알다시피 이러한 말들은 일본한자말이다. 우리가 추려내야 할 말인 것이다.  

일본에서 ‘기모’가 등장한 것은 에도후기(江戶後期, 1603-1868) 때로 와카야마현(和歌山) 기슈(紀州)지방에서 유행했다. 당시에는 면직물을 보풀게 하려고 소나무 잎사귀나 바늘을 다발로 묶어서 직물 표면을 긁어내었다.  

그러던 것이 근대에 들어서면서 기모기계가 등장했다. 이때 엉겅퀴 열매를 드럼통에 넣어 기모용으로 쓰는 방법과 기모용 바늘을 이용한 침금기모기(針金起毛機), 나이론부러쉬기모기(ナイロンブラシ起毛機)등이 등장하게 된다. 기모공정(起毛工程)은 건조기모(乾燥起毛)와 습윤기모(濕潤起毛) 방법이 있으며 습식은 건식에 견주어 기모효과가 좋아 면플란넬(앞뒤 모두 보푸라기처리)이나 방모(紡毛)직물 등에 이용된다고 한다.  

이에 견주어 한국에서는 옷감을 보풀게 하던 ‘기모’라는 말이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1959년 3월 한국데이터베이스 ‘해방이후사 자료’ 편에 ‘서울起毛工場 서울시 종로구 장사동 87 섬유공업’이란 기록이 보일 뿐이다. 아마도 일본의 ‘기모’ 공장이 1950년을 전후에 한국에 들어와서 옷감을 만들어 내면서 ‘기모’라는 말이 생긴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2004년 6월 7일 자 산께이신문(産經新聞)에 따르면, 직물 산업으로 유명한 오사카 남부의 기시와다시(岸和田市)의 한 농원에서 재배하고 있는 엉겅퀴 꽃이 연보랏빛으로 피어있는데 이곳은 한때 ‘기모’ 생산지의 옛 영화가 남아 있는 곳이라는 기사를 싣고 있다. 이곳뿐 아니라 센슈지방(泉州地方)에도 고급 기모생산용 엉겅퀴를 대량재배 하였으나 지금은 섬유산업의 쇠퇴와 기모기계 보급으로 엉겅퀴 재배는 거의 안 한다고 한다. 다만, 일부 농장에서는 일찍이 섬유산업의 상징이었던 ‘기모’용 엉겅퀴를 보러 오는 관광객을 위해 재배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기모’는 일본말에서 온 말이다.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유래라도 알고 쓰도록 어원표시를 분명히 밝혀주는 게 좋다. ‘아무런 정황 설명도 없이 일본말이라는 근거가 없다.’라고 입을 싹 씻을 일이 아니다.  

바라건대 ‘기모’ 같은 뜻이 분명히 와 닿지 않는 말보다는 ‘보푸라기’ ‘보풀’ ‘보풀이(보푸리)’ 같이 또렷하고 예쁜 우리말로 고쳐 불렀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전에서는 이 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이윤옥(59yoon@hanmail.net)

                                          <사쿠라 훈민정음>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