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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옥스퍼드 사전과 ‘쓰나미’

               
79. 옥스퍼드 사전과 ‘쓰나미’


                    


사상 유례 없는 대지진의 재앙이 일본 열도를 휩쓸고 지나간 지 열흘째를 맞는다. 신문방송에서는 “엄청난 물기둥을 몰고 온 쓰나미가 일본 동북지방을 싹 쓸어 갔다”고 대서특필했다. 이웃나라 일이지만 우리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며칠 전부터는 일본을 돕자는 “성금 물결이 쓰나미처럼 한반도를 달구고 있다”라는 기사도 보인다. 3월에 때 아닌 구세군 자선냄비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이런 모든 일들이 지난 열흘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없다. 일본인보다도 한국인들이 더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 같고 보기에 따라서는 우왕좌왕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요 며칠 새 티브이와 신문에서 맞닥트리던 ‘쓰나미’란 말은 이제 너무도 귀에 익어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말처럼 익숙해져 버린 느낌이다. 피해도 크고 분위기도 뒤숭숭한 판국에 누가 ‘쓰나미’란 말을 쓰지 말고 ‘지진해일’이란 말을 쓰자하면 몰매 맞을 분위기다. 일부 신문이나 방송국 기자들은 애써 '쓰나미‘란 말을 피하고 ‘지진해일’이라고 쓰고 있지만 대세가 ‘쓰나미’인 분위기다. 이번 일본 동북지방의 대지진으로 인해 한국 어린이들까지 확실히 ‘쓰나미’란 말을 익혔을 것 같다.

말이 나온 김에 ‘쓰나미’의 정체를 알아보자. ‘쓰’란 노량진, 당진 할 때의 진(津)을 일본어로 발음한 것이며 ‘나미’란 물결을 뜻하는 한자 파(波)의 소리음이다. 뜻으로 말하자면 진(津)쪽을 향해서 밀려오는 파도, 물결인 셈인데, 정확한 발음은 ‘쓰나미’가 아니라 ‘츠나미(つなみ, tsunami)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본말이니까 쓰지 말자하고 어떤 사람들은 국제공용어니까 쓰자한다. 정말이지 츠나미(쓰나미)는 영국 옥스퍼드사전에 올라 있는 말이다. 'O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 of Current English'에는 쓰나미(tsnami, 1395쪽) 말고도 가라오케(karaoke, 704쪽), 스시(sushi, 1311쪽) 같은 말이 올라 있다. 국제공용어니까 쓰자는 사람들은 이를 근거로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사전에 나무젓가락을 ‘와리바시(waribasi)’라고 한다 해서 우리가 따를 필요는 없다. 사시미(회), 오리가미(종이접기)도 옥스퍼드 식으로 쓰지 않고 우리말로 바꿔 쓰는 게 이해하기 쉽다. 요컨대 한국 사람들끼리는 나무젓가락, 종이접기, 지진해일 하면 되는 것이고 영어로 미국 사람들과 말할 때는 츠나미(tsnami), 와리바시(waribasi), 오리가미(origami) 하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큰 지진이 나도 차분히 흔들림 없이 재해를 극복하는 일본인들을 보고 전 세계 사람들은 지금 놀라워하고 있다. 머지않아 이러한 일본인들의 침착한 태도를 가리키는 일본말 오치츠크(おちつく), 헤이키(へいき) 같은 말과 남을 배려하는 오모이야리(おもいやり) 같은 말이 쓰나미처럼 쓰일지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언론들도 ‘세계공통어’ ‘세계학술용어’라는 해괴한 이유를 들어 들여다가 무책임하게 쓸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일본의 쓰나미에 한국말 지진해일(한자말인 이 말도 좋진 않다. 이참에 좋은 토박이말을 만들어 보자)이 정처 없이 떠내려가는 것을 보며 홀로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지진해일이란 말을 쓰면서도 얼마든지 그들을 도울 수 있을 텐데 아쉽다.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이윤옥(59yo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