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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영어는 잘 하는데 한국어는? (한글을 생각하다 2)

“영어 학자의 눈에 비친 한국어의 힘”(김미경)에서 발췌

 [그린경제=양훈 기자] 

FTA 협정문의 한국어 번역 오류 

20114월에 일어났던 한-유럽연합(EU) 자유무혁협정(FTA) 문안의 한국어 번역 오류는 한국인들의 한국어 글쓰기 능력 수준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 부끄럽지만 중요한 사건이었다. , 한국인이 영어는 잘하는데 한국어 능력이 부족하다는 반증이다.

외교통상부가 한-유럽연합(EU) 자유무혁협정(FTA)을 준비하면서, 번역 오류 때문에 이미 두 번이나 철회를 반복했던 협정서 번역문에서 또 다시 무려 207개에 달하는 오류가 발견되어, 국회가 세 번째 소집되는 상황이 벌여졌다.  

2007년 발효된 한-동남아국가연합 FTA2010년 발효된 한-인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의 국회 비동의안에서도 번역 오류와 오탈자가 여러 곳 이였으며, 심지어 협정에 합치하는 방식으로협정에 불합치하는 방식으로라고 정반대로 번역한 경우와 총 수입액의 25%’총 수입액의 10%‘로 잘못 표기하기도 했다. 

외교부가 협정문의 한국어 번역을 담당했고, 대형 로펌이 2,500만원을 들여 검증했지만 오류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번 사태는 단지 외교부 담당자의 해이한 자세나 역량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인들이 공식문서와 한국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태도와 역량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외국과 조약을 체결함에 우리 국민들은 실제 조약과는 다른 내용을 알고, 그것을 공유하며,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일인지 경제적 손해는 물론 국익 전반에 막대한 손실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인들이 국제 사회에서 상대국들과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영어 실력 이전에 한국어와 한국인 스스로에 대한 존중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 조건이다 

   
▲ 한국인들이 국제 사회에서 상대국들과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영어 실력 이전에 한국어와 한국인 스스로에 대한 존중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 조건이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어느 사회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자기를 비하하는 사람들을 신뢰하며, 이들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할 상대는 없다.  

지금 한국인에게 부는 영어 광풍은 우리의 잘못된 정책과 시스템이 온 국민에게 영어를 강요하고 있다.  

대학 입시에서 오직 영어만 잘해서, 오직 TEPS로 대학을 진학 할 수 있도록 영어 프리미엄을 준다던가, 국가고시에서 토익 700점 이상자로 제한 한다던가, 공기업과 대기업의 93%가 토익 성적을 채용에 중요한 도구로 사용하며 영어 특혜로 가산점을 주는 등 정말 영어 광풍시대 이다. 

그러면 우리는 한국어와 영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국민의 모국어 능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영어 능력을 중요시 하는 이상으로 국어 능력을 중요시 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 국어 능력 강화를 위해서는 국가나 사회 모든 분야에서 국어 능력에 대한 가산점을 줄 수 있는 국어 정책, 국어를 우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모국어로 공유하는 세계 정보, 글로벌 보이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고, 영어가 세상을 정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터넷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영어로 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은 아무도 영어가 인터넷을 장악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인터넷이 영어 획일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예상을 뒤집고, 오히려 세계인들이 자신의 모국어로 인터넷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정보 교환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2010년에 인터넷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10개국의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뉴스를 보는 경향을 조사한 결과, 95퍼센트 이상이 자신의 모국어로 제공되는 뉴스 사이트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Zuckerman, 2010) 

중국에는 예안(Yeeyan)이라는 모임이 있다. 예안은 십오만 명의 자원 봉사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봉사자들은 영문으로 된 신문이나 웹사이트의 글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글을 찾아서 하루에 약 100개씩을 번역해서 중국어로 올린다. 이들은 보수를 받지 않고 번역을 한다.  

예안은 장 레이가 구상했다. 그는 티베트 라사 폭동 기간 중 미국에 있었는데, 그때 미국 언론의 편향된 보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장 레이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면, 그건 번역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양국의 국민들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시작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인터넷과 핸드폰은 우리가 가진 정보를 매우 빠르게 여러 사람에게 전달하는 경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국가별로 인구 당 인터넷을 사용하는 비율은 2010년 현재 우리나라가 95%OECD 국가 중 1위이다. 2위는 스웨덴으로 75.6%, 3위가 일본으로 75.3%이고, 미국은 9위로 44.4%이다.  

우리는 정보교환을 위한 인프라를 누구보다 탄탄히 가지고 있다. 또한 정보화에 유리한 한글을 가지고 있다. 남은 일은 가능한 한 많은 한국인들이 영어 실력에 상관없이 한글과 한국어로 쉽고, 빠르게 세계의 정보를 공유하고, 민주적인 정보교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한 국가의 정보의 민주화의 척도는 전 국민이 자신의 모국어로 중요한 정보를 얼마나 쉽게 얻을 수 있는가에 있다.  

한국의 정보의 민주화는 국민 전체가 모어 수준의 영어실력을 배양하여, 세계 정보를 영어로 직접 얻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자신의 모어인 한국어로 중요한 정보를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얼마나 정확하게 얻을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중국인들 모두가 영어를 공부하도록 독려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영어 실력을 번역에 이용하여, 중국의 일반 시민들이 중국어로 세계의 소식들을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배우기 위해 외국으로 진출한 초등학교 이하 아동 8만 명(2005년 이후), 귀국 학생 수 15만 명(2003~2010), 향후 귀국유학생 수 10만 명(2011~2015)이 존재한다. 이들에게 철저하고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며 이들을 고급 정보의 한국어화에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국민이 한자 능력에 상관없이 한글로 중요한 정보를 얻게 된 것이 지난 60년간 한국의 정보의 민주화였다면, 이제 모든 국민이 영어 능력에 상관없이 한국어로 세계의 정보를 쉽고 빠르게 얻게 되는 것이 앞으로의 정보의 민주화일 것이다. 

영국과 미국의 플레인 잉글리시 운동 

1970년대에 영국에서는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플레인 잉글리시 운동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플레인 잉글리시 운동은 일종의 영어 순화 운동이다.  

플레인 잉글리시는 명확한 단어와 짧은 문장을 사용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어 사용을 목표로 한다.  

영국의 메이어(Chrissie Maher)는 리버풀에서의 지역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정치가, 정부 관료, 법률가, 경제인들이 일반 서민의 문제를 다룰 때 너무 복잡한 문장과 전문적인 용어를 함부로 사용하고 있으며, 서민은 어려운 영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플레인 잉글리시 운동은 영국의 정치, 경제, 의료, 법률 등 전 분야에서 어려운 영어를 거부하고, 간단하고 쉬운 영어 사용을 확산시키는 민간차원의 운동이다. 영국의 플레인 잉글리시 운동은 일종의 언어 민주화운동이었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법조문의 어려운 한자 어휘를 쉬운 단어로 바꾼 언어순화운동과 같은 맥락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메이어의 플레인 잉글리시 캠페인은 민간 차원에서 시작된 운동이었지만, 그 파급효과는 막대한 것이었다. 이제는 영국의 정치인들도 플레인 잉글리시를 영국 사회의 민주화에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에서는 플레인 잉글리시 운동이 민간 주도의 활동이었던 반면에, 미국에서는 정부차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실시되었다. 특히 법률문서와 정부의 공문서 관리 분야에서의 플레인 잉글리시 쓰기가 강조되었다.  

미연방정부는 1976년에 정부의 문서들을 플레인 잉글리시로 작성할 것을 규정하는 문서업무 감축 조례(Paperwork Reduction Act)’를 제정했다. 미국의 플레인 잉글리시 운동은 지방정부, 주정부, 그리고 연방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행정부와 모든 관청에서 정부 문서를 작성할 때 플레인 잉글리시를 사용하도록 요구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이어서 부통령 엘 고어는 쉬운 언어 운동의 선두에 서서 쉬운 언어 실천 연합((Plain Language Action Network (PLAN))’을 결성하였다.  

이 조직은 정부의 기관을 대상으로 공무원들에게 플레인 잉글리시 작성법을 가르쳐 주기 위한 팀이었다. 현재 미국연방정부의 대부분의 기관들이 쉬운 언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은 플레인 잉글리시 운동을 실행하여 세 가지 효과를 얻고 있다고 말한다. 경제적 이익, 민주화의 확산, 상호 신뢰도의 증진이 그것이다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의 정부가 플레인 잉글리시를 사용함으로써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약하는 경제적 효과를 보았다.  

또한 일반 서민들은 정부의 행정, 어려운 법규, 그리고 급격히 발전하는 고급의 의학 정보들을 플레인 잉글리시로 접하게 됨으로써 사회의 민주화를 더욱 촉진시켰다. 그리고 플레인 잉글리시로 된 문서를 작성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공무원과 시민들이 서로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대릴 베이브 윌슨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백인들의 말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영원히 살아남으려면 우리말을 알아야 한다.” -사라져가는 목소리들- 중에서 

영어는 반드시 열심히 익혀 배워야 한다. 하지만 우리 모어인 모국어를 온전하고 충분히 사용할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실익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어 학자의 눈에 비친 한국어의 힘’ - 김미경 중에서 발췌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