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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대마도는 역사적 근거가 뚜렷한 우리땅

[무신 선비열전2] 대마도 정벌과 양후공 이종무 장군(2)

[그린경제=진용옥 교수] 

이종무 장군의 세계(世系)  

장수 이씨는 이알평(李謁平)52세손이며, 고려 충선왕 때 정승으로 장천 부원군에 봉해진 이임간(李林幹)을 시조로 하고 있다. 책록된 후손들은 장천의 훗날 지명인 장수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4대 이을진(李乙珍)이 공민왕 때 정승을 지냈고 순충적덕보조공신(純忠積德補助功臣)에 책봉되었다. 이을진의 아들이 이종무이다. 이종무는 아들 넷과 딸 다섯을 두었는데, 아들은 승평, 덕평, 사평, 후평이다. 1명은 정종대왕의 열째아들 덕천군(德川君) 후생(厚生)의 부인이 되었다. 

이종무가 죽은 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 안장되면서 이종무의 시호 양후(襄厚)에서 이름을 따서 양후공 파조가 되었다. 후손들은 본래 황해도 사리원 부근에서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기동에 있는 묘에는 제향을 위해 묘역을 찾는 정도였고 묘역의 관리는 전적으로 묘지기에게 맡겨 두었기 때문에 한 때 장군의 묘소가 잃었다가 문중의 기록을 근거로 가까스로 다시 찾았다 한다. 후손들은 매년 음력 10월 첫째 일요일에 시제를 지내고 있다
 

대마도 정벌 영웅 이종무 장군의 무덤, 풀이 우거져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산 79번지 속칭 능말에 있는 이종무 장군 무덤

   
▲ 이종무 장군 무덤 위성지도

이종무 장군의 무덤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산 79번지 속칭 능말에 있으며, 경기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방 13척 정도의 장방형 호석(護石)이 둘러진 위에 봉분이 마련되었고, 정면에는 상석, 향로석과 빗돌이 있다. 상석은 근래에 마련된 것이며, 빗돌은 본래의 것으로 보이는데, 거의 마모되어 비문을 판독하기 어렵다.  

단지 비문 가운데 [장자승평입(長子昇平立)]이라는 글씨만 판독이 가능하다. 승평은 이종무의 큰 아들 이름이다. 빗돌의 크기는 폭 40cm, 높이 100cm, 두께 17cm 이다. 좌우에 문인석이 있고, 1975년에 후손들이 새로 세운 묘비가 있다. 1972년 재판에 승소하여 묘지를 되찾았다. (수지구청 문화체육과 324-8050)

 

   
▲ 이종무 장군 무덤에 오르는 계단

   
▲ 2013년 9월9일 성복동 신목회 회원들의 이종무 장군 무덤 탐방기념. 필자의 (붉은 옷)선창으로 "대마도는 본시! 우리 땅. 우리 땅. 우리 땅이다."이라고 세 번 외쳤다.

무덤 주소 이종무로 169번길 (새로운 주소체계)은 지도에 나타나 있지만 간신히 안내 간판을 찾았다. 계단을 오르면서 그리고 묘소에 다다라서는 분노가 치밀었다. 후손도 문화재 관리 부서도 무덤을 방치하여 언제 벌초를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풀이 우거져 사람의 키를 넘었다. 대마도 정벌의 영웅 묘소가 이런 처지라니 말이나 되는 일인가?  

위성지도에는 위치조차 틀려 있었다. 용인시에서 정밀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현지 답사를 나온 성승기씨를 만났다. 그도 역시 노루목에서 내려오면 묘소를 찾지를 못해 돌아 갈려는 때였다. 나중에 지도 표기를 수정하도록 일렀다. 등산로의 계단을 오르면 묘소가 보인다
  

더 기막힌 지명의 오류, 누구를 탓해야 하나  

   
▲ "서수로"가 부산해협으로, "동수로"가 쓰시마해협이라 쓰였다.

대한해협(북에서는 조선해협)은 한반도와 규슈 사이의 해협을 말한다. 동해동중국해를 이으며, 대마도를 사이에 두고 동서 2개의 수로로 나뉜다. 부산~대마도 사이를 서수로(westchannel) 대마도-규슈 사이를 동수로(eastern)라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현해탄(겐카이나다; 玄界灘)이라 했다. 식민지 구호 내선 일체로 보면 검은 바다 여울곧 내해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식의 식민지 찌꺼기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는데 다음 지도는 더욱 가관이다.  

국제적으로는 대한해협 동수로이다. 대한해협 서수로가 한반도와 대마도 사이인데 부산해협이라 엉뚱한 소설을 쓰고 있다. 동쪽이 쓰시마이니 서쪽은 부산해협일 것이라고....  

   
▲ 내셔날지오그래피 2005년 제8판 지도에 쓰시마 해협이란 표기가 있다. 대한해협의 표시는 대마도에서 한반도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위기는 외국에서 쓰이는 대한해협의 명칭과 위치다. 내셔날지오그래피 2005년 제8판 지도에 쓰시마 해협이란 표기가 있다. 대한해협의 표시는 대마도 중간에서 한반도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모두가 일본 대륙 확장 의지에서 우리가 밀리는 현상의 일환이다. 동해, 독도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허위는 진실로 돌변한다
 

우리 땅 대마도, 창원시의회는 선언했다

대마도 말밑(어원)은 여러 설()이 있으나 일본의 고대어는 한국어란 저서를 공동 집필한 김인배김문배교수는 거친 물결에 실려 가다가 물너울이 사그라지면서 서는 섬이란 뜻의 서섬(섯음, 멈춤)’, ‘서서마’, ‘서시마로 변천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마에서 파생된 말이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정부 수립 직후인 1948818일 성명에서 '대마도쓰시마는 우리 땅'이니 일본은 속히 반환하라고 했다. 일본이 항의하자 이승만은 외무부를 시켜 19489'대마도 속령(屬領)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194917일에도, 같은 주장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1951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초안 작성 과정에서 427일 미국 국무부에 보낸 문서에도 대마도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요구한 적이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요구를 거부하였다. 최근에는 일본의 한 언론에서 "한국이 쓰시마 섬을 넘본다."라는 기사를 써서 영토 분쟁화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산케이 신문에서는 "쓰시마가 위험하다."라는 쓰시마 위기론을 기사로 써 넣었다. 

경상남도 마산시는 2005617, 마산시청 강당에서 대마도의 날 선포식을 가졌다. 조선 초기 이종무장군이 쓰시마 섬을 정벌하기 위해 마산포를 출발한 619을 대마도의 날로 정한다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시의회는 당초 이날 시마네 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폐기 촉구 결의안을 논의하다 공격적으로 하자는 분위기가 강해 대마도의 날조례 제정을 추진했다.  

20121211일에 창원시의회가 본회의를 통해 '대마도의 날 조례 전부개정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기존 마산시 의회에서 제정된 '대마도의 날 조례'의 이름이 '창원시 대마도의 날 조례'로 바뀌었다. 조례 목적에 객관적인 사료를 근거로 하여 대한민국 국민과 세계인의 올바른 여론을 형성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일본은 여전히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긴다. 근거도 없이 후안무치하게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에 우리는 분명한 역사적 근거가 있는 대마도를 왜 내 땅이라고 하지 못하나? 차제에 창원시의회 차원이 아니라 온 국민적 차원에서 대마도를 돌려달라고 요구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