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 개울을 지나는데 월천꾼이 있어 가죽 바지를 입고 물속에 서서 삯을 받고 사람을 건네준다. 나를 업고 개울로 들어가다가 얼음에 발이 미끄러져 나를 업은 채 물에 주저앉아 버렸으니 비록 맹분(孟賁)의 용기와 제갈공명의 지혜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위 내용은 명에 가는 사신 동지사의 수행원으로 따라갔던 박사호(朴思浩)가 쓴 《심전고(心田稿)》에 나오는 월천꾼 이야기입니다. ‘월천꾼(越川軍)’은 조선시대 삯을 받고 시내와 여울을 건너려는 사람을 업어서 건네주던 사람인데 건널 섭(涉), 물 수(水)를 써서 ‘섭수꾼(涉水軍)’이라고도 했습니다. 월천꾼은 평소에는 자기 일을 하다가 여름철 비가 많이 와 물이 불어났을 때와 겨울철 얼음이 단단하게 얼기 직전 또는 얼음이 막 풀린 때 주로 일을 했지요. 《심전고》에 나오는 월천꾼 이야기를 보면 박사호를 업은 월천꾼이 미끄러져 물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박사호는 월천꾼의 목을 끌어안고 당황스러워하는데 같이 가던 사람들이 배꼽 빠지게 웃었다고 합니다. 월천꾼은 어깨까지 오는 가죽바지를 입기도 했지만, 미끄러워 주저앉아 버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부안 내소사 동종(來蘇寺 銅鍾)>은 보물이었다가 지난해 12월 26일 국보로 지정된 것으로 고려 후기 동종 가운데 가장 큰 종입니다. 또 내소사 동종은 통일신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고려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대표작이자 기준작으로 평가됩니다. 종을 만든 내력이 적힌 주종기(鑄鍾記)를 통해 도인(道人) 허백(虛白)과 종익(宗益)의 주관 아래 장인 한중서(韓冲敍)가 700근의 무게로 1222년(貞祐 10) 제작하였음을 명확히 알 수 있지요. 본래 청림사에 봉안되었다가 1850년(철종 1) 내소사로 옮겨졌는데, 이 내용을 적은 이안기(移安記)도 몸체에 오목새김(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내소사 동종은 공중을 비행하는 듯한 모습의 역동적인 용뉴(용 모양의 걸이), 종의 어깨 부분을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올림 연꽃) 무늬로 입체적으로 장식하고 몸체에 천인상(天人像) 대신 삼존상을 돋을새김으로 새긴 점, 섬세한 꽃잎으로 표현된 4개의 당좌(撞座), 균형 잡힌 비례와 아름다운 곡률을 가진 몸체 등 뛰어난 장식성과 조형성을 지녀 고려 후기 동종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장인 한중서의 숙련된 기술력과 예술성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따뜻한 얼음 - 박남준 옷을 껴입듯 한 겹 또 한 겹 추위가 더할수록 얼음의 두께가 깊어지는 것은 버들치며 송사리 품 안에 숨 쉬는 것들을 따뜻하게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철모르는 돌팔매로부터 겁 많은 물고기들을 두 눈 동그란 것들을 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 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 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전하고 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얼음이 있기 때문이다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지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햇살 아래 녹아내린 얼음의 투명한 눈물 자위를 아!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라니 그 빛나는 것이라니 일주일 뒤면 24절기의 마지막 ‘대한(大寒)’으로 이때쯤이면 추위가 절정에 달했다. 아침에 세수하고 방에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당기면 손에 문고리가 짝 달라붙어 손이 찢어지는 듯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뿐만 아니다. 저녁에 구들장이 설설 끓을 정도로 아궁이에 불을 때 두었지만 새벽이면 구들장이 싸늘하게 식었고, 문틈으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에 몸을 새우처럼 웅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위 초상화(보물)는 관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두 손을 모은 조선시대 벼슬아치 허목(許穆, 1595~1682)입니다. 미수(眉叟) 허목은 눈썹이 길게 늘어져서 스스로 ‘미수’라는 호를 지어 불렀다고 합니다. 벼슬은 우의정까지 올랐으며, 당시 학계의 큰 어른이었고 정치인으로서는 남인의 영수(領袖)로서 깊이 추앙받았고, 평생 몸가짐이 고결하여 세속을 벗어난 기품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허목의 모습을 담은 이 초상화는 살아 있을 때 그려진 본을 바탕으로 옮겨 그린 이모본(移模本)입니다. 1794년(정조 18) 정조는 당시 영의정이던 채제공(蔡濟恭)에게 허목의 초상화 제작을 논의하도록 명합니다. 이에 체재공은 허목의 82살 때 그린 초상을 모셔다가 당대 으뜸 화가인 이명기(李命基, 1756~?)에게 옮겨 그리게 했습니다. 이 초상화는 배까지 그린 반신상인데, 그림 속 허목은 오사모(烏紗帽, 고려 말기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벼슬아치가 쓰던, 검은 비단으로 만든 모자)에 흉배가 없는 담홍색 옷을 입고 서대(犀帶: 무소뿔로 꾸민 정1품을 나타내는 띠)를 둘렀습니다. 왼쪽 귀가 보이도록 얼굴을 약간 오른쪽으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세계양금협회(CWA) 한국지부 회장, 한국양금앙상블 대표를 맡고 있는 윤은화가 작곡하여 연주한 ‘블랙홀(Black Hole)’과 ‘무경계(無經界, Borderless)’가 서울특별시 문화본부 문화예술과에서 지원하는 2023 국악미디어컨텐츠 응모 지원 부분에 뽑혀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블랙홀(Black Hole)’은 윤은화가 작곡한 음악으로 우주에서의 미스테리라고 볼수 있는 블랙홀은 그 홀에 빠지면 중력에 의하여 빠져나갈 수가 없다. 겉은 화려하지만 어딘가에 옥죄어 있는 모습. 부단히 발버둥 치며 빠져나가려 하지만 결국엔 제자리로 돌아오는 허무감을 표현하고자 했다. 현대적인 어법을 사용하여, 각 악기가 독주를 주고받으며 블랙홀에 빠진 듯 혼란스러우면서도 신나는 곡이다. 양금에 윤은화, 바이올린에 박신혜, 가야금에 진미림이 함께 한다. 또 ‘무경계(無經界, Borderless)’는 역시 윤은화가 작곡한 음악으로 양금은 동양의 소리이면서 서양의 소리를 낸다. 이 곡 연주에서 양금은 비단 채(스틱)로 치는 것만이 아닌 키고, 뜯고, 누르고, 문지르는 등 표현에 있어서 제한이 없다. 존재로서, 또 표현으로서의 모든 경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興到卽運意(흥도즉운의) 흥이 나면 곧 뜻을 움직이고 意到卽寫之(의도즉사지) 뜻이 이르면 곧 써내려 간다 我是朝鮮人(아시조선인) 나는 조선 사람이니 甘作朝鮮詩(감작조선시) 조선시를 즐겨 쓰리 卿當用卿法(경당용경법) 그대들은 마땅히 그대들의 법을 따르면 되지 迂哉議者誰(우재의자수) 오활하다 말 많은 자 누구인가? 區區格與律(구구격여률) 구구한 그대들의 시격과 운율을 遠人何得知(원인하득지) 먼 곳의 우리가 어찌 알 수 있으랴?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무려 50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는 다산(茶山) 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로, 실학자의 으뜸 인물이다. 위 한시는 다산 정약용이 쓴 <노인일쾌사 육수 효향산(老人一快事 六首 效香山)>의 한 꼭지로 다산이 노인의 한 가지 즐거운 일에 관한 시 여섯 수를 향산거사(香山居士) 곧 백거이(白居易, 중국 당나라 때의 뛰어난 시인)의 시체(詩體)를 본받아 1832년 지은 것이다. 《조선시대 한시읽기(한국학술정보)》에서 원주용 교수는 다산이 <척발위론(拓跋魏論)>에서, “성인의 법은 중국이면서도 오랑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범피중류 등덩둥덩 떠나간다. 망망헌 창해이며 탕탕헌 물결이라. 백빈주 갈매기는 홍요안으로 날아들고, 삼강의 기러기는 한수로 돌아든다. 요량헌 남은 소래, 어적이언마는 곡종인불견에 수봉만 푸르렀다. 애내성중만고수난 날로 두고 이름이라.” 위는 판소리 <심청가> 가운데 ‘범피중류’ 대목 일부입니다. 이 부분은 심청이가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이 팔려 배를 타고 임당수로 가며 좌우의 산천경개를 읊는 부분이지요. 느린 진양 장단 위에 얹어 부르는 그 사설이나 가락이 일품이어서 많은 사람이 즐겨 듣고 있고 또한 부르는 대목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이 부분은 가락이 멋스럽고 흥청거리는 대목으로 88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김소희 명창 외 여러 명이 배를 타고 불러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사설이 다소 생소하고 어려운데, 우선 ‘범피중류(泛彼中流)’라는 말은 배가 바다 한가운데로 떠가는 모습을 표현한 말입니다. 또 하얀꽃이 피어 있는 섬 ‘백빈주(白蘋洲)’의 ‘홍요안’이라고 하는 언덕으로 날아드는 갈매기들이 있으며, ‘삼강(三江)’의 기러기가 한수(漢水), 곧 양자강의 지류로 돌아들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청룡도(靑龍圖)’ 그림이 있는데 이는 새해 초 궁궐이나 관청의 대문 등에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붙였던 것으로 여겨지는 그림입니다. 새해를 맞아 나쁜 것을 막고 복을 지키기 위해 그린 이런 그림을 세화(歲畵)라고 하는데 대문에 많이 붙이기 때문에 문배(門排) 또는 문화(門畵)라고도 합니다. 세로 222.0cm, 가로 217.0cm의 큰 그림으로 구름 속에 몸을 틀며 하늘로 오르는 용의 모습을 소재로 다뤘습니다. 몸체를 윤곽선으로 나타낸 다음 먹이 밖으로 번지는 모양으로 주위를 처리하였지요. 섬세한 필선으로 그려져 먹구름 속을 나는 용의 표정에는 위엄이 있으며, 그 아래 굽이치는 파도의 물결이 배경으로 처리되어 이 작품을 그린 화가의 뛰어난 솜씨를 보여줍니다. 색을 약간 칠하였으나 수묵 위주로 그렸습니다. 궁궐에서는 이런 세화를 도화서(圖畵署)에서 그려 골고루 나눠주었습니다. 조선 초기에 도화서에서 그리는 세화는 해마다 60장가량이었는데 중종 때에 이르러서는 신하 한 사람당 20장씩을 내렸을 정도로 많은 양을 그렸습니다. 이를 위하여 임시로 고용된 차비대령(差備待令)이 각각 30장을 그릴 정도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는 1월 28일(일) 낮 3시 서울 종로구 율곡로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는 제1회 예찬건 영제시조 발표회 <영판(嶺板) 좋다 영제(嶺制) 시조> 공연이 열린다. 조선 영조ㆍ정조 시대 꽃을 피운 최고의 성악 장르인 가곡(歌曲),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된 시조(時調). 그 정점에는 영조 때 가객(歌客) 이세춘(李世春)이 있다. 그 이후 이세춘이 만들었다는 시조는 300년 넘게 우리 겨레의 사랑을 받아 왔다. 시조시를 3장 형식에 얹어 부르는 시조창은 가곡ㆍ가사와 더불어 정가(正歌)로 분류가 되며 지역적 특징에 따라 서울지역에서 불리는 경제(京制)시조와 지방에서 불리는 향제(鄕制)시조로 불리며 향제시조는 경상도의 영제(嶺制)시조, 전라도의 완제(完制)시조 그리고 충청지역의 내포제(內浦制)시조 등이 전해지고 있다. 『시조는 정가(正歌)로 분류되면서도 가곡(歌曲)처럼 체계적으로 전승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그 이유 가운데 한가지는 각 지방 특유의 토리에서 오는 언어적인 면을 가리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영제시조는 씩씩하면서도 강하고 우렁차 수양의 방편으로도 꼽고 있으며, 때로는 ‘영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997년에 유네스코에 첫 번째로 오른 대한민국 세계기록유산, 훈민정음을 해설한 책, 세종이 1446년에 8명의 신하들과 함께 펴낸 책, 15세기로 보아도 지금으로 보아도 최고의 사상과 학문을 담은 책. 현대 음성학과 문자학 그 이상의 값어치를 담은 책. 33장 66쪽으로 이루어진 책. 한글날의 기원이 된 책. 전 세계 이름난 문자학자나 문자 전문가들이 격찬하는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에 얽힌 내용을 거대하면서도 섬세한 이야기로 풀어낸 책. 값을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흔히 《훈민정음해례본》이라고 표기하지만, 실제 책 제목은 ‘훈민정음’이므로 ‘《훈민정음》 해례본’과 같이 표기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책을 우리나라 그 많은 국어국문과와 국어교육과에서 체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하게 가르치는 곳이 거의 없다면 상상이 될까? 불행하게도 이는 사실이다. 도대체 인류 문명의 틀을 바꾼 책을 옆에 두고도 가르치지 않고 배우지 않는 나라가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물론 이 책은 국어 전문가들한테만 필요한 책이 아니다. 문자학, 음성학, 철학, 과학, 음악, 수학 등 다양한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