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서울 구로구 가로수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서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이 버스는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그 버스와 4시 5분 경에 출발하는 그 두 번째 버스는 출발한 지 15분 만에 신도림과 구로시장을 거칠 때쯤이면 좌석은 만석이 되고 버스 사이 그 복도 길까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바닥에 다 앉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집니다. (중간 줄임) 이 버스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은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을 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 분이 어쩌다가 결근을 하면 누가 어디서 안 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흘러서 아침 출근시간이 되고 낮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고 퇴근길에도 이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서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오십 대, 육십 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지를 아는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노회찬 평전》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동안 노회찬 재단에서는 ‘인간 노회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노회찬평전 기획위원회를 구성하여 노회찬의 말과 행적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이광호 씨가 글로 엮어내는 작업을 하여, 4년 만에 평전이 세상에 나왔네요. <미디어 오늘>, <레디앙> 등의 편집자였던 이광호 씨는 이를 위해 노회찬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을 만나 대담을 하였답니다. 사실 이광호 씨는 노회찬과는 살아생전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답니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적임자라 생각하여, 평전 기획위원회에서는 그에게 집필을 의뢰한 것이랍니다. 이광호 씨는 머리말에서 노회찬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 현명한 무신론자, 마음이 따뜻한 유물론자, 마키아벨리스트와는 거리가 먼, 순진한 구석이 있었던 정치인, 과묵한 달변가, 변화에 열려 있고 첨단을 즐길 줄 아는 원칙주의자, 베토벤ㆍ차이콥스키ㆍ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좋아한 음악 애호가, 박학다식을 뽐낸 음식 마니아, 요리를 즐긴 남자, 소년의 호기심을 지닌 어른,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비판받지 않았던 페미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 바다에서 23번 싸워 23번 모두 승리한 불패의 영웅이란 사실은 우리 겨레로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한산도 해전, 명랑해전, 노량해전을 3대 해전으로 꼽지요. 한산도 해전은 남해를 돌아 서해로 올라오려는 왜군의 전략을 좌절시키고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한 데서, 명랑해전은 13척의 판옥선으로 133척의 왜군 함대와 맞서 절대적인 열세를 치밀한 전략과 울돌목의 지형을 이용하여 승리로 이끈 명 대첩이기에 3대 해전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노량해전은 잘 아시다시피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마지막 해전으로 이때 적선 200여 척을 격파하고, 100여 척을 나포한 최대 전과를 올렸기에 3대 해전에 들어갑니다. 이 가운데서 특히 한산도 대첩은 바다를 장악하고 호남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데서, 3대 해전에서 나아가 진주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힙니다. 아니, 아예 임진왜란을 넘어서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대첩으로 꼽힐 정도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산도 대첩은 이에 더하여 학익진이라는 새로운 전술을 이용하여 정교하게 적의 수군을 포위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전에 낙성대역 근처 헌책방 앞을 지나는데, 책방 앞에 헌책을 쌓아놓고 한 권에 1,000원씩 팔더군요. 책을 좋아하는 제가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요. 그래서 쌓아놓은 책들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여러 권의 책을 샀습니다. 그중에 오세영씨가 쓴 3권짜리 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이 있습니다. 1993년에 나온 소설이니 30년 전의 소설책이네요. 저는 전에 베니스를 여행한 뒤 여행기를 쓰면서 자료를 찾다가, 이 소설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책을 사볼 생각까지는 하지 않다가, 이번에 헌책 더미에서 이 소설을 발견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샀지요. 더구나 3권 합쳐 3,000원이면 공짜나 다름없는 것 아닙니까? 작가는 세 가지 별개의 역사 사실을 하나로 묶어 소설책을 냈습니다. 하나는 임진왜란 때에 이탈리아로 건너간 소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 – 특히 정유재란 때 – 수 많은 조선인이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어른들만 끌려간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들도 많이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끌려간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노예로 끌려간 많은 조선인들. 그들은 끌려간 곳에서 얼마나 많은 한숨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인천만》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무슨 책일까요? 인천상륙작전에 관한 책? 하하! 아닙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천만 새로운 일자리 만들기’에서 첫 글자만 따와 책 제목을 만든 것입니다. 제 고교동기 장준호가 아들 장기석과 함께 쓴 책입니다. 준호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삼성에서 근무하다가, 같은 고교 친구 박태형과 함께 1995년 ‘인포뱅크’라는 회사를 창업하였지요. 근래에는 40여 개의 인공지능 새싹기업 회사에 투자도 합니다. 요즘 전 국민이 잠시라도 없으면 살아가지 못할 카카오톡이 있지 않습니까? 준호와 태형은 카카오톡보다 앞서서 이와 비슷한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사업을 시작하였었지요. 그러나 너무 시대를 앞서가는 바람에 사업을 지속할 자금력 등에서 딸려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그때 인포뱅크의 새로운 서비스를 신기해하면서 이용하였는데, ‘그때 그 고비만 잘 넘겼으면...’ 하면 하는 아쉬움이 크지요. 요즘 인공지능이 무섭게 발달합니다. 전에 알파고가 이세돌 기사와 바둑을 두어 일방적으로 이기는 것을 보고 ‘세상에나!’ 하며 놀라워했는데, 요즘 챗지피티(ChatGPT), 구글바드 같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역사 앞에서’ 하니까, 제가 꼭 역사에 대한 거대담론을 말하려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네요. 《역사 앞에서》는 제 서울법대 대선배(1937년 서울법대 전신인 경성법학전문학교 졸업)인 김성칠 서울대 사학과 교수님이 쓰신 책입니다. 지금 제 앞에는 예쁘게 제본된 책이 놓여 있지만, 사실 《역사 앞에서》는 김 선배가 1945. 12. 1.부터 1951. 4. 8.까지 쓴 일기입니다. 다만 1946. 12. 23.부터 1949. 12. 31.까지의 일기는 빠져 있습니다. 아마 그 부분 일기장은 유족들이 찾지 못한 모양입니다. 이렇게 일기를 모아 책으로 낸 것이니까, 책의 부제는 <한 사학자의 6.25 일기>입니다. 김 선배는 6·25 때 미처 피난 가지 못하고 인공치하를 서울에서 고스란히 보냈습니다. 일기에는 한 개인이 겪은 6.25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그것도 사학자의 눈을 통해 보는 것이기에, 좌나 우로 편협된 시각이 아니라 객관적인 눈으로 6.25의 참상이 그려집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전쟁은 어떠한 명분으로든지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것은 물론이고, 전쟁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지난번에 제가 몸담은 호산나 찬양대에서 행주산성에 다녀왔습니다. 해마다 한 번은 야외나들이를 하였는데, 그동안 코로나로 멈췄다가 이번 오래간만에 행주산성으로 야외나들이를 한 것이지요. ‘행주산성’ 하면 행주치마를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왜적과 치열하게 싸우다 무기가 다 떨어져 가자, 여자들이 치마에 돌을 담아 날랐다지요? 그래서 이후 ‘행주치마’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된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이건 잘못된 말입니다. 사실 행주대첩 이전에도 ‘행주치마’라는 용어는 있었거든요. 사람들이 행주대첩의 승리에 취해 이를 떠벌리다가, 행주산성의 ‘행주’와 행주치마의 ‘행주’가 같으니까, 행주치마도 여기서 유래된 것 아니냐는 지레짐작으로 유래가 와전된 것입니다. 그럼 ‘행주치마’는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요?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행자승이 절에서 일을 할 때 두른 치마를 ‘행자치마’라고 하다가 ‘행주치마’가 되었다는 것을 유력하게 봅니다. 그리고 행주대첩을 한산도대첩, 진주대첩과 아울러 임진왜란 3대 대첩이라고 한다는 것도 잘 아시지요? 그런데 ‘대첩’이라면 적을 크게 이긴 승리를 말하는 것인데, 사실 행주대첩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리나라에서 산을 좋아한다는 사람치고 ‘오은선’이라는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예! 세계 여성 처음으로 히말라야 8,000m 고봉 14좌를 전부 오른 분이지요. 그리고 조금 더 아신다는 분이면 국내 여성 처음으로 세계 7대륙의 최고봉을 오른 인물이라는 것도 알 것입니다. 그 오은선 씨가 자신의 등정기를 《오은선의 한 걸음》이라는 책으로 냈습니다. 저는 2011년도에 오은선 씨와 불암산을 함께 산행하면서 나눈 이야기를 월간중앙에 ‘오은선 대장과 불암산을!’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은선 씨가 책을 냈다기에 반가운 마음에 읽어보았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14좌를 오르는 오은선 씨의 거친 숨소리가 옆에서 들리는 듯하였습니다. 은선 씨는 너무 힘들어 어떤 때는 그냥 한 걸음만 절벽 쪽으로 내딛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었답니다. 그러면 1,000m 이상을 미끄러지며 그대로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오죽하면 절벽 쪽으로 한 걸음을 내딛고 싶었을까? 그 극한적인 상황을 떠올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합니다. 은선 씨가 오른 산 가운데 제일 힘들었던 산은 어떤 산일까요? 머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오래간만에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보았습니다. 신반포교회 호산나 찬양대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김은경 소프라노가(계속 김은경 소프라노라고 하려니까 호칭이 길어 앞으로는 그냥 ‘은경 씨’라고만 하겠습니다.) 여주인공 비올레타로 출연하기 때문에 보러 간 것이지요. 그동안에도 찬양대 광고 시간 때 가끔 은경 씨가 공연한다는 얘기를 듣긴 하였는데, 일정이 안 맞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려 한 번도 가보지 못하다가, 이번에 처음 가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번에 간 것도 제가 올해 찬양대장이 되는 바람에 명색이 찬양대장인데 가지 않으면 도리가 아니라는 의무감도 작용한 것임을 자백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이번 공연은 글로리아 오페라단이 주관하는 공연입니다. 음악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잘 모르는 오페라단이지만, 1991년에 창단하였으니 우리나라로서는 역사가 있는 오페라단이네요. 잘 아시다시피 <라 트라비아타>는 뒤마의 소설 춘희(椿姬, 동백아가씨)를 베르디가 오페라로 작곡한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소설 <춘희>를 오페라로 한 것이기에 <라 트라비아타>도 비슷한 뜻의 이태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季冬漢江氷始壯 (계동한강빙시장) 千人萬人出江上 (천인만인출강상) 丁丁斧斤亂相斲 (정정부근란상착) 隱隱下侵馮夷國 (은은하침풍이국) 斲出層氷似雪山 (착출층빙사설산) 積陰凜凜逼人寒 (적음늠늠핍인한) 朝朝背負入凌陰 (조조배부입능음) 夜夜椎鑿集江心 (야야추착집강심) 晝短夜長夜未休 (주단야장야미휴) 勞歌相應在中洲 (노가상응재중주) 短衣至骭足無屝 (단의지한족무비) 江上嚴風欲墮指 (강상엄풍욕타지) 高堂六月盛炎蒸 (고당육월성염증) 美人素手傳淸氷 (미인소수전청빙) 鸞刀擊碎四座徧 (난도격쇄사좌편) 空裏白日流素霰 공(리백일류소산) 滿堂歡樂不知署 (만당환락불지서) 誰言鑿氷此勞苦 (수언착빙차노고) 君不見道傍暍死民 (군불견도방갈사민) 多是江中鑿氷人 (다시강중착빙인) 늦겨울 한강에 얼음이 꽁꽁 얼자 많고 많은 사람들 강 위로 나와서는 쩡쩡 도끼질로 얼음 찍어내는데 울리는 소리가 용궁까지 가 닿겠네 깎아낸 두꺼운 얼음은 눈 덮인 산처럼 보이는데 차갑게 쌓인 음기 사람에게 닥쳐온다. 아침마다 등에 지고 빙고로 들어가고 밤마다 망치와 끌 챙겨서 강 복판에 모인다. 낮 짧고 밤은 길건만 밤에도 쉬지 못하고 주고받는 노동요 소리만 모래톱에 울린다. 정강이가 드러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