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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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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내기 사랑 / 최홍련

석화 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19

[신한국문화신문=석화 시인]누가 세수시켜 놓았는지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은 높고 푸르다. 주는 대로 꼬박꼬박 먹다보니 어느새 벌써 반백 나이가 되였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찾지 못했던 추억속의 모교를 정말 오랜만에 찾았다. 연길시조양천1중이라는 간판을 보노라니 어느새 학교 때 추억이 해변가 파도처럼 철썩이며 밀려온다. 그게 몇 학년 때 일이였지? 아마도 고중1학년 후학기 문과반에 다닐 때 일이었던 것 같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싣고 흐르는 세월 속에서 모든 것이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서 희미해지지만 사춘기 때 짝사랑을 했던 일은 아직도 내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나는 그때 향화라는 녀자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맨날 하학종이 울리면 손에 손을 잡고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백양나무사이를 누비였다. 소곤소곤 밀담을 하면서 네가 좋아하는 남자애는 누구냐? 내가 좋아하는 남자스타일은 누구다. 그러면서 쏙닥쏙닥이 끝이 없었다. 내가 반했던 남자애는 초중 때 못 보던 애였다. 고중에 올라가면서 다른 지방에서 우리 학교에 입학해 온 것이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쭉 빠진 롱다리, 우리 반뿐만 아니라 전교 녀자애들 환심을 사기엔 충분했다. 게다가 왜 검실검실한 얼굴

눈썹 달 / 조순옥

석화 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18

[신한국문화신문=석화 시인]하늘을 때리는 요란스런 굉음과 함께 비행기는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벌써 남쪽으로 쏜살같이 날아간다. 공항에서는 울음보를 터뜨리는 애들이며 누가 볼세라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는 안해들이며 배웅나왔던 사람들이 삼삼오오 흩어지며 서운한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나는 두 발이 자석에라도 붙은 듯이 멍하니 서서 비행기가 날아간 하늘만 쳐다보았다. 텅 빈 사막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다. 타향에 가는 언니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길 옆의 락엽이 쓸쓸히 나뒹굴고 을씨년스런 찬바람에 머리카락이 얼굴을 마구 가린다. 같은 부모한테서 태어났어도 언니와 나는 색깔이 전혀 다르다. 언니는 조용조용한 성격에 배려심도 많다. 단아한 반달눈썹에 새물새물 웃는 눈, 동글납작한 작은 이마에 검고 윤기 나는 단발머리, 소녀 같은 맑은 피부에 호리호리한 몸매까지 누구 봐도 천상 여자였다. 우리 삼남매 중 언니와 나는 년년생이라 유난이 끔찍했다. 어릴 적부터 내가 언니 뒤를 졸졸 따라다녀서 언니친구도 다 내 친구로 돼버렸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친구얘기만 나오면 우리 둘은 신이 나서 밤 세는 줄 모르게 수다를 떤다. 엄마의 말씀을 따르면 나도 아주 착했다고 한다. 어릴 적

사이판아 잘 있거라, 박기란

석화 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17

[신한국문화신문=석화 시인]1999년 가을, 나는 사이판에서 귀국한지 며칠 만에 아들애의 손을 잡고 시장구경에 나섰다. 몇 년 만에 와보는 서시장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처음 들린 과일매장에는 형형색색의 과일들이 주런하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군침을 꿀꺽 삼키며 아들애한테 물었다. “뭘 먹을 거야?” 먹을 걸 사주면 좋아할 줄 알았던 아들애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몇 번 권했지만 아들애는 여전히 싫다고 했다. “그럼 놀이감을 살까?” 나는 놀이감 매장 앞에 가서 아들애보고 마음대로 고르라고 했다. 이번에도 아들애는 한사코 싫다고 하면서 집으로 가자고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그럼 다른 데로 가볼까?” “아무것도 안 살 거야. 놀이감이랑 먹을 거랑 사구 돈을 다 써버리믄 엄마가 또 사이판에 갈까봐 싫어.” 순간 나는 목구멍에서 뜨거운 무엇이 욱- 올리 밀었다. 엄마 없는 세월이 얼마나 싫었으면 이럴까?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1995년도 다 저물어가던 11월18일, 나는 세 살 난 아들애를 남편한테 맡기고 로무일군들의 행렬에 끼워 사이판으로 떠나갔다. 태평양을 날아넘어 사이판에 도착했을 때는 세 번째 날인 21일 새벽이었다. 행장을 풀고 한 두어 시간 눈을 붙

아버지의 무덤앞에서 / 손정화

석화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15

[신한국문화신문=석화 시인]어느 때부터 남편이 미안한 눈길을 보내더니 올해 한가위는 오빠와 함께 내 친정아버지의 산소에 가보자고 청들었다.(그동안 오빠와 형님 수고했어요! 해마다 잊지 않고 아빠의 산소를 찾아주셔서… 이 못난 동생을 용서해주세요!) 해마다 찾아오는 아빠의 산소지만 올해 따라 낫질하기 바쁠 정도로 이렇게 풀이 컸는가고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오빠가 낫부터 꺼내든다. "아빠, 막내딸 왔어요. 아빤 그래도 이 막내딸 알아볼 수 있죠? 어릴 적 오빠와 엄마의 꽁무니를 따라 아빠의 산소를 찾아 뵌 뒤로, 시집간 딸은 친정집 산소를 찾아뵈면 나쁘다는 봉건의식에 30여년이 되도록 여태껏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뵙지 못했어요. 제가 '못 된 딸년' 맞죠?"하고 내가 입으로 주절주절 댄다. 오늘따라 아빠의 무덤 위에 꺼칠하게 자란 저 풀이 마치 길게 자란 아빠의 머리 같아 보여 오빠의 손에 쥐였던 낫을 빼앗으며 "불효한 딸"의 감투를 벗어보려고 나는 아빠의 "머리"를 다듬어본다. 그동안 아빠가 많이 노여워 했나보다. "머리"가 이렇게 더부룩할 정도로 자랐으니… 올해 따라 하늘에서 물함지가 륙속 터지는 바람에1 억세게 자란 저 풀~ 그동안 아빠가 이 막내딸 와주

꼬마신랑, 내 인생 최고의 선물 / 홍명희

석화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14

[신한국문화신문=석화 시인] 신랑 없는 집은 휑뎅그렝한 게 텅 빈집 같다. 왜서인지 애들도 아빠만 없으면 완전 군대기율로 얌전해진다. 찰칵찰칵 시계소리가 고요한 집안의 적막을 깨뜨리고 가슴을 허비며 또렷이 들려온다. 집에 있을 때는 별로 못 느끼던 신랑의 빈구석이 그가 밖에만 나가면 이렇게 너무나도 크게 안겨온다. 나는 애들이 잠든 깊은 밤에 초조히 창가에 서서 애들 아빠가 또 어디선가 과음하지나 않는지 괜한 근심만 하고 있다. 세월이 참 빠르다. 어느덧 신랑이랑 같이 살아온 지도 거의 20년 세월이 된다. 신랑은 나한테 참으로 고맙고 귀인 같은 사람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사람이 옆에 있어야만 반짝반짝 빛을 뿌릴 수 있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지금도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20년 전의 그 그림이,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중 2학년에서 자퇴한 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던 어느 날 마음씨 좋은 이웃의 소개로 지금 시댁에서 하는 쇼핑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다. 여직 내가 살던 세상이랑 너무 다른 환경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돈을 이렇게 많이 벌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로 큰 장사가 아니었지만 당시 돈 없어 대학시험도 못 치고 중학교를

묵직한 주산 / 리정림

석화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13

[신한국문화신문=석화 시인] 지금 회계일은 보통 계산기로 하지만 나는 오랜 습관으로 주산으로 하는 것이 편하다. 나는 퇴직 전까지 향병원의 회계업무를 주산으로 했는데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주산은 바로 남편이 향진재정소일 그만두면서 나에게 물려준 것이다. 이 주산은 어찌 보면 남편이 순박한 사업심을 물려받은 것 같아서 남편이 따스한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주산이다. 남편이 땀과 노력 정직함과 성실함이 숨어있는 이 주산은 늘 내 곁을 지켜주었다. 퇴직하고 초빙 받은 새 회사에서 회계업무를 할 때도 이 주산으로 매달 수입, 지출, 재무분석 등 업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하여 회사 일을 항상 제집 살림처럼 알뜰히 했고 회사운영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요즈음 문학공부를 하면서 이것저것 뒤지다 서랍 속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이 주산을 보게 되었다. 남편이 떠나고 나서 혹시 이 주산을 보게 되면 눈물이 쏟아지고 가슴 아픈 추억이 되살아날 것 같아 서랍 속에 깊숙이 넣어두었던 것이다. 이 주산은 남편이 청춘을 그려볼 수 있고 남편의 손때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유일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주산을 마주하고 보니 잊은 줄 알고 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이모네 뜨락 / 리해란

석화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12

[신한국문화신문=석화 시인] "이모!"정겨운 시골집이 한눈에 들어오자 애들처럼 목청껏 웨치는 내 부름소리에 이모와 이모부가 부엌문을 왈칵 열고 급히 달려 나오신다. 어쩌다 찾아간 시골 이모네 댁, 삼십여 호되던 마을은 이제 달랑 세집뿐이다. 뜨락을 감싸고 있는 헐렁한 널바자*는 이제 조금씩 구부정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모부가 힘이 딸려 대충 해놓은 듯한 창문의 문풍지는 먼지를 가득 뒤집어 쓴 채 제 구실이나 하나 싶게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그 밑에는 가쯘하게* 패 놓은 장작들이 차곡차곡 곱게 쌓여져 있었다. 오랜만의 만남에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의 환호소리와 그 구경에 신이 난 강아지와 병아리들의 요란스런 동참으로 조용하던 시골집 뜨락은 삽시간에 왁짝 끓어번졌다*. 동년시절, 대부분 방학시간을 나는 이곳 큰이모댁에서 보냈다. 이모네는 위로 아들 둘 아래로 딸 하나로 슬하에 이남일녀를 두셨다. 열한 살에 아버지를 여읜 내가 혹 주눅이라도 들까봐 이모는 나를 각별히 아껴 주셨다. 나보다 한 살 더 먹은 사촌언니가 엄청 질투할 정도로… 열두 살쯤 될 때의 일로 기억된다. 마을에 보따리옷장수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그 시절농촌에는 현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