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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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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어머니” / 김영자

석화 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28

[신한국문화신문=석화 시인] “엄마”라는 말과 “어머니”라는 말은 같은 말이면서 다른 말이다. 우리집에서도 그렇고 어릴때 우리가 살던 시골 고향마을에서도 그렇고 “엄마”라는 말과 “어머니”라는 말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말이였다. 우리가 이런 느낌을 받게 된것은 순전히 우리 어머니에서 비롯된 것이다. 며칠전, 시조카의 결혼잔치에 갔다가 딸애가 수탉모양의 옛날식 색과자를 얻어왔다. 하지만 돌처럼 땅땅한 색과자를 그대로 먹을수 없어서 봉투채로 나한테 맡겼다. 그래서 어릴때 우리 어머니가 하시던대로 시루를 놓고 쪘는데 솥에서 피여오르는 향긋한 과자향기에서 나는 어른거리는 어머니 모습을 떠올렸다. 우리 어머니는 보통 키에 항상 깡굴깡굴* 짧은 파마머리를 하셨는데 갸름한 얼굴에 눈매며 콧마루며 입매가 부드러웠다. 아무리 힘든 농사일을 하셔도 밖에서 집으로 들어오실 때에는 늘쌍 방그레 웃으셨다. 어머니는 우리 오남매들이 실수하거나 잘못해도 언성을 높여 꾸짖거나 탓하지 않고 몇 마디로 너그럽게 넘어가주셨다. 그러나 우리들의 불손한 언행에 대해서는 항상 조곤조곤 타일러주셨다. “세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집에서 새

토색목도리에 깃든 사랑 / 리정화

[석화 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27]

[신한국문화신문=석화 시인] 동지섯달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겨울이면 어린 학생들이 엄마손을 잡고 학교로 가는 모습을 본다. 털목도리, 털장갑, 따뜻한 신발로 전신무장한 애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나는 넋 없이 이런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어느덧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우리 집은 오빠와 언니 둘 그리고 남동생과 녀동생에 나까지 모두 여섯남매였다. 어머니는 장기환자였고 아버지의 한분의 노동력으로 꾸려가자 보니 매우 가난하였다. 어릴 때 나는 언니들이 물려주는 옷을 기워 입었고 새옷은 언제 입어봤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70년대의 겨울은 어찌나 추웠던지… 소학교는 마을에서 5 리나 떨어진 곳에 있어 하학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입김에 눈썹이 어느새 할아버지 눈썹으로 되고 살을 에는 추위에 입이 얼어 말도 더듬거리게 된다. 또한 불어치는 눈보라를 피하려고 뒷걸음치며 걷다가 넘어지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귀가 얼어서 벌겋게 부어나니 어머니가 눈밭에서 가지대를 가져다 끓여서 그 물로 씻어줄 때도 있었다. 소학교 3학년 때, 우리반 담임선생님으로 김련숙 선생님이 오셨다. 항상 웃음 띤 얼굴에 인자한 모습인 선생님을우리들은 모두 좋아했다. 선생님께

행복노트 / 김경희

석화 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26

[신한국문화신문=석화 시인] 나한테는 행복노트가 하나 있다. 바로 우리 딸 란이가 어렸을 때부터 커온 과정을 기록한 성장노트이다. 열 달 만에 홀로 서기를 하던 그 시각의 기쁨, 2살에 아기코끼리 이야기를 한번 듣고 외우던 놀라움, 7살에 아빠 생일선물로 그린 카드, 소학교부터 고중까지 성적표들, 그리고 가족 사이에서 오갔던 편지들… 현재 기업경영고문과 프로강사로 활약하는 우리 딸은 30대이지만 이 엄마가 보기에도 뿌듯한 많은 성과들을 거두었다. 전 미국대통령 부시, 세계경제포럼 주석 클라우스 슈바프 및 중국외교부장 왕의 등 국가리더와 유명인사들의 외교통역을 담당했는가 하면《빅데이터(掘金大数据)》의 번역저자이기도 하다. 영국 런던대학 발전관리학 석사, 청화대학 경영관리학 석사(MBA)를 졸업한 딸은 청화대학 경제학원 력사상 처음으로 조선족녀학생이 졸업대표강연을 하면서 력사의 한 페이지를 남겼고 요즘은 천진위성 유명프로그람 “그대만이 할 수있다〈非你莫属〉”의 인력자원고문으로 위임되면서 매체인지도도 꽤 높다. 프로필이 화려한 딸은 또 일만 잘하는 게 아니라 현재 북경애심녀성네트워크 차세대담당 부회장, 전국애심녀성포럼 차세대 위원장을 맡아 ‘80, 90후’ 차

남편의 결혼선물, 함란

석화 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25

[신한국문화신문=석화 시인] 해마다 결혼기념일이 다가오면 은근슬쩍 짠돌이남편의 동정을 살펴보지만 올해도 그냥 아무것도 없는 모양이다. 아무리 말끝마다 힌트를 날려도 먹혀들지 않는다. 남들은 생일이요 “3.8절”이요 결혼기념일이요하면서 안해한테 묵직한 선물들도 척척 안겨준다는데 나는 여태껏 남편한테서 선물다운 선물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처음부터 싸구려머리핀이나 꽃 한 송이 같은데 감격해하면서 너무 "싸게" 논 탓인 것 같다. 살다보면 싸우고 말다툼하고 앵돌아질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퇴근길에 사다주는 고작 “차단(茶蛋)” 두 알을 받아 쥐고도 해시시 했고 포장해서 들고 온 퉁퉁 불은 랭면 한 사발에도 헤벌쭉하는 순둥이였으니 값진 선물 한번 못 받은 것도 내 탓인 듯싶다. 가짜라도 진짜처럼 받아 줄테니 길거리에서 파는 가짜 반지라도 사 달라 했더니 들었는지 말았는지 한번 씽긋 웃으니 그만이다. 무뚝뚝한 자기 오빠한테 연신 쫑알거리는 이 올케가 보기 안쓰럽고 측은해서였을가? 십여 년전 시누이가 한국에서 힘들게 번 돈으로 나한테 금반지를 선물했다. 살기가 빠듯하다는 핑계로 시부모님이나 시누이한테 언제 통이 크게 마음 한번 써본 적이 없는 시누이에게서

투도온면의 또 다른 의미 / 김서연

석화 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24

[신한국문화신문=석화 시인] 몇달전 우연히 한국의 맛집 TV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었다. 맛있게 음식을 먹는 진행자들에 열광하는 시청자들, 덕분에 프로그램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가고 있었다. 10분여를 재미있게 시청을 하다가 화면이 바뀌었고 나는 깜짝 놀라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연변 투도온면이 한국 프로그램에 소개되고 있는 것이었다. 진행자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의 입에는 침이 고였고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 맛을 알기에 더욱더 그리웠다. 그러나 나 또한 조금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과연 투도온면이 “온전한” 우리의 음식일까? “아, 역시 고수(香菜)가 듬뿍 들어가 있네요. 허허.” 진행자는 요리전문가로 고수(香菜)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 듯 했다. 그는 맛있게 젓가락질을 하며 국수를 마시듯 먹고 있었다. 가운데 자막으로 음식에 대한 소개가 참 인상 깊었다. “이 지역 조선족 동포, 한족 고객 모두에게 인기 만점인 연변 특유의 입맛을 돋우는 구수한 국수.”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진행자의 해설… 씹는 맛이 일품인 밀가루 면발에 시원한 소고기육수가 풍미를 살리고 살포시 얹어진 소고기 두 점은 정을 나누기에는 충분하고 송송 썰어놓

우리 마을 전봇대사건 / 전옥선

석화 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23

[신한국문화신문=석화 시인] 오늘 오래 만에 소꿉친구 해숙이를 만났다 40대 중반을 넘어서도 한 미모하는 예쁜 친구와 함께 커피숍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푸노라니 우리는 30년 세월이 지나도 미스터리로 남은 전봇대사건이 또 화두에 올라 이리저리 추측을 하면서 웃기도 하고 시무룩해지기도 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갸우뚱해지면서 서글픈 웃음이 나간다. 해숙이는 우리 마을 십여 명되는 여자애들 가운데서 제일 이뻤다. 하야말쑥한 피부에 그 세월에 염색이란 것도 없었는데 특이하게도 약간 파도치는 금발의 머리에다 크고 까만 오목눈에 상큼한 콧날, 작은 입술을 가진 인형같은 여자애였다 우리가 초중을 다닐 때니 열댓 살이라 하겠다. 버들방천에서 우리 마을 여자애들이 엇바꾸어 보초를 서가며 목욕을 하다가 해숙이 피부가 너무 고와서 황홀하게 바라보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예쁜데다 성격도 부드럽고 유순하여 애들한테 인기도 있었다. 해숙이가 이렇게 이쁜 건 자기 엄마를 똑빼 닮아서이다. 해숙이 엄마는 농촌에서 사는 여자치고는 너무 미인이다. 우리 엄마들의 파마머리는 항상 꼬실꼬실하였지만 해숙이엄마는 굽실굽실 파도치는 파마머리를 어깨까지 곱게 드리우고 삔으로 량

사랑하는 내 딸아 / 최홍련

석화 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22

[신한국문화신문=석화 시인] 설핏 잠들었다가 깨고보니 외로운 등불이 왜 벌써 일어나느냐는듯 나를 빤히 내려다본다. 나는 어지러이 널부러져있는 책들을 보며 픽 웃어버린다. 이게 벌써 한두날도 아니고 거의 한달째 계속되는 일상이다. 자다말다 깨서는 책 보고 보다가는 자고... 그러니까 그게 지난해 12월 12일이였구나. 널 대련에 미술공부시키느라 데려다준 날이 바로 그날이였지. 나는 눈을 집어뜯으며 다시 안경너머로 폰에 저장된 날자를 확인해본다. 네가 없는 이 한달동안 엄마는 너의 방에서 맴돌았단다. 매일 시집들을 찾아 읽고 시도 써보면서. 겨울의 긴긴밤을 지새운적은 그 얼마였던가. 지금도 이 글을 쓰노라니 또 너희들 생각이 절로 나는구나. 우리 함께 대학입시를 향해 손잡고 달리던 날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구나. 오, 맞다. 네가 고중2학년이 된 다음부터였지. 저녁마다 젊은 청춘에 쏟아지는 잠을 쫓느라 커피를 타 마시기도 하고 그 추운 겨울에 창문을 활짝 열어놓기도 하며 넌 그야말로 공부에 온 정력을 쏟고 있었지. 그러는 너를 지켜보다가 난 감기 걸린다고 창문 닫으라고 소리쳤지. 그러면 잠들어 공부 못하면 엄마가 책임지겠는가 하는 너의 날카로운 대답질이 들려오고

동년의 락원, 이모네 텃밭 / 김영자

석화 시인이 전하는 연변이야기 21

[신한국문화신문=석화 시인] 동년, 하면 나의 눈앞에는 항상 이모네 집이 먼저 떠오른다. 이모는 화룡 동성 명신에서 사셨는데 나는 학교 다니기 전 이모네 집을 제집처럼 다녔었다. 이모네 집은 독집이고 앞뒤 텃밭이 아주 컸다. 그 텃밭은 내가 온종일 꿰지르고 다녀도 싫증나지 않는 나만의 락원이였다. 어른들이 일밭으로 가고 언니 오빠들이 학교에 간 뒤면 혼자 남은 나는 텃밭을 찾는다. 노란 꽃을 달고 디룽디룽 꺼꾸로 매달린 오이도 먹음직스럽지만 찬란한 햇빛 아래 파란 잎사귀 뒤에 반쯤 숨어 빠꼼히 내다보는 빨간 토마토가 더 유혹적이다. 하나 뚝 따서 옷섶에다 쓱쓱 문질러서 그 자리에서 쓱쓱 냠냠 먹어치운다. 뭐니 뭐니 해도 텃밭에선 꽈리의 유혹이 제일 컸다. 꽈리를 뜯어서 겉껍질을 뜯어내고 겉껍질과 이어졌던 자리를 약한 나무꼬챙이로 구멍을 뚫는다. 꽈리즙과 씨가 구멍으로 나오도록 엄지와 식지(집게손가락)로 살살 비비고 우벼낸다. 꽈리 속을 다 우벼낸 다음 껍질만 남은 빈 꽈리를 입에 넣고 공기를 들이그으면* 똥똥 불어난다. 이때 꽈리 허리를 깨물면 꽈르륵 귀맛 좋은 소리*가 울린다. "꽈르륵 꽈르르륵 꽈르륵 꽈르르륵" 끊어질 듯하다가도 이어지는 꽈리소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