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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승의 북한굿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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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 본영 대동굿의 광대굿

[양종승의 북한굿 이야기 16]

[우리문화신문=양종승 샤머니즘박물관 관장] 황해도 해주 본영 대동굿은 탈굿이라고 할 만큼 광대놀음이 중요하다. 광대를 놀려야만 마을의 돌림병을 막고 가가호호 좋지 못한 해로운 액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군굿에서 작두를 타고 내려온 뒤, 곧이어 시작되는 광대굿은 남녀광대가 마당에서 한삼을 뿌리고 광대춤을 추면서 거하게 한바탕 논다. 이어, 원광대가 만세받이를 하고 공수를 내린 뒤 상장구 갖은 재담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마을 사람 모두의 입설, 구설과 열두 도액을 막아내는 덕담타령도 한다. 또다시 광대춤을 추고 익살스러운 짓거리와 줄타기를 하면서 흥겹게 논다. 광대굿을 마무리할 때는 원광대가 날만세(빠른 장단으로 된 만세받이. 만세받이는 신을 청하는 청배무가의 하나)를 한다. 광대굿의 만세받이, 공수, 재담, 덕담타령, 날만세 등은 다음과 같다. <만세받이> 모여랴오 모여랴오 광대탈대감 모여랴오 해원단년 00년에 달에 월색은 00상달 날에나 천문은 00날이요 고을로는 황해도땅 해주하고도 00동에 일월이영천 대령할 때 광대대감이 노사니다 내광대 본영은 광대산 줄바위 광대로다 외줄을 타신 광대씨요 쌍줄을 타시던 광대씨라 남광대 여광대 구어비 남성수

황해도 해주본영 대동굿

[양종승의 북한굿 이야기 13]

[우리문화신문=양종승 샤머니즘박물관 관장] 황해도 해주 본영 대동굿은 광대신을 모시고 마을 돌림병을 막아내고 마을 사람의 안녕 그리고 대동단결을 모색하기 위해 치러지는 마을굿이다. 대동굿을 거스르면 심술궂은 광대신이 해코지를 하므로 때가 되면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광대신 모시기를 깍듯이 해 왔다. 이에 대한 회고담을 해주 본영 대동굿 전승자 박선옥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본영에는 사람들 왕래가 잦아 마을 장터에서는 남녀 유별함이 훼손되고 부녀자의 불륜이 일어나는 좋지 못한 일들이 자주 발생하였다. 특히 근친상간인 상피붙음 같은 불길한 일이 일어났다. 마을 원로가 유명 선관 도사를 찾아가 물었다. 도사는 광대산에 사당을 지어서 광대신을 봉안하고 극진히 대접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해마다 남녀 두 사람을 탈광대로 분장시켜 모의 연애를 하면 마을의 불길한 일을 막아 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선관 도사 말에 따라 마을 사람들은 광대산에 사당을 지어 광대신을 모셨다. 그리고 대동굿을 할 때면 광대신을 강림시켜 광대굿을 펼쳤다. 그 뒤로 마을이 평안하고 불길한 일이 없어졌다. 이와 같은 사실이 순식간에 여러 마을로 퍼져나갔고, 해주 옹진 일대의 대동굿에서는 이

만구대탁굿 전승자 나랏만신 우옥주

[양종승의 북한굿 이야기 12]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우옥주(禹玉珠, 본명 李順愛, 여)는 황해도 옹진군 북면 화산동리에서 경신년(庚申年)인 음력 1920년 11월 17일 태어났다. 무남독녀로 태어나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우 씨 할아버지는 고위 관직에 올랐고 증조부는 한의로 명성을 떨쳤다. 끝까지 가르쳐 보자는 어른들 욕심에 우옥주는 어린나이 6살 때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여고 2학년 때인 17살 때 갑자기 마를 때로 마르면서 폐병 3기에 들어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병석에서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 즈음 집안에 갑자기 우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비 내리던 여름날 밤, 느닷없이 힘이 솟구친 우옥주는 옹진 진수대로 나가 죽은 송장을 파왔다.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집에서는 신이 들려 그렇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지만 끝까지 무당 되는 것을 반대하였다. 무당 될 거면 집안 망신시키지 말고 칼이라도 물고 죽으라는 전주 이씨 가문의 저주에 아무런 인연도 없는 단양 우씨로 바꿨다. 그리고 무당이 되었고 병은 낳았다. 이때부터 이순애는 성과 이름을 갈아 우옥주가 되었고 나이 또한 다섯 살이나 늦도록 호적이 만들어졌다. 오갈 데 없는 우옥주는 최일리 만신을 어

만구대탁굿과 나랏만신 김기백

[양종승의 북한굿 이야기 11]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만구대탁굿은 족보 있는 무당들에 의해 전승되어 왔다. 그 중심에는 황해도 신천에서 출생하여 7살 때 아버지를 따라 옹진읍 개울몰[堂峴里]로 들어와 살았던 김기백(남, 1893-1944) 나랏무당이 있다. 월남한 실향민들에게 전설적 무당으로 알려진 김기백은 1981년 한국일보가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위대한 한국인 연재에서 조선 무당으로 소개돼 그의 생애 일부가 세간에 알려지기도 하였다.(최성자, 「한국서민열전(國庶民列傳):격동의 근대를 살다간 위대한 한국인들-조선 무당 김기백(28)」, 한국일보 , 1981년 8월 2일) 곱상한 외모와 가는 몸매의 체형을 가진 김기백은 겉으론 보기엔 왜소하기 그지 없었지만 내적으로는 강한 의기와 투철한 애국심을 가졌던 조선 무당이었다. 옹진으로 이주한 어린 시절의 김기백은 아버지와 함께 만석꾼 집에서 종살이를 하였다. 14살 되던 해, 소 풀을 먹이러 나갔다가 바위에 걸려 뒤로 넘어져 기절하였다 깨어난 뒤부터 유식하고 영험한 소리를 하게 되었다. 주위에서 신이 내린 것 같다고 하였지만 김기백의 아버지는 남의 집 종살이를 할망정 광산 김씨 집안 망신은 안 된다며 아들의 신내림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결

만구대탁굿 제차 및 내용

[양종승의 북한굿 이야기 10]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1) 안반고사 - 안반(安盤) 위에 갖은 떡을 올려놓고 행하는 일종의 떡고사로서, 비리고 누린 것 금하고 목욕재계한 후 정갈하게 옷을 입은 경관만신(황해도 굿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만신)이 안반(떡판) 앞에 앉아 만구대탁굿이 잘 풀릴 것인가를 알아보는 염탐을 한다. 2) 신청울림 - 쇳소리와 가죽소리로 울림을 내어 굿이 시작될 것임을 알리고, 신이 강림하여 좌정할 신청(神廳)문을 열어서 신이 좌정할 공간을 정화한다. 3) 일월맞이 - 천지가 맞닿고 동서남북 사방이 트인 굿청 앞마당에 차려 둔 일월상 앞에서 쇠열이를 하여(쇠붙이로 된 방울 곧 꽹과리와 제금으로 쇳소리를 내어) 일월성신의 길문을 연 후 용궁단지를 타고 사해용왕신을 모신다. 4) 물베띄우기 - 석 자 삼베를 물이 가득 찬 용궁단지에 넣으면서 명진주, 복진주, 솟을진주, 외길진주로 동서남북 사해용왕님께서 도와 달라고 축원한다. 5) 상산맞이 - 산천맞이 또는 산맞이라고도 하는데, 굿청 앞마당에 차려둔 일월맞이상 앞에서 방울과 제금으로 쇠붙이 소리를 내어 신령이 왕림하도록 상산문을 연다. 6) 부군맞이 - 부군남여서낭과 부군할머니할아버지를 모신다. 마무리에서는 굿상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