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상아 시인] 송 곳 - 김상아 이 그리움을 글로 못 쓰면 바보 아무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바람이 빠져나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아내에게는 그냥 지쳤다고만 말했습니다 TV로 공연실황이나 보며 쉬자고 했습니다 이삿짐 정리하다 송곳에 코끝을 찔렸기 때문입니다 이 슬픔을 티 내면 바보 아내에게는 비밀입니다 나보다 더 큰 그리움과 슬픔을 견디며 살아내기 때문입니다 딸아이와 나는 오래전에 헤어졌습니다 지금은 중학생쯤 되었을 겁니다 이태 전에 아내는 딸아이를 가슴에 넣었습니다 나를 무척 따르던 아이였습니다 초저녁이면 쫄병을 거느리고 나타나는 대장별이 그 아이입니다 남은 게 남는 거라는 걸 모르면 바보 두고 온 아이의 사진 몇 장, 낙서 몇 점의 애 마름도 이토록 후비는데 방안 가득한 떠난 아이의 손길은 오죽하겠습니까 아내는 몽당연필 한 자루도 버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재주가 낭추* 같던 딸들아! 심장을 찍는 이 호미질을 너희는 몰라도 된다 재능이 주머니 속에 그냥 있어도 괜찮다 노래 같은 너희 웃음소리로 아침을 열고 반짝이는 눈빛과 밤을 맞을 수만 있다면 바보라도 좋습니다 이 그리움을 글로 못 쓰더라도 * 낭추(囊錐)-낭중지추(囊中之錐)의 준말. 주머니 속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시인] 통 발* - 김상아 음악보다 술이 좋은지 슬프거나 힘들 때면 나는 술을 먼저 찾는다 글쓰기보다 글 자랑이 좋은지 책 내는데 정신이 팔려 몇 달째 글 한 줄 안 쓰고 있다 대나무는 잎은 흔들려도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다 강해서가 아니라 지조 때문이다 나는 어쩌다 통발 풀이되어 물 위를 떠돌았을까 달그림자를 보고도 짖어대는 개가 되어 구린내 나는 곳을 쏘다녔을까 제발 본모습 좀 지키라는 마누라 바가지에 다시 붓을 세운다 * 통발 - 부유성 수생식물. 뿌리가 없다.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멸치 장수 그가 북평장에 온 건 꽤 오랜만이었다 장사가 시원찮아 쉬었는지 다른 장엘 다녔는지 알 수 없지만 걸걸한 호객 소리나 깎아 주는 체 받을 거 다 받는 너스레는 여전했다 그에게 달라진 게 하나 있기는 했다 본디부터 아내였는지 안 보이는 사이에 얻었는지 알 수 없지만 허리춤에 여인네를 하나 소문 없이 꿰차고 있었다 여인은 꼼짝도 안 하고 한 곳만 바라보거나 낚시 의자에 앉아 졸기만 했다 배냇병인지 살다가 탈이 났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흥정 중에도 곁눈질로 여인네를 챙기곤 했다 무표정하기만 한 여인은 좋아서 따라왔는지 억지로 끌려왔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손길이 싫지는 않아 보였다 좌판 자리를 말끔히 비질하는 그가 다음 장에 또 올지 말지는 알 수 없지만 늘 다정히 보듬고 살기를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길 잃은 고라니 - 김 상 아 길을 잃는 꿈을 꾸곤 했다 진창길을 허우적대거나 벼랑에 매달려 바둥거리거나 길이 없어져 갈팡질팡하다 깨곤 했다. 때론 길을 잃고 싶기도 했다 사막 뿔살무사처럼 낮에는 모래 속에 숨었다가 신기루를 찾아 하염없이 달빛 속을 걷고 싶었다 칸첸중가* 어느 골짜기도 좋고 안데스의 한 비탈길이라도 좋았다 정치가 없고 모순이 없고 부조리와 불평등이 없는 곳 이긴 자와 진 자, 먹는 자와 먹히는 자가 없는 곳이라면 외치*가 되더라도 찾아내고 싶었다 길 잃은 고라니야 너는 길을 잃어 도시에 들어왔다만 아무래도 나는 저 별꽃밭으로 나가 길을 잃어야겠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프록시마b행성이나 대마젤란은하 어느 행성쯤에서 그리운 이들과 새로운 터전을 일궈야겠다 *칸첸중가 ㅡ 히말라야산맥에 있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외치 ㅡ 알프스에서 냉동상태로 발견된 선사인에게 붙여진 이름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집 억새지붕 집 하나있었지 언제 쌓았는지 이끼 낀 돌담 가에 여섯 살 신랑각시 살았지 고무신 트럭* 몰고 장에 간 신랑 돌아오면 각시는 고양이 시금치* 반찬에 돌가루 밥*을 차려냈지 앵두꽃이 눈발처럼 날리는 집이었지 루핑* 집이었지 여기저기서 쫓겨 온 철거민들이 모여 희망을 만들어가는 곳이었지 전등꽃이 화사히 피어나는 발아래 마을을 바라보며 벽돌집 짓는 꿈을 꾸곤 했지 서울에서 가장 높은 동네였지 너와집 한 채 지었지 사시사철 개울물이 재잘대는 곳이지 햇살 보드런 들창 가에 앉아 늙은 서방은 시를 짓고 색시는 옆에서 술 빚는 집이지 둘이서 기타 치며 노래 부르면 술 익는 내음 이팝꽃에 실려 오지 (낱말풀이) *고무신 트럭 -고무신을 접어 트럭 모양으로 만든 것. *고양이 시금치 - 괭이밥이라고도 불리는 새큼한 맛이 나는 풀. *돌가루 밥 - 소꿉놀이할 때 흰색 돌을 빻아서 쌀이라 했음. *루핑 - 콜타르를 입힌 종이. 60~70년대 철거민들은 루핑으로 비바람을 가리고 살았음.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여러 날이 지난 뒤에야 그 아이의 말버릇은 나와 사뭇 달랐다 조곤조곤 풀어내는 게 내 말 맵시라면 퉁명스레 툭 던지거나 어깃장이 그 아이 말투였다 첫인사를 나누던 날도 그랬다 겉은 심드렁했지만 끌림이 흐르고 있음을 그 아이는 마음으로 이미 읽고 있었다 우리 혼례 때도 그랬다 아빠에게 안 가고 엄마에게 붙은 건 온이 엄마가 좋아서만은 아님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내 전화기를 몰래 가져가 “예쁜 딸 공주님”이라 저장한 속을 왜 들여다보지 못했을까 내게 “아빠”라 불러 볼 겨를도 없이 조잘조잘 손잡고 걷자 벼르기만 하다가 서둘러 제 별로 돌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손으로 만질 수는 없어도 마음으로 만질 수 있음을 내가 낳아야만 피붙이가 아님을 짧은 만남도 긴 사랑으로 남을 수 있음을 그 아이에게서 배우게 되었다 여러 날이 지난 뒤에야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첫 기일(忌日) 해 놓은 건 없어도 하루는 바쁘다 오늘도 해 놓을 것 없는 하루를 위해 뻑뻑한 셔터를 올린다 젖은 솜 물 빠지듯 반나절이 지나야 몸놀림이 좀 쉬워지지만 행여라도 누군가 올까 하여 소스를 끓이고 푸성귀를 씻는다 나중에라도 팔릴까 하여 산나물 다듬어 지 담그는 동안 몰래 해가 저물고 음악 마실 손님 기다리다 어느새 거품 같은 하루가 꺼진다 기대로 하루를 열고 허탈로 하루를 닫다 보면 한 달이라는 덧없음이 쌓이고 열 두 장의 덧없음이 딸아이 떠나던 날의 벚꽃을 다시 피운다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노비(奴婢)라는 신분이 있었지요. 노는 사내종, 비는 계집종을 일컬었답니다. 이들은 관노와 사노로 나뉘는데 관노는 국가기관에 딸린 종이고 사노는 개인 소유의 종으로 재물로 간주되어 매매도 가능하고 국가에 신고만 하면 목을 떼고 붙이는 것도 주인 맘대로였다네요. 그렇긴 해도 주인을 잘 만난 외거(外居)노비는 자유도 누렸고 저만 잘하면 막대한 재산도 모을 수 있었다지요. 백정 계급도 있었지요. 흔히 도축인으로만 알지만 갖바치나* 광주리 장인도 싸잡아 그렇게 불렀다네요. 고려 때는 화척으로 불리다가 조선 조 들어와 백정이라 했는데 아예 사람 축에도 못 든다는 뜻이랍니다. 이들은 성 안에는 물론 기와집에서도살 수가 없었고 외진 데서 모여 살아야 했다지요. 혼인 때 말이나 가마도 탈 수 없었고 상투나 비녀 머리도 할 수 없었고 상여도 장례식도 못 치르게 했답니다. 일반 백성과의 혼인 금지는 물론이고 어린아이에게도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일반인들을 앞지를 수 없었으며 이런 것들을 어기면 죽도록 얻어맞았다지요. 하지만 이들도 먹고 살기위해 빚을 지지는 않았습니다. 상노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이들은 말로는 사장님이라
[우리문화신문=현용운 회장] 애고애고는 왜? 누가 신주라 일컫던 중국 땅의 십억이 넘는 인간들을 송구영신 춘절 대목에 그 무슨 수단으로 모두 불시에 “가택연금” 당하였는가? 폭죽소리 요란하고 꽹과리 북치며 만민이 즐길 신춘가절에 이제 그 누가 이런 횡포를 부렸나 이제 이 무거운 인간비극 족쇄를 그 누가 풀어줄까. 어떻게 풀가? 장강에 묻거니, 지금 내가 무슨 죄요, 또 황하에 묻거니, 우리가 무슨 죄인이요. 묻고 묻는다만 또, 하늘에 물어도 모른다 하고 땅에 물어도 그 답이 없단다. 14억 인간을 “가택연금”한 세상에 들리는 소리 이제 우리 모두 창문 열고 마음을 열고 석고대죄해서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한단다. 하늘이 웃을 때까지 땅도 웃어 자연이 용서할 때까지 빌고 또 빌자. 거룩하신 대자연이여. 정말로 잘못, 잘못했습니다그려 ……하고서 이제 보름만에는 제발 세상살이 나가게 해주소서. 우리 모두 살려고는 하는 인간들입니다그려. 이제 다시 꽃피는 고향동산에서 제발 환생, 재생하도록 속수무책인 우리 인간들한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가택연금” 빨리 풀어줍소서 농장에, 공장에, 학교에 가야 합니다. 죄없는 우리의 살길을 활짝 열어주소서. 제발 빨리. 애고 애고(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