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한줌의 흙 조국이란 이 한줌의 흙으로부터 시작된 것 땅김이 서리고 흙냄새 훈훈한 이 한줌의 흙! 루루천년 조상들의 뼈와 살로 기름지고 선렬들의 피와 땀으로 꽃을 피운 이 한줌의 흙이 모여 조국땅 이뤄졌노라 그렇다 밟고선 이 땅이 없다면 그대 어찌 저 하늘에 웃음 날리며 자유로이 두발 옮겨 디딜 수 있으랴… 따스한 해살이 고맙거든 시원한 바람결 즐겁거든 그대여 먼저 밟고 선 이 땅을 살찌우자 다시는 몰아치는 허풍에 이 땅에서 쭉정이만 날리지 않게 하자 우리 모두의 피와 땀을 쏟아 이 한 줌의 흙부터 알뜰히 가꾸자 조국이란 이 한줌의 흙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1983년2월2일) < 해 설 > 석화시인이 외친 “자아의식”, “주체의식”은 결코 이 세계와 사회를 외면한 폐쇄되고 협애한 “나”가 아니다. 인간은 패쇄적이 아니고 언제나 모든 사회관계의 총합으로서 인간의 의식은 시대와 민족과의 관련 속에서 생성된다. 그는 바로 “자아”를 시대의 거대한 교향곡에 넣어 저기가 밟고선 땅과 맥박을 같이 해왔던 것이다. 시인은 격변시대와 발밑의 토양에 두터운 애착을 안고 삶과 인간에 뜨거운 애정을 보이고 있다. 그의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사는 법 능금나무 한그루 뜨락에 옮겨놓고 사는 법을 배운다 봄이면 지나가던 나비, 꿀벌도 화들짝 놀라게 꽃을 피우고 땡볕이 쨍쨍한 칠팔월에는 인내의 땀방울을 안으로 모아 알알이 열매를 무겁게 하고 마가을* 찬바람엔 남은 잎사귀마저 다 뿌려주고 함박눈이 쏟아져도 그런대로 칼바람이 불어와도 그런대로 맨몸에 빈가지로 말없이 서서 다시 올 봄의 꿈을 조용히 펼쳐가는 능금나무 한그루 뜨락에 옮겨놓고 사는 법을 배운다. * 마가을 : 늦가을 해설 시는 겉을 보면 붓으로 쓰는 것 같지만 실은 그건 시행 위에 흘러가는 마음의 시내이며 강물이다. 언제 가선 시는 또 마음의 격랑으로 사품치는(물살이 계속 부딪치며 세차게 흐르는) 바다로 될 수 있는 것이다. 매 시행에 박힌 글자글자마다에는 시인의 사상과 감정이 고여 있다. 석화의 시는 실은 그의 인생관념과 미학관념, 시창작관념의 시형식으로의 표현일 것이다. 염열한(炎熱, 몹시 심한) 더위에도 “인내의 땀방울을 안으로 모아 / 알알이 열매를 무겁게” 맺고 엄동설한에는 빈 가지에 겨울을 이기며 오는 새봄을 “조용히 펼쳐가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홀로 깨어나 홀로 깨어나 이 깊은 밤 지새게 하심도 당신의 뜻이거니 먼 곳에, 두만강 윗목에 얼음장 갈라 터지는 소리 듣게 하심이리라 별빛도 창유리에 지워지고 죽은 듯이 죽은 듯이 고요로운 이 적막에 가슴 뛰는 소리조차 두려운 이 밤 이 밤 홀로 깨어나 긴 시간 지새게 하심은 이제 열릴 별일 없는 하루가 죄 더 짖지 않는 하루가 되게 하시여 정말 별일 없는 하루로 보내게 하심이리다. 해설 이시는 요란스런제 스처가 없으며 그저 시적대상이 포근한 그리움과 경건한 우러름에 싸여있을 뿐이다. 시적분위기는 매우 아늑하다. 그러나 그러한 고요로부터 드넓은 삶이 흘러나오며 그 흐름 위에 사색의무 늬가 조용히 수놓아진다는데 서시는 주목을 끌게된다. 시인은 “당신”에 대한 무한한 그리움과 경모 속에서 영원한 신적세계를 세우고 있다. 시에 나오는 “당신”은 육체를 낳은 인간으로서의 어머님이면서 또 인간을 깨우치고 이끄는 전지전능하고 지고무상한 영적인 존재이기도하다. 천리혜안을 갖고 있는 “당신”은 “별일 없는 하루” 속에 “별일”이 있으리라는 것을 예언한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지난날 우리들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담 배 아버지는 심심해서 담배를 피운다고 하셨다. (내 아이적 들은 말이다) 저 화장터도 심심해서 길다란 담뱃대를 하늘에 겨누었을까? (오늘 아버지를 화장한다) 그런데 나도 지금 심심해서 담배를 꼬나무나 (높다란 굴뚝에서 흰 연기 한 가닥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해설 시 “담배”(석화, 《흑룡강신문》1986년8월16일)는 얼핏 보면 순간적인 감수를 심상한 시행속 에서 펴보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런 심상한 시행의 리면에는 보다 복잡하고 곡절적인 과정적 느낌이 함축되어 있으므로 하여 서정시의 사색적분위기를 짙게 한다. 여기서 이 시의 함축적의미를 해독하는데 있어서 관건은 아마 “담배”란 단어의 상징적 의의를 벗겨보는 일일 것이다. 담배라고 하면 보통 위에서 언급한 시에서처럼 “심심해서 피우는” 심심풀이로, 또는 무슨 사색에 더 깊이 빠지기 위한 “윤활제”로, 아니면 어떤 고충을 잊어버리기 위한 “망각제”로 이밖에 많은 용처에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쓰이는 물건이다. 그런데 담배의 이런 일상적인 용처는 시 “담배”에서 거의 종합적으로 나타남과 동시에 담배의 본 의미를 벗어나고 있다.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옥수수밭에서 옥수수밭머리에 멈추어섰다 시골길가다가 하나씩 둘씩 서넛씩 등에 그리고가슴에 아기를업고또안고있는 내엄마같은옥수수여 큰절이라도 드리고싶다 달구지바퀴에깊숙히패인 길한복판에 그대로넙적엎드려 절하고싶다 남들에게는 너무나도화사했던 그한시절도 있었던듯없었던듯… 눈에띄우는 꽃잎하나피우지못한채 벌써오늘의계절에 휘여질듯서있는 옥수수여 철없던시절의수수께끼가 언제나가슴을허빈다 잠자리무리지어날아오르는 이늦은여름의오후 그대의어느 푸른잎사귀한자락잡고 빨간댕기라도매여드리고싶다 내엄마같은 옥수수여. 해설 할아버지 대에 중국 동북 지역으로 이주한 중국 조선족 제3세대인 석화는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를 졸업한 지식인으로서 20대(1970년대말)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여 이후 네 권의 시집을 냈다. “나”를 화자로 내세운 그의 초기시 중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나는나입니다 나는봄의들판에서어여쁨을뽐내는장미꽃도길섶에소문없이피어난민들레꽃도아닙니다나는아득한벼랑가에솟아나서흘러가는구름을비웃는소나무도강가에흐드러져산들바람에도춤을추는버드나무도아닙니다 나는나입니다 나는여기저기에서아무렇게나뒹구는이름없는조약돌도아니고뭇사람들이쳐다보는하늘가에서도고한빛을뿌리는그어느성좌의이름있는별도아닙니다 나는나입니다 내가어찌그저한송이꽃이나한그루나무나또돌이나별이겠습니까나는그것들과그리고그보다더많은것들이어우러진통일체이며세계이며우주입니다 나는나입니다 자꾸만그저꽃이나나무나돌이나별이되라고하지마십시오그것들은나의머리카락한오리나귀나코나눈밖에또무엇이겠습니까 나는나입니다 그리고당신도당신이기를바랍니다. 1985. 7. 1. 해설 / 인간의 자아실현을 호소 석화는1958년 길림성 룡정시에서 출생했다. 1980년대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1986년 시 “나는 나입니다”로 시간의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 시는 당시의 시관념 갱신에 크게 이바지한 작품으로 창조주체의 각성과 인간의 자아실현을 호소하고 있다. 시에서 시적화자는 “나는 나다. 돌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많은 것들이 합쳐진 통일체이며 하나의 세계이며 우주라고 하면서 자꾸만 꽃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사과도 배도 아닌 것이, 연변사과배 사과도 아닌 것이 배도 아닌 것이 한 알의 과일로 무르익어 가고 있다 백두산 산줄기 줄기져 내리다가 모아산이란 이름으로 우뚝 멈춰 서버린 곳 그 기슭을 따라서 둘레둘레에 만무라 과원이 펼쳐지었거니 사과도 아닌 것이 배도 아닌 것이 한 알의 과일로 무르익어 가고 있다 이 땅의 기름기 한껏 빨아올려서 이 하늘의 해살을 가닥가닥 부여잡고서 봄에는 화사하게 하얀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무성하게 푸름 넘쳐 내더니 9월, 해란강 물결처럼 황금이삭 설렐 때 사과도 아닌 것이 배도 아닌 것이 한 알의 과일로 무르익어 가고 있다 우리만의 “식물도감”에 우리만의 이름으로 또박또박 적혀있는 ― “연변사과배” 사과만이 아닌 배만이 아닌 달콤하고 시원한 새 이름으로 한 알의 과일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해설 연변 지역의 향토색이 물씬 풍겨 나오는 고유한 과일 “사과배”는 연변의 자연을 대표한다. “사과”와 “배”의 결합에서 암시하고 있듯이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조화의 세계를 지향하는 동양정신의 상징을 “사과배”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연변은 간다 연변이 연길에 있다는 사람도 있고 구로공단이나 수원 쪽에 있다는 사람도 있다 그건 모르는 사람들 말이고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연변은 원래 쪽바가지에 담겨 황소등짝에 실려 왔는데 문화혁명 때 주아바이*랑 한번 덜컥 했다 후에 서시장바닥에서 달래랑 풋 배추처럼 파릇파릇 다시 살아났다가 장춘역전 앞골목에서 무우짠지랑 같이 약간 소문났다 다음에는 북경이고 상해고 랭면발처럼 쫙쫙 뻗어나갔는데 전국적으로 대도시에 없는 곳이 없는 게 연변이였다 요즘은 배타고 비행기타고 한국 가서 식당이나 공사판에서 기별이 조금 들리지만 그야 소규모이고 동쪽으로 동경, 북쪽으로 하바롭쓰끼 그리고 사이판, 샌프란시스코에 파리 런던까지 이 지구상 어느 구석인들 연변이 없을쏘냐. 그런데 근래 아폴로인지 신주(神舟)*인지 뜬다는 소문에 가짜 려권*이든 위장결혼이든 가릴 것 없이 보따리 싸 안고 떠날 준비만 단단히 하고 있으니 이젠 달나라나 별나라에 가서 찾을 수밖에 연변이 연길인지 연길이 연변인지 헷갈리지만 연길공항 가는 택시료금이 10원에서 15원으로 올랐다는 말만은 확실하다. * 주아바이 : 연변조선족자치주 초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그 모습 다 벗고 포도들은 포도주가 된다 벗으라 한다 벗어야 한다 벗어라 벗자 마지막 한 장의 그... 마저도 속살과 속살끼리만 만나 만지고 부비고 삼키고 무너지자 맑은 그 빛깔 달콤한 그 맛 감미로운 그 향기 네가 나 되고 나는 너로 된다 그 모습 다 벗고 비로소 포도들은 포도주가 된다 해설 1997년에 발표된 시 “그 모습 다 벗고 포도는 포도주가 된다” 역시 깊은 인생철리가 담겨진 이미지시이다. 이 시에서 시적화자는 포도가 포도주로 되는 과정을 재현하면서 인간은 부단히 자기를 변신시키면서 자아를 완성하고 인생의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물론, 변신과정은 환락이 충만된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이 충만된 과정이다. 그래서 “마지막 한장의 그… / 마저도” 벗어야 하고 “만지고 부시고 삼키고 무너져야” 끝낸 “맑은 그 빛깔”, “달콤한 그 맛” 그리고 “감미로운 그 향기”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시의 밑바닥에는 시대의 밑바닥에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돌 하나가 -《두만강여울소리》시비 제막에 부쳐 하얀넋 한줄기 쫓아 서둘러 달려가던 바람이 잠간 여기 발길 멈추었다가 하나의 돌로 굳어졌습니다. 여울목마다에서 구슬프던 옛님의 노래가락이 가져시지 않는 체증으로 텅 빈 가슴 반공중에 드리워져 있는데 흘러가는 물결과 흘러가는 구름과 흘러가는 세월과 흘러가는 모든것들을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는 돌하나— 두만강 여울소리에 가만히 귀를 연 돌 하나가 “나랑 좀 쉬였다 가시지요” 옷자락을 잡습니다. 해설 이는 시비제막회에서 읊은 즉흥시다. 여기서 “돌”은 여러가지 상징적의미를 띠는데 시비제막회에 드린 작품이라 할 때 한수의 시로도 볼수 있다. “하얀 넋 한줄기 쫓아/ 서둘러 갈려가던 바람이” 즉 백의겨레 넋을 따라 준비없이 달리던 시인이 “잠간 여기 빌길 멈추었다가? 하나의 돌로 굳어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잠간 여기서 시상을 굳히다가 한수의 시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물결도 그림도 세월도 흘러가고 시풍도 흘러갈 때 “돌”은 사색에 잠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역시 흘러가야 하는가? 아니다. “나”는 “나”다. “나”는 흘러야 할 때 흐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