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놈 말뚝이가 / 스스로 마당 펴고, 스스로 노래하며 / 징치하고 등 두드릴 지경에 이르고 말았소 / 욕하고 싶은 이는 맘껏 욕들 해도 좋소 (가운데 줄임) 고성오광대 구경을 한 십년 다녀본께 / 놀이치고는 참 재미지고 / 춤사위가 독특하니 그 감칠맛이 진국입디다” 이는 우리문화신문에 매주 금요일 이어싣기(연재)를 하는 이달균의 ‘《말뚝이 가라사대》와 함께하기’ 가운데 <왜 ‘오광대놀이’인고 하니> 부분입니다. 탈을 쓴 광대가 세상사 희로애락을 춤사위에 실어 탈 많은 세상을 향해 벌이는 신명 나는 춤판인 탈놀이 곧 탈춤은 황해도 지방의 ‘탈춤’, 중부지방의 ‘산대놀이’, 영남지방의 오광대ㆍ들놀음[野遊], 동해안지역의 ‘별신굿놀이’ 등을 아울러서 말합니다. 이 가운데 <고성오광대>는 경상남도 고성 지방에서 전승되어 온 탈놀이로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지요. <고성오광대>에는 다섯과장이 있는데 먼저 문둥광대가 병마의 고통을 춤으로 승화시킨 문둥북춤 과장으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말뚝이를 내세워 신랄하게 양반을 조롱하는 오광대놀이 과장, 괴물 비비가 갖은 횡포를 일삼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주 KBS1 텔레비전 ’다큐인사이트‘ 프로그램에서는 <어느 수집가의 초대, 인왕제색도>가 방영되었습니다. 국보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겸재 정선이 76살 때인 1751년(영조 27) 자기가 살던 지금의 효자동 쪽에서 보고 비 온 뒤의 인왕산 경치를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삼성 고 이건희 회장이 가지고 있던 것을 유족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것인데 올해 4월 28일부터 8월 28일까지 <수집가의 초대 –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에 전시되었던 작품입니다. 이 그림에는 특징 있게 생긴 인왕산의 바위를 하나하나 그려 넣었습니다. 그 아래에 안개와 나무들을 그려 넣어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구도를 이룹니다. 특히 나무와 집들이 있는 가까운 곳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인 부감법(俯瞰法)으로 그렸으며, 멀리 바라보이는 원경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고원법(高遠法)으로 표현했습니다. 또한 안개와 산등성이는 엷게, 바위와 나무들은 짙게 처리하였지요. 그리고 먹색의 강렬한 흑백 대비로 굴곡진 산의 골짜기를 생생하게 그려 화폭에 변화와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이 작품이 그려지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주변 사람들을 보면 초ㆍ중ㆍ고 12년 동안 국어를 배우고, 대학국어까지 공부한 사람들 모두 글쓰기는 참 어려워합니다. 그 까닭은 학교에서 배우는 국어가 그저 입시에 맞춰서 공부했을 뿐 학교에서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을 받지 못한 까닭입니다. 여기에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모두 잘난 체에 급급한 나머지 어려운 말을 마구 써대기 때문에 일반인들로서는 글쓰기가 두려워진 것입니다. 576년 전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그 목표를 어려운 한문이 아닌 글자로 백성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도록 하려 함이었습니다. 곧 글쓰기는 쉽게, 누구나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되도록 짧은 글이어야 하지요. 어떤 이는 한 글월(문장)을 5줄이 넘게 이어 쓰는데 그러면 분명히 임자씨(주어)와 풀이씨(술어) 관계가 명확해지지 않으면서 글을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글이 됩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말을 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한 낱말을 빼도 말이 통하면 그 말은 과감히 빼버려야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다해서 뛰었다.”에서 ‘불구하고’는 일본말로 쓸데없는 군더더기입니다. 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며칠 뒤면 576돌을 맞는 한글날입니다. 한글날을 맞아 이때만 되면 반짝하는 행사들이 여기저기서 열립니다. 그러나 이때만 반짝할 뿐 진정 한글을 사랑하는 모습은 잘 보이질 않습니다. 한글날을 그저 넘길 수 없다는 듯한 마지못한 행사들 뿐입니다. 한글날을 맞아 정말 종요로운 일은 우리말과 한글을 진정 자랑하는 일입니다. 세종이 579년 전에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가장 종요롭게 생각한 것은 ‘백성 사랑’이었습니다. 한문에 능통한 절대군주였던 세종이 자기의 권위는 내려놓고 백성과 소통하려 한 것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와 있는 창제의 목적에는 분명히 한자를 몰라 억울한 일이 생겨도 호소하지 못하는 백성이 쉽게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글 닿소리와 홀소리 28자를 만들었는데 이는 세상 어떤 글자보다 많은 11,172자를 만들 수 있어 그 어떤 나라 말이나 소리나 표현할 수 있는 위대한 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세종보다도 한문을 잘 안다고 할 수 없는 지식인들이 온통 어려운 한자말을 섞어 쓰며 잘난 체하고 외국어를 써야만 지식인인 체 마구 영어를 씁니다. 예를 들면 ‘예술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대란치마”는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 여성이 적의(翟衣, 왕비와 왕세자빈을 비롯하여, 왕대비나 대왕대비와 같은 왕실 적통의 여성 배우자들이 입는 법복(法服)이나 원삼(圓衫, 조선시대 부녀자들이 입던 예복) 따위 예복 차림을 할 때 아래옷으로 갖추어 입는 치마입니다. 치마는 다홍이나 남색 비단으로 만들고 치마를 장식하기 위한 스란단은 두 층으로 붙이는데 윗 스란단 너비는 22~25cm, 아래 스란단 너비는 15~19cm입니다. 스란단에 황후는 용무늬, 왕비나 왕세자빈은 봉황무늬, 공주나 옹주는 ‘수(壽)’, ‘복(富)’, ‘남(男)’, ‘다(多)’ 따위의 글자나 석류ㆍ불로초ㆍ연꽃 등의 그림을 금실로 짜거나 금박을 놓습니다. 대란치마 말고 궁중 여인들의 옷으로 “스란치마”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평상시 당의를 입을 때 아래옷으로 갖추어 입는 치마입니다. 또 이 스란치마는 적의나 원삼 등의 예복 차림을 할 때 대란치마 안에 입는 옷이기도 한데 스란단은 대란치마와 달리 한 단만 붙입니다. 요즘 혼례식 때 신부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서양에서 온 하얀 드레스를 입지만 전통혼례를 하면서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대란치마를 입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판소리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이면서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올랐는데 부채를 든 1명의 소리꾼이 고수의 북장단에 맞추어 창(소리)ㆍ아니리(사설)ㆍ발림(몸짓)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엮어가는 극적 음악입니다. 본래 판소리는 춘향가ㆍ심청가ㆍ수궁가ㆍ흥보가ㆍ적벽가ㆍ변강쇠타령ㆍ배비장타령ㆍ옹고집타령ㆍ강릉매화타령ㆍ무숙이타령ㆍ왈자타령ㆍ장끼타령ㆍ가짜신선타령(또는 숙영낭자전) 등 12마당이었으나, 현재는 춘향가ㆍ심청가ㆍ수궁가ㆍ적벽가ㆍ흥보가 등 5마당만이 전승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적벽가’는 ‘화용도(華容道)’라고도 하는데 중국 구전 역사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적벽대전을 중심으로 빌려와 소리하고 있지요. ‘적벽가’는 원래 충의를 노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당성이 없는 권력에 의해 전쟁에 동원되어 죽음으로 내몰리는 민중들의 한과 이에 대한 항의와 풍자 또한 중요한 부분이라고 합니다. “생이별 하직허고 전장에를 나왔으나 언제나 내가 다시 돌아가 그립든 자식을 품 안에 안고 아가 응아 어루어 볼거나 아이고 아이고 내 일이야”라는 사설이 바로 그런 대목입니다. 그런데 그 ‘적벽가’를 완창 소리로 들어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몇 해 동안이나 비바람 소리를 내었던가 여태껏 지녀온 작은 거문고 외로운 난새의 노랠랑 뜯지도 말자더니, 끝내 백두음 가락을 스스로 지어서 읊었거니 위 시는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 3대 여류시인의 하나로 불리는 매창(李梅窓, 1573-1610)이 지은 시 <거문고를 타면서[彈琴]>입니다. 매창은 천민 출신으로 뛰어난 시인이었던 유희경과 가슴 시린 사랑을 나눈 걸로 유명하지요. 매창은 지녀오던 거문고로 <난새의 노래>와 <백두음> 사이 고민하다가 <백두음>을 지어서 노랠 부릅니다. 여기서 ‘난새의 노래’란 새장에 갇힌 새의 외로움을 노래하는 것이고, 백두음은 늙어가는 여인이 자신의 흰머리를 슬퍼하는 노래입니다. 매창은 희경을 그리워하다가 그렇게 슬픔을 노래했습니다. 매창은 열 살 되던 해 부안의 내로라하는 시인 묵객이 모두 모인 백운사 시 짓기 대회에서 구경삼아 갔다가 실로 절묘하기 이를 데 없는 시를 지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한 뛰어난 여류시인입니다. 시와 가무에도 능했던 매창은 광해군 2년(1610) 세상을 떠나자 그녀가 끔찍이 사랑하던 거문고와 함께 묻혔습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서서히 음의 기운이 커지는 24절기 열여섯째 추분(秋分)입니다. 《철종실록》 10년(1859) 9월 6일 기록에 보면 “추분 뒤 자정(子正) 3각(三刻)에 파루(罷漏,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하여 종각의 종을 서른세 번 치던 일)를 치면, 이르지도 늦지도 않아서 딱 중간에 해당하여 중도(中道)에 맞게 될 것 같다.”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여기서 중도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바른길’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 겨레는 추분에도 더도 덜도 치우침이 없는 중용의 도를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또 추분 무렵이 되면 들판의 익어가는 수수와 조, 벼들은 뜨거운 햇볕, 천둥과 큰비의 나날을 견뎌 저마다 겸손의 고개를 숙입니다. 내공을 쌓은 사람이 머리가 무거워져 고개를 숙이는 것과 벼가 수많은 비바람의 세월을 견뎌 머리가 수그러드는 것은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벼에서는 향[香]이 우러나고 사람에게서도 내공의 향기가 피어오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귀뚜라미 맑은 소리 벽간에 들리누나 / 아침에 안개 끼고 밤이면 이슬 내려 / 백곡을 여물게 하고 만물을 재촉하니” 정학유(丁學游)의 ‘농가월령가’ 8월령에 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전라북도 전주에서는 해마다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가 열립니다. ‘전주대사습놀이’는 조선 후기에 시작하여 전주 지역에서 펼쳐지는 전통 예술 잔치를 말하는데 전주부성의 통인들이 예인들을 초청해서 판소리를 들었다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영정조 시대에 체계화되었으며, 전국의 명창과 소리꾼들이 모여 겨루었지요. 1975년에 재현되어 판소리명창부, 농악부, 기악부, 무용부, 민요부 등 10개 분야 예인들의 기량이 펼쳐지고 있는데 권위 있는 경연대회로 손꼽힙니다. 며칠 전엔 우연히 텔레비전을 돌려보다가 이 전주대사습놀이가 재방송되는 반가운 장면을 보았지요. 그런데 기악부에서 결선에 오른 경연자가 백인영류 아쟁산조를 연주할 때 결선에 오른 연주자의 다짐이 자막으로 떴는데 “소리의 잘생김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하여 젊은 연주자의 멋짐을 본 것 같아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쓸데없이 ‘파이팅!’이란 문구 하나가 덧붙여진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파이팅(fighting)”이란 말은 본래 영어권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출처가 모호한 가짜 영어입니다. ‘파이팅’은 호전적인 뜻으로 ‘싸우자’, '맞장 뜨자’라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아래위를 눌러 납작해진 공 모양의 몸통에 좁은 목과 넓게 되바라진 아가리를 가진 ‘사슴장식 구멍단지’가 있습니다. 어깨 쪽에는 짧고 통통한 몸통에 짧은 다리 네 개와 작은 머리를 붙인 사슴 두 마리가 붙어 있지요. 머리에는 아주 큰 뿔을 달았는데 왼쪽 사슴의 뿔은 온전하나 오른쪽 사슴의 뿔은 하나가 떨어져 아쉬움을 줍니다. 그런데 왜 5세기 가야시대에 빚은 이 단지에는 사슴이 붙어 있을까요? 사슴은 북방 아시아 여러 민족이 신성시한 동물로서 신앙 대상이었습니다. 또 사슴은 인류의 중요한 식량 자원 가운데 하나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충북 제천 점말동굴에서 사슴 머리뼈가 발굴되어 구석기시대부터 사슴 사냥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지요. 잘 알려진 국보 285호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는 바다 동물과 육지 동물이 많이 그려져 있는데 그 그림들 가운데 사슴 그림은 36점으로 약 15%나 차지합니다. 인물이나 동물 그리고 특정한 물건을 본떠 만든 토기를 상형토기(象形土器)라고 하는데 사슴 역시 상형토기의 주제로 많이 등장합니다. 소가야에서 만든 이 사슴 장식 구멍단지도 가장 중요한 식량 자원이자 권위의 상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