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 “세자 저하?” 권율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였으나 그 자리에 참석해 있던 일당백 원사웅은 젊은 광해군의 태도에 경외심을 지니게 되었다. 원사웅은 실상 나설 자리가 아니었으나 왕성한 혈기로 소리쳤다. “저하의 판단이 절대적으로 옳사옵니다. 이번 상감마마의 명 사신 사헌에 대한 대처는 참으로 민망하였나이다. 그리하여 전란 중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유생들이 분개하여 상소를 올리고 있는 것이 아니 옵니까.” “그대는 누구인고?” 원사웅은 광해군의 면전에 허리를 굽혔다. “소생은 전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의 장자 원사웅이라 하옵니다.” 광해군은 또래의 젊은 장수를 보자 급격히 호감을 나타냈다. “옳아, 맹호와 같은 원균장군의 아들이라면 역시 대단한 무장이겠군. 내 익히 명성을 들은 것 같네. 무과에 급제한 후 부친을 따라 공을 많이 세웠지. 혹 이번 명량에도 참여 했던가?” “소생은 다른 임무를 맡아 대마도에 다녀왔나이다.” 광해의 안면에 놀라움이 가득 찼다. 전쟁 중에 대마도라면 적진에 뛰어 들었다는 것이 아닌가. “어떤 임무였는가?” 광해군은 실로 궁금하였다. 이순신의 함대가 명량에 총력(總力)을 기울여 압승을 거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광해군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호위무사 장예지를 돌아봤다. 장예지는 어색한 남장으로 혹여 권율에게 발각 당할까봐 살짝 외면하였다. 그런데 광해군이 산통을 깨고 있었다. “예지낭자, 김장군이 거기 없다는군.” 권율의 시선이 즉각 장예지에게로 옮겨왔다. 권율은 이미 장예지와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 “오, 누구인가 했더니 바로 장 낭자 였구려.” 장예지는 계속 모르는 척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녀는 황급히 허리를 굽혀 권율에게 예를 올렸다. “도원수를 뵈옵니다.” “반갑소. 정말.......오래만이지요.” 이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마침 통제영에서 첨사 이순신과 일당백 원사웅이 도원수부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광해군 일행의 등장에 매우 놀라며 예를 표하였다. 간단한 의식이 끝나자 권율이 황급히 물었다. “함대가 출동 하였는가?” 첨사 이순신은 보고를 올렸다. “그 때문에 왔나이다. 고금도의 명나라의 진린제독이 아직도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어서 대기 중입니다.” 권율의 눈에서 불똥이 튕겨나갈 것만 같았다. “뭐라고? 명나라는 본격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비축 화약이 넘친다고 들었거늘. 그것을 나눠주지 않는다고?” 광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광해군과 권율은 도원수부에서 해후하였다. 충성스러운 노장군은 세자 광해군의 등장에 감격하며 최고의 예우를 다하였다. “남원과 전주성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군은 후속 부대와 보급로가 차단당하자 고립이 두려워서 더 이상 전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권율의 보고를 받으면서 광해군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였다. “명량으로 인해서 후속부대와 보급선이 차질이 생긴 것이군요. 통제사의 완벽한 승리 때문에 말입니다.” 권율은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하옵니다.” “이순신장군은 나라를 구한 영웅입니다. 그에게 더 높은 벼슬과 공적에 따른 상을 하사하여야 할 것입니다. 장계를 올리셨습니까?” 권율은 약간 주저하는 모습으로 세자에게 공손히 대답했다. “전란 중이라 늦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순신 함대가 부산을 공격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라서......” 광해군이 관심을 보였다. “이순신 함대가 부산으로 향한단 말입니까?” “일전 첨사 이순신과 군관 나대용이 도원수부로 찾아와 보고 했습니다. 부족한 화약과 화살 등을 명나라 제독 진린으로 부터 협조 받는 즉시 부산을 공격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언제요?” “사흘 전 쯤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서애 유성룡은 누운 상태에서 입을 열었다. 김충선은 그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앉아서 고개를 조아렸다. “대감을 위해(危害)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소생의 손에 죽을 것입니다. 비난(非難)하는 자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서애 유성룡은 천정을 바라보며 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내게 위해를 가하려 할 것이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비난을 하게 될 것이야. 그때마다 죽인다면 조선에는 누가 남을 수 있겠는가?” “새로운 하늘을 위해서라면 어떤 임무라도 상관없습니다.” 서애의 시선이 김충선에게로 옮겨졌다. “이 이름도 가능하겠나?” “누구를 말하시는 겁니까?” 서애 유성룡의 입에서 놀랄만한 호칭이 튀어 나왔다. “광해군! 세자 이혼(李琿) 말일세.” 김충선은 그대로 경직되어 버렸다. 광해군은 친구인 김덕령이 주군으로 모셨던, 조선의 다음 왕위를 이어받을 세자이다. 한때 김충선은 친구를 대신하여 광해군의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도 했었다. 만일 그 광해군을 제거해야 할 시기가 온다면 어찌할 것인가를 서애 유성룡이 묻고 있는 것이다. "혁명에는 반드시 피의 대가가 존재하는 법입니다.” 김충선은 고민 끝에 여지가 없음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살려주시오.” 사헌은 표독스럽고 거만했지만 약삭빠른 위인이었다. 자신이 사지에 빠졌다는 것을 체감한 순간에 살기 위한 몸부림도 시작되었다. 그는 유성룡에게 간절한 애원의 눈빛을 발하였다. 서애 유성룡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사헌에게 충고했다. “미안하오. 당신의 목숨을 관리하는 것은 내가 아니오. 이 젊은이에게 구걸해야 할 것이오.” 사헌은 방향을 바꾸었다. 그는 오로지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나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는 이번에는 김충선의 발아래 무릎을 꿇었다. “살려만 주시오. 내가 잠시 미쳐서 그랬소. 용서해 주시오. 두 번 다시 이런 실수는 맹세코 하지 않을 테니까. 제발,” 사헌은 명나라 사신으로 거들먹거렸던 위세는 간곳이 없고 오로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한 비굴함으로 애원했다. 김충선은 그때 몹시 모질었다. “대감을 욕보이고 살기를 바란다는 건 무리지.” 퍼억! 김충선은 명나라 사신 사헌의 안면을 사정없이 발로 걷어찼다. ‘어이쿠’하는 비명과 더불어 사헌은 뒤로 나가 자빠졌다. 금방 그의 코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김충선은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대감께서 몰지각한 사신 놈에게 장형 40대를 당하셨다. 곱으로 80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유성룡은 눈을 뜨고 희미하게 웃으면서 김충선을 바라보았다. 신뢰가 담겨있는 눈빛이 김충선의 일신을 자극했다. “어서 쾌차하시어 개벽의 대업에 동참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이지. 명량의 대승이 존재하기에 그대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게 되었네. 감축 하네 김장군!” 김충선이 황급히 허리를 숙이고 절을 올렸다. “이 모든 것이 대감의 안배가 아니 옵니까. 정도령 역시 대감의 천거라 들었습니다.” “천거는 무슨......때가 되어서 환생(幻生)한 것이지.” “환......생이라니요?” 김충선이 놀라서 물었으나 서애 유성룡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보다 이장군은 용태가 어떠하신가?” “대감에 대한 심려가 가득하십니다.” “허헛, 나에 대한 것은 이미 정도령을 통해서 들었을 것인데......정신이 경망(輕妄)되지 않으니 육체의 고통쯤은 별거 아니지.” 김충선은 여기서 정도령의 추측이 맞았음을 직감했다. 서애 유성룡의 행동 하나하나는 철저한 지략에 의한 것이었다. 명나라 사신 사헌을 자극하여 스스로 장형에 처해진 것 역시 치밀한 내막이 존재할 것이었다. 유성룡은 정치에 있어서 입신(入神)의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기자] “몰래 주는 것이 뇌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드리는 것은 선물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나누어 드리는 선물.” 별장의 표정이 수그러들었다. “젊은 선비가 그런 요령이 있으시다니 허, 이리 따라오시게.” 김충선은 별장을 따라서 벽제관 내부로 들어갔다. 전쟁으로 엉망이었던 곳을 임시로 보수하여 계속 명나라 사신들의 영접 장소로 이용하고 있었다. 안에는 작은 연못과 정자, 제법 규모 있는 동산도 꽃과 나무로 장식되어 있었다. “지금은 석식(夕食)을 끝마치시고 다과를 드실 시간이니 잠시 기다려 보시오.” 별장은 김충선을 입구에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별장은 허둥지둥 달려 나왔다. “사자가 보이지 않소?” 김충선이 당황해 하는 그를 보면서 물었다. “어디 출타하신 것입니까?” “그럴 리가 없소. 식탁에는 밥을 드시다말고 사라진 흔적이 남아 있어요.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네.” 별장은 다급한 목소리로 병사들을 모이게 했다. 김충선은 혼란한 벽제관을 뒤로 하고 슬며시 빠져나왔다.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매어 두었던 말을 몰아서 오리 가량 달려오자 준사와 서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준사의 말 등에는 큼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어디서 오셨소?” 병사들이 길을 가로 막았다. “명나라 사신 사헌을 만나러 왔소이다.” “약조가 있었소?” “없었소.” 병사는 냉담하게 외면했다. “그럼 돌아가시오. 사자께서는 선약이 없으면 절대 접견을 허락하지 않소이다.” 서아지의 성질이 발동됐다. “이 분이 누구신지 아느냐? 당상관 정헌대부이시다. 당장 사헌인지 사정인지 나오라고 하여라. 어서!” 병사는 주춤거리면서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럴 수는 없소.” “네놈이 맛을 봐야만 길을 열 것 같구나.” 서아지가 팔소매를 걷어 올리면서 소란을 피우자 안으로부터 여러 명의 병사들이 몰려 나왔다. 그들은 험상궂은 얼굴로 김충선과 서아지를 노려봤다.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별장(別將)으로 보이는 오십 대의 거한이 거들먹거렸다. 이때의 김충선은 아주 예의가 바르게 행동했다. “소생은 김충선이라 합니다. 멀리서 사신을 뵙고자 방문 했으니 허락해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접견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요. 우린 상전의 지시에 따라 처리할 뿐입니다. 불가하오.” “이런 씨팔 새끼들이 있나? 우리 영상은 지키지도 못하는 새끼들이 남의 나라 사신을 그리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유정은 진린제독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럴 경우,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조선의 전권을 거머쥐게 될 것입니다. 제독께서는 이순신에 관한 소문을 혹시 들으셨는지요?” 진린은 의아하여 물었다. “어떤 소문입니까?” “이번 전쟁이 마무리 되면 통제사 이순신이 백성들에 의해서 새로운 왕조를 탄생시킬 것이라고 합니다.” 진린의 안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인기가 대단한 것은 알고 있소만 그 정도요?” “제독은 부임한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모르실 겁니다. 만일 이순신이 새 왕조를 설립하게 된다면 명나라로서는 불안한 조선과 관계를 해야 합니다. 이순신은 기존의 조선과는 다른 조선을 세울 것입니다.” “다른 조선이란 명나라에 반한다는 것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농후합니다.” 진린이 목이 마른지 차를 따랐다. 표정은 진지해 졌고 평소의 거침없는 행동이 사려 깊은 자세로 바뀌었다. “한 번 보았으나 나 역시 범상치 않음을 느꼈소. 그리고 동행했던 정도령이란 청년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고. 그들이 내게 제안했던 조건은 나쁘지 않은 것이었소.” 유정이 정곡을 찔렀다. “하지만 남의 손에 의해서 얻어진 노획물은 정당하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원균이 또 감탄사를 연발했다. “정도령의 머리통은 나보다도 훨씬 작은데 어디서 그리 좋은 계책이 나오는 거요.” 정도령의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쳤다. “저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서 나옵니다.” “체격으로 따진 다면이야 이 친구를 따를 수는 없지.” 원균은 건장한 김충선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김충선이 질색을 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왜이러십니까.” “이번 부산 공격은 김장군과 내가 선봉에 나서도록 하지.” “소생은 한양으로 가던 참이었습니다.” “어허, 그렇기는 하지만 그건 서애대감이 자처한 일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미 서애대감은 당하신 것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부산은 우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자네처럼 젊은 것이 빠져 버리면 나와 통제사처럼 다 늙다리가 나서야 하는데 이게 말이 될 법한가.” 김충선은 이순신과 정도령을 번갈아 보았다. “소생은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자네는 서애대감을 문안하게. 나의 마음도 전달하고. 부산은 우리 늙은이들이 솜씨를 보여줄 테니까.” 김충선의 한양 행을 인정한다는 것은 서애대감을 욕보인 명나라 사신을 김충선의 의지에 따른다는 허락과 다름이 없었다. 원균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것도 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