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권효숙 기자]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옛 의주로 길에는 사적 제323호로 지정된 윤관장군묘가 있다. 왕릉의 규모만큼 크고 묘역 아래 윤관 대원수가 타고 다니던 말과 교자를 묻은 의마총과 교자총도 있다. 윤관 묘 봉분 뒤에는 약 2m의 담장이 둘러쳐져 있는데 5년 전만 해도 그 담장 너머에는 조선 효종 때 영의정을 지냈던 심지원(沈之源)의 묘와 그의 할아버지 심종침(沈宗忱)과 할머니 단양우씨의 쌍분묘가 있었다. ▲ 1988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윤관 대원수의 묘역 윤관 대원수(1040년정종 6년~1111년예종 6년)는 고려 때 여진족을 정벌하고 동북쪽 9성을 차지해 고려의 지도를 넓힌 명신으로 문하시중(지금의 국무총리격)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심지원(1593년선조 26년~1662년현종3년)은 조선시대 문신으로 대사헌을 거쳐, 좌우의정과 영의정에 올랐다. 그의 아들 익현(益顯)이 효종의 딸인 숙명공주(淑明公主)에게 장가들어 사돈이 됨으로써 효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심지원의 묘와 신도비는 경기도 기념물 제137호로 지정되었다. ▲ 윤관 대원수가 타고 다녔다는 말과 교자를 묻은 의마총과 교자총 이 심지원의 묘와 윤관장군 묘를 둘러
[그린경제=권효숙 기자] 덕진산성을 찾아가기로 한 그날은 개성공단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7명의 직원들이 들어온다던 날이었다. 통일대교 남단 검문소에는 수많은 취재진들이 카메라와 방송 장비를 펼쳐놓고 북쪽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검문소 한쪽 도로에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접경지역의 현장을 보기 위하여 세계 각국의 관광객을 태운 관광버스가 줄을 서있었다.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산 13번지. 덕진산성에 오르는 길은 자동차가 갈 수 있도록 길이 잘 나있었다. 반은 포장, 반은 비포장이라 덜커덩거리며 낮은 구릉 꼭대기에 이르렀다. 시도기념물로 지정되어서인지 주차장도 안내판도 잘 정비되어 있다. ▲ 덕진산성 안내판 해발 85미터. 높지 않으나 꼭대기에 서니 가슴이 탁 트인다. 눈맛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불어오는 바람도 이를 데 없이 상쾌하여 폐 속을 정화시켜주는 듯 하다. 이렇게 발 아래 펼쳐지는 임진강 하구의 장면은 평화롭기 그지없는데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뺏고 뺏기면서 수많은 전투를 치러낸 곳이라 하니 아이러니 하다. ▲ 초평도로 인해 갈라져 흐르던 임진강이 다시 합쳐서 흐른다. 멀리 통일대교가 보인다. 임진강은 함경남도 마식령 산맥의
[얼레빗=권효숙 기자]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이곳에 흐르는 임진강은 하루 두 번 조류로 인해 물이 거슬러 흐릅니다. 이 물줄기를 따라 날아오는 갈매기를 벗 삼던 정자 반구정(伴鷗亭)이 임진강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명재상 방촌(厖村) 황희(黃喜)선생의 유지가 깃들어 있는 마을입니다. 황희선생은 고려 공민왕 12년(1363) 개성 가조리에서 태어나 조선조 태조. 정종. 태종. 세종까지 네 분의 임금을 모시고 74년간의 관직생활, 18년간 영의정을 지낸 후 87세에 은퇴하여 이곳에서 지내다 90세에 별세하여 파주 탄현면 금승리에 안장된 조선초기 최고의 명재상입니다. 사목리에는 황희선생유적지가 잘 조성되어 있어 황희선생의 영당, 방촌기념관. 반구정, 앙지대, 황희선생의 고손인 월헌 황맹헌의 부조묘 월헌사와 재직사, 재실, 황희선생의 동상 등이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황희선생의 영당에는 황희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어 매년 선생의 탄생일인 음력 2월 10일에 파주 유림들이 모여 제향을 올리고 있지요. ▲ 반촌영당 제향 모습 또한 사목리에는 황희선생의 둘째 아들 보신(保身)의 후손들이 지금도 46호가 누대를 이어 살아오고 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