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수원박물관이 국가보훈처에 수원지역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7명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했다.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을 한 7명은 수원박물관과 수원시정연구원 수원학연구센터가 2017년~2018년 함께 진행한 ‘경기도 독립운동 인물 발굴사업’으로 공적을 밝혀낸 독립운동가다. 지난 2019년 15명에 대한 포상 신청을 했고, 자료를 정리하고 보충해 8월 10일 두 번째 포상 신청을 했다. 이들은 독립운동 행적이 있지만, 그동안 포상 신청이 이뤄지지 않았던 인물들로 사회주의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수원박물관이 중심이 돼 그동안 행적을 다시 파악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후손이 확인되지 않아 수원시가 후손을 대신해 포상 신청을 했다. 홍영유(반제반전 격문사건), 김길준ㆍ강성문ㆍ차준석(수원예술호연구락부 결성), 홍운표(조선공산당재건운동사건), 한인택ㆍ최석규(비밀결사 소척대사건) 등 7명 모두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한 청년이다. 중앙고등보통학교 학생이었던 홍영유는 반전반제 격문사건(반제국주의 반전 격문을 뿌린 사건)으로 체포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김길준ㆍ강성문ㆍ차준석은 1939년 ‘수원예술호연구락부’를 결성하고, 1941년 10월 조선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화성시문화재단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은 제77주년 광복절을 맞아 8월 13일(토)부터 15일(월)까지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유적공원에서 체험 행사 '그날의 함성'을 진행한다. 화성시문화재단은 시민들과 광복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자유와 평화의 정신을 공유하기 위해 매년 광복절 기념행사를 개최해왔다. 먼저 8월 13일(토)부터 15일(월)까지 광복절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4.15 머그컵 만들기 △태극기,무궁화 바람개비 만들기 △태극기 종이비행기 만들기 △화성 독립운동가 컬러링 엽서 만들기 △화성 독립운동가 명언 캘리 부채 만들기 등 방문객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운영된다. 8월 15일(월) 광복절 당일에는 화성 3,1운동을 역동적으로 알리는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오전 10시 30분부터 사단법인 아트컴퍼니 아르-선의 화성 독립운동을 화려한 무용과 음악으로 표현한 타악 퍼포먼스 공연을 시작으로, 화성 청년 예술단체 불란서집 뮤직컴퍼니의 창작 가곡으로 광복의 기쁨을 알리는 작은 음악회가 이어진다. 또 방문객 모두 다 함께하는 숨겨진 태극기 조각을 찾아 퍼즐을 맞히는 '빼앗긴 태극기를 찾아라'
[우리문화신문=전수희 기자] “나라를 일제에 강탈당했지만 좌절치 않고 불굴의 의지로 국난을 극복하는데 당당히 일조를 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헌신적인 삶의 이야기를 듣고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동안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으며 교육의 기회도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청빈과 헌신의 삶, 여성독립운동가’라는 주제의 강연을 계기로 ‘조명받지 못했던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해 더 공부해봐야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해보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는 어제(8일, 월요일) 낮 3시 30분 경남 하동교육지원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청빈과 헌신의 삶 여성독립운동가’(강사, 이윤옥, 한일어울림문화연구소장) 강의를 들은 연수생 홍복자(악양초, 지방조리주사) 씨의 소감이다. 이번 강의는 경상남도 교육청교육연수원 (3기, 하동)에서 주관하고 있는 ‘미래교육을 주도할 교직원 역량 강화’ <2022 찾아가는 현장 맞추형 과정>으로 8월 8일과 9일 이틀간에 경남 하동교육지원청 대회의실에서 실시된다. 8월 8일(월)은 상상콘텐츠연구소 이종원의 <방구석 랜선 여행>, 경상국립대학교 한상덕 교수의 <고전 속 청렴>,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
[우리문화신문=윤지영 기자] 보통 삼일운동이라고 하면 널리 알려진 유관순 열사, 민족대표 33인 등이 떠오른다. 이들은 당시 교육을 받은 엘리트층으로, 삼일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중 소수의 지식인에 속한다. 역사는 대체로 지배층 또는 지식인들의 시각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민중의 이야기는 잘 다루지 않는데,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삼일운동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 민중들을 부각시켰다. 민중들의 삼일운동에 관한 사건기록이나 판결문에는 ‘남이 시켜서’, ‘모르고’ 등의 이유를 들면서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20살의 직공 황인수처럼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조선 민족이 만세를 부르는 것은 정의로운 것이며, 이를 억압하는 것은 세계평화를 망치는 것이라고 떳떳하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가난과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꿈꾸며 국경을 넘은 최홍백, 천도교인 최천복, 농민 홍석정, 철공 정영업과 우피 중개업자 정재철, 남대문역 만세 시위의 주역인 서울의 운수노동자와 노동회, 서당 훈장 오윤환, 시각장애인 심영식과 이달근, 거지 1명과 45명의 아이들, 머슴 이영쇠와 이덕명 등 농민, 노동자, 상공업자, 노비 등으로 뭉뚱그려지는 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조국에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 삼천리 삼천만의 우리동포들 / 건질 이 너와 나로다” 이는 독립군가의 앞부분으로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96) 지사께서 즐겨 부르는 노래다. 지금은 병원에 입원 중이지만 오희옥 지사는 4년 전 병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구순의 연세로 각종 모임에 나가 ‘독립군가’를 거침없이 부를 정도로 정정하셨다. 제77주년 광복절(8.15)을 앞두고 오희옥 지사를 위한 ‘특별한 기쁜 선물’을 전달하기 위해 어제(5일) 낮 3시, 입원해 계신 병원을 찾은 사람들은 KBS 사내 동아리인 KBS사회봉사단(단장 이정호, 이하, KBS사회봉사단) 단원들과 강동융복합복지네트워크(회장 이순남)회원들이었다. 이날의 특별한 선물은 다름 아닌 독립군가 등을 녹화해 담은 신형 '노트패드'였다. ‘오희옥 독립지사를 위한 KBS사회봉사단 영상음악 녹음녹화’를 위해 지난 8월 1일(월) 낮 2시부터 <KBS16 녹음실>에서는 구슬땀을 흘리는 작업이 늦은 시각까지 이뤄졌다. 이날 녹화된 노래는 모두 오희옥 지사께서 병상에서 노트패드로 감상할 수 있는 곡을 고른 것으로 '독립군가'와 '그리운 금강산'(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일제강점기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창립에 이바지하고 남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강제하ㆍ이웅해ㆍ백남준ㆍ최명수 선생을 2022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남만주에 있는 서로군정서, 대한독립군, 대한광복군총영 등 17개 독립운동 단체 대표 50여 명이 모여, 남만주에서 독립군기지 재건과 항일무장투쟁을 위해 창립된 통합단체로, 민사부, 권업부 등 8개 중앙조직과 의용군으로 편성되었다.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1891년 태어난 강제하 선생은 1919년 창성 3·1만세운동을 주도했지만, 일제의 주요 시위 인물 검거를 피해 남만주로 망명했다. 선생은 남만주에서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 부단장이 되어 독립군을 국내로 파견하여 일제 기관을 파괴하고 군자금을 모집해 상하이 임시정부로 보내기도 했다. 1920년 10월에는 대한독립청년단 단장이 되어 무장활동을 지휘했다. 1922년 8월 남만한족통일회의에서 통의부 탄생에 이바지했으며, 독립군의 생계를 책임지는 권업부장을 비롯해 교통위원, 재무부장 등의 직을 수행하며 통의부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이후 192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나는 3․1만세운동 때도 참여하였지만 그때는 큰 효과를 내지 못하였다. 그것은 우리 국민의 단결과 힘이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일제침략자를 놀라게 해서 그들을 섬나라로 철수시킬 방법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곧 무력적인 응징 곧 폭탄을 던지거나 칼로 찔러 죽이거나 총으로 사살하는 일회적 효과가 크게 주요할 것으로 믿고 있다.” 이는 102년 전인 1920년 오늘(8월 3일) 임신한 몸으로 평남도청과 평남경찰부 등에 폭탄을 투척한 안경신 애국지사가 한 말입니다.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한 안 지사는 임시정부의 군사기관인 광복군총영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광복군총영은 1920년 7~8월 무렵 미국의원시찰단의 방한을 계기로 세계 여론에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호소하고자 폭탄거사를 실행하기로 하였지요. 이에 따라 결사대 제2대에 파견된 안 지사는 폭탄을 숨겨 평양으로 잠입한 것입니다. 이 폭탄 투척의 거사를 이끈 안경신 지사는 출산 직후인 1921년 3월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사형을 구형받았으나 평양복심법원으로부터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습니다. 정부는 안경신 지사에게 1962년 건국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제강점기, 하와이에서 활동한 문또라 지사와 김예준 지사를 비롯한 나라 안팎 독립유공자 6명의 직계 후손들에게 하와이 현지에서 훈장이 전해졌다. 국가보훈처는 31일 “하와이에서 활동했던 독립유공자 5명과 외국인 독립유공자 1명의 직계 후손을 지난 5월 확인한 데 이어, 7월 30일(토) 11시 30분(현지 시간) 하와이 호놀룰루 쉐라톤 와이키키 호텔에서 훈장 전수식을 열었다”라고 밝혔다. 전수식에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해 하와이 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에드워드 슐츠 미주한인재단 하와이 회장, 제프 정 하와이 케이비에프디(KBFD) 방송 사장, 백태웅 하와이대 한국학연구소 소장, 이덕희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 소장, 렉스 김 동서문화센터 이사, 홍석인 주 호놀룰루 총영사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이 자리에서 문또라ㆍ정월라(문또라 지사의 딸)ㆍ정원명(정월라 지사의 남편) 지사의 후손(문또라 지사의 외증손) 엘사 칼(Elsa Carl), 천진화 지사의 외손녀 파멜라 순이 유(Pamela Sonnie You), 김예준 지사의 자녀 김영호, 그리고 외국인 독립유공자인 조지 새넌 맥큔(George S. McCune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승병일 애국지사가 27일(수) 낮 1시 12분, 향년 96살의 일기로 세상을 떴다고 밝혔다. 1926년 평북 정주(定州) 출생의 승병일 지사는 만주에서 독립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순국한 조부(승치현, 1991년 애국장)의 뜻을 이어 평북 정주 오산학교 학우들과 함께 조국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결의, 1943년 3월 비밀결사인 혈맹단을 결성하여 조국독립을 위해 활동했다. 혈맹단의 행동강령은 중국 중경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과 접선, 뜻있는 청년과 학생들을 망명시켜 광복군에 참여토록 하는 것 등이었다. 그러던 중, 1945년 조직이 그러나 체포됐으며, 승병일 지사는 3달 동안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을 맞아 석방되었다 정부는 지사의 공훈을 기려 200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또한, 승병일 지사는 6․25전쟁 시 통역 장교로 자원입대하여 창녕군 박진지구 전투 등에 참전하기도 했다. 승병일 지사는 노환으로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있는 중앙보훈병원에서 임종을 맞았으며,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됐다. 고인은 30일(토) 아침 7시 30분 발인 뒤
[우리문화신문=김유 작가] 1931년 연말을 보름 앞둔 12월 16일이었다. 일본 관동군이 동북3성을 침략하고 그로부터 꼭 석 달이 지났으니 투쟁의 방향과 목표를 다시 짜야 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민족진영인사들이 모인 서세명의 집은 무순 교외 흥경현에 있었다. 여기에서 행정부와 같은 <국민부> 그리고 정치의 중심인 <조선혁명당>, 군 대표인 <조선혁명군> 그러니까 당ㆍ정ㆍ군의 대표들이 모여 앞일을 논의하였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그 사람들 가운데는 밀정이 있었으며 그들로 인하여 회의 사실이 누출되고, 일본군의 습격으로 참석하였던 중요 간부 모두는 봉천에 있는 일본 헌병대에 잡혀갔다. 그러나 대표들은 굴하지 아니하고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공석이 된 <국민부>의 위원장으로 양기하를, <조선혁명군>의 총사령관으로 양세봉을 다시 뽑았다. 이것은 '흥경사건'이라고 하는 역사적 진실이다. 그것은 먼저 서세명이라는 애국자가 있었으며, 1930년대 무장운동이 <봉오동>이나 <청산리 전투>처럼 일회성 투쟁이 아니고 면면히 내려오는 독립운동의 하나였다는 것, 그리고 양세봉은 전투에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