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시즈오카 이윤옥 기자] 현재 시즈오카현 이토시(伊東市)에 살고있는 이나바 스스무 (稻葉進, 88살)씨는 1945년 8월 6일 원폭지인 히로시마의 구레항공대(吳航空隊)소속 대원이었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그날, 이나바 씨는 구레항공대로부터 30미터 떨어진 하늘에서 새빨갛게 솟아오르는 불기둥을 보았다. 16살 소년의 눈에 비친 원폭 현장은 평생 “비참한 전쟁을 두 번 다시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이토신문(伊東新聞) 8월 14일치 1면 “종전(終戰) 72년” 특집에서 밝혔다. 그런가하면 어제 (13일) 오전 9시 시즈오카텔레비젼(SBS)에서는 “종전(終戰) 72년”을 맞아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전문가들을 초대해서 종전 72년이 갖는 의미를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참패한 일본은 패전 72년을 맞아 텔레비전과 방송에서 그날의 기억을 더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지난 8월 12일부터 이즈반도의 시모다(下田)에 와 있는 기자는 한국의 8.15 광복절을 앞두고 이곳 방송과 신문 등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한국은 광복을 맞이했지만 이곳은 패전(敗戰, 지금은 전쟁이 끝났다는 뜻으로
[우리문화신문= 도쿄 이윤옥 기자] 무궁화 꽃을 길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것도 일본의 거리에서 말이다. 무궁화가 나라꽃인 한국에서 특히 서울 같은 경우에는 거의 거리에서 무궁화를 보기가 어렵다. 대관절 이래 가지고 무궁화가 나라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은평구 홍제천변 등을 걸어보면 새로심은 벚나무들을 쉽게 볼 수 있다.또한 구파발역에서 가까운 삼송농협하나로마트 길에도 새로운 거리를 조성하면서벚꽃만 무더기로 심었다. 기자는 지난 2주동안 와세다대학 도서관에 가기 위해 지인 집에서 묵으면서 4개의 정거장을 걸어다녔다. 지인 집이 있는 시미즈로부터 메구로역까지는 쇼보쇼, 모토케바죠, 오오도리신사, 곤노스케자카를 지나야 역이 나온다. 이렇게 걸으면 걸음수로는 5천보 정도이고 시간은 30분 정도 걸린다. 걷는다는 것은 몸에도 좋은 일일뿐더러 동네를 샅샅이 관찰하기에도 좋다. 그것이 이국땅이면 더욱 좋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손바닥만한 공간만 있으면 꽃을 심는 일본인들의 습관이다. 그것도 자기 정원도 아니고 큰 길가의 가로수가 있는 작은 공간을 이용해 온갖 꽃을 가꾸고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더 인상적인 것은 심은
[우리문화신문=성제훈 기자] 요즘 갑질에 대한 말이 많습니다. 대리점 갑질부터 해서 최근에는 공관병갑질이라는 말도 나왔고, 대통령도 "정부 모든 부처의 갑질문화를 조사해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http://m.news.naver.com/read.nhn…) 그래서 그런지 '갑질과의 전쟁선포'나 '갑질문화 척결' 따위 섬뜩한 말들이 많이 나돕니다. '갑질'은 갑을관계에서의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뒷가지인 ‘질’을 붙여 만든 말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갑질은 당연히 없애야할 일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갑질에 딸려오는 말을 좀 가려서 쓰자는 겁니다. 먼저, 갑질문화라고 하는데, 여기에 문화가 어울리는 말일까요? 문화는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ㆍ정신적 과정의 산물을 이릅니다. 그러나 갑질은 권력의 우위에 있는 몇몇 못 된 사람들이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입니다. 굳이 '문화'까지 붙여 거창한 포장을 해줄 가치가 없는 낱말입니다. 갑질하는 짓과 함께 갑질이라는 낱말도 없애야합니다. 갑질척결에서 '척결'은 살을
[우리문화신문=교토 김리박 시조시인] 어제(7월28일), 일본 오사카 지방법원은 2012년 이후 일본정부가 일본 안의 모든 외국인 고등학교에 실시하고 있는 ‘고등학교 수업료 무상화 제도’에서 오사카 조선고급학교를 제외한 조치는 ‘법률위반’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아주 정당한 판결이며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물론 지방법원의 판결이어서 일본정부의 처사에 따라서는 고등법원, 최고법원에까지 질질 끌고 갈 수 있고 최고법원에서 뒤집힐 수도 있으니 무턱대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와 교육은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걸려 있기 때문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지만 우연히 반민주, 독재국이 수립되었을 때는 나라와 민족을 망쳐 먹으니 국가는 교육을 제 뜻대로 좌지우지 하지 말고 중립을 지키는 것이 ‘근대 민주국가’의 참 모습이다. 따라서 모든 민주국가는 그 입장을 지켜서 그 나라에 머물고 사는 주민들에게 민족교육의 자유와 권리, 학교건립의 자유와 권리, 배우는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하고는 처지가 다르고 사상과 신조, 종교와 신앙, 소속단체와 조직이 다르기는 하지만 광복 이후 줄곧 우리말과 거룩한 한글을 지키고 다듬으면서 교육을
[우리문화신문= 전수희 기자] 저놈 누구냐 저놈 이름을 적어라 그년은누구냐 그년 이름도 적어라 이놈은... 더러운 블랙리스트 그 꼬리가 오늘 잘렸다 밝은 해 아래 천지 개명된 민주동산의 나무에 주렁주렁 달렸던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겨레의 얼을 사랑하는 이들의 순수한이름을 더럽힌 자들이 오늘 법의 심판을 받았다 더 이상 더러운 이런 놀음 더는 이런 해괴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대한민국이길 국민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간절히 빌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말라. 내 평생 나라를 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이는 65살의 나이에 폭탄 의거로 순국의 길을 걸은 강우규(1855-1920) 의사가 사형 집행을 앞두고 남긴 말이다. 나라를 빼앗은 흉악한 일제에 온몸으로 저항한 것이야말로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한 것이지만 강우규 의사는 겸손하게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청년들의 교육’을 걱정했다. 그러한 강우규 의사의 숭고한 나라사랑 실천 행동 뒤에는 탁명숙(1900-1972)이라는 여성독립운동가가 있었지만 이를 아는 이는 드물다. 그런가하면 핏덩이 갓난아기를 남겨두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박치은(1886-1954)애국지사도 있다. 박치은 애국지사는 남편 곽치문(1882-1922)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 감옥에 들어갔는데 핏덩이 갓난아기를 둔 몸이었다. 철창 밖에서 젖이 먹고 싶어 우는 아기를 일제는 끝내 면회시켜주지 않아 눈앞에서 아
[우리문화신문=심순기 기자] 일장춘몽(一場春夢), 남가일몽(南柯一夢), 한단지몽 등은 모두 같은 말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도 역시 같은 말이라 할 수 있다. 권력은 오래 가지 않으며, 봄에 잠깐 꾼 꿈같은 것이다. 호화 권력도 부귀영화도 “한낱 꿈” 중국 당나라 현종 때 하북성 한단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도사 여옹은 노생이라는 청년을 만난다. 노생의 신세타령에 여옹은 도자기 베개를 건넸다. 노생이 베개를 베자 도자기로 빨려 들어가 커다란 집에 사는 명문가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 과거에도 급제하여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으나 역적으로 몰려 죽음 직전에 이르기도 한다. 다행스럽게 다시 복권되어 가족들과 장수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노생이 죽는 순간에 눈을 뜨게 되는 데, 일어나보니 주막에서 잠이 들어있었다는 것. 도사 여옹은 잠에서 깬 노생에게 “인생은 그런 것이네.”라며 웃으며 말했고, 노생은 부귀영화라는 것이 권력이라는 것이 부질없는 욕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고사(古事)다. 일은 못하지만 지독히도 운이 좋고 잘 나가던 이가 바로 박근혜다. 하지만 최고의 권력을 잡은 지 2년이 지나면서부터 “레임덕이 올 것이다.
[우리문화신문=심순기 기자] 대한민국에도 ‘개혁’이란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이 개혁을 부르짖고, 우리 민족이 잘 살아야 한다며 외치지만 현실적으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매우 부정적이고 비극적인 일이다. 혹자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개혁이 이루어졌고, 긍정적인 측면도 강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단편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러한 주장이 올바를 수도 있지만 우리 민족의 1만년 스펙트럼 속에서 살펴보자면 우리 민족을 위하는 개혁은 실패한 것이 전부다. 역삼각형 한국사…권력집단이 역사왜곡 주범 대부분의 개혁은 일부 지역을 위주로 그 지역 인사들이 자신들의 권력과 재력을 유지하기 위한 편법적 개혁이었다. 그로 인해 연암 박지원선생은 “우리 민족의 영토는 싸우지도 않고 스스로 줄어들었다.”고 한탄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거꾸로 된 역삼각형 형태의 역사를 써 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거대하고 찬란한 역사에서 작고 슬프고 창피한 역사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발전이 아닌 퇴보의 길을 걷는 것이다. 4350년의 새해가 밝았다. 수탉의 고요를 깨는 함성은 새 시대의 희망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전 국민이 같을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로 쓰일 때가 됐다.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세종은 47살 때인 음력 1443년 12월에 훈민정음 28자를 창제하고 50살 때인 1446년 9월 상한(1일-10일)에 《훈민정음》이란 책을 통해 새 문자를 백성들에게 알렸다. 1443년 음력 12월은 훈민정음 28자가 세상에 공개된, 그야말로 훈민정음 28자의 기적이 일어난 달이다. 그 기적은 세상에 57자의 단출한 기록으로 드러났다.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干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 《訓民正音》” 세종 25년(1443년) 12월 30일자(세종실록 온라인판 영인본에 의함) (번역)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를 본뜨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한자에 관한 것과 우리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간결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 공교롭게도 북한은 창제한 날을 남한은 반포한 날을 기념일로 삼고 있다. 분단의 아이러니이지만 이제는 남북이 연계하여 창제한 날과 반포한 날을 함께 기려야 한다. 필자는 창제한 날은 문자
[우리문화신문= 이윤옥기자] 만세불러 그대를 보내는 이날 임금님의 군사로 떠나가는 길 우리나라 일본을 지키랍시는 황송합신 뜻 받들어 가는 지원병 .... 총후 봉공 뒷일은 우리 차지니 갈데마다 충성과 용기 있어라 갈지어다 개선날 다시 만나서 둘러둘러 일장기 불러라 만세 - 이광수 ‘지원병 장행가’ 삼천리- 위는 변절자 춘원 이광수가 일본을 ‘우리나라’라고 추켜세운 시의 일부다. 그런가 하면, 최남선은 “대동아 전쟁의 세기적 성업에 이바지하게 됨은 실로 남자로서 태어난 보람이 있는 감격이며 청년 학도들은 두 어깨에 짊어진 특별한 의무와 책임을 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대동아 전장에 특별지원병으로서 용맹한 출전을 하여 일본국민으로서 충성과 조선 남아의 의기를 바로하여 부여된 영광의 이 기회에 분발 용약하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출전해야 할 것이다. 라고 했다. - 1943년 11월 20일 매일신보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 가운데 일부 - 최근 이 두 사람의 문학성이 위대하다고 하여 한국문인협회가 문학상을 제정한다고 발표 한바 있다. 바로 지난달 26일 열린 이사회에서 육당문학상과 춘원문학상 제정안을 가결하고 내년부터 우수 작품활동을 한 문인에게 시상하기로 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