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 시조 추모왕에 대해 "제 손으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백 번 쏘아 백 번 맞추었다. 부여말로 활을 잘 쏘는 것을 주몽(朱蒙)이라 하므로 이로써 이름을 삼았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신궁이라고 전해지지요. 그렇게 우리나라는 활을 잘 쏘는 명궁이 있었고 이들이 나라를 세우곤 했던 것입니다.
▲ 완성된 전통(箭筒) - 문화재청 제공 |
그런데 이들 명궁들은 전쟁을 하거나 사냥을 할 때 화살을 화살통에 담아가지고 다녔고 이를 전통(箭筒)이라고도 합니다. 전통은 재료에 따라 대나무로 만든 죽전통(竹箭筒), 종이로 만든 지전통(紙箭筒), 오동나무로 만든 목전통(木箭筒), 상어가죽으로 만든 교피전통(鮫皮箭筒) 따위가 있으며 때로는 조각이나 나전을 써서 그 꾸밈새를 화려하게 한 것도 있지요.
다만, 화살통은 한 번 사면 평생을 쓸 수 있음은 물론 현대에 오면서 일부 소수 애호가들만 화살을 쓰기에 화살통의 수요가 급격히 줄었습니다. 그런데다 화살통은 워낙 세밀한 새김과 꾸밈(장식)이 필요로 해 손이 많이 가는 탓으로 화살통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 곧 전통장(箭筒匠)은 그 맥이 끊길 지경입니다. 198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된 전통장은 현재 김동학 선생이 그 맥을 잇고 있습니다.
▲ 중요무형문화재 제93호 기능보유자 김동학 선생 작업 모습(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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