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 즉위년(1418) 8월 11일 임금이 근정전에 나아가 교서를 반포하기를
“아아, ... 그 처음을 삼가서, 종사의 소중함을 받들어 어짊을 베풀어 정치를 행하여야... 하였다.” (《세종실록》 즉위년 8/11,1418)
‘시인발정(施仁發政)’은 중국 고사에서 먼저 ‘발정시인(發政施仁)’으로 나왔다. 양혜왕 장구 상’에 ‘今王發政施仁・使天下仕者皆欲立於王之朝・耕者皆欲耕於王之野・商賈皆欲藏於王之市・行旅皆欲出於王之塗・天下之欲疾其君者皆欲赴愬於王・其如是孰能禦之’로 되어 있다.
“지금 임금께서 정사를 하실 때 인정을 베푸시는 것은 천하에서 벼슬하려는 사람이 모두 임금의 벼슬에 오르기를 바라게 하고, 밭을 가는 사람이 모두 임금의 들판에서 밭을 갈기를 바라게 하고, 장사하는 사람이 모두 임금의 시장에서 물건을 두기를 바라게 하고, 여행하는 사람이 모두 임금의 길에 나오기를 바라게 하고, 천하에서 자기 임금을 싫어하는 사람이 모두 임금께 나아가 하소연하기를 바라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그러면서, 파는 것을 상(商), 생활하면서 파는 것을 고(賈)라고 하고, 정사를 할 때 인정을 베푸는 것은 천하에서 임금 노릇을 하는 근본이다. ... 그 근본을 돌아볼 수 있으면 바라는 바는 구하지 않더라도 이르게 된다. 첫 장과 뜻이 같다.”
그 사이 시대가 흐르고, 나라가 다르고, 상황이 바뀐 것을 세종은 상정하여 ‘먼저 어짐을 행하는 시책을 통하여 정치를 펼치겠다’라는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다.
세종 정치의 시발을 시인발정(施仁發政)으로
세종이 ‘시인발정’이라고 할 때 연구자들은 맹자의 ‘시정발인’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잠시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맹자는 글로써 표현한 것이지만 세종은 실천 행위자로서의 명제로 나타나는 점이다. 2천여 년 전에는 정치를 바로 세우고 나서 인(仁)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했다. 세종에 이르러서는 인(仁)을 이념으로 하는 정치가 시작한다는 진화의 시기에 와 있는 것이다. 정치와 인(仁)의 관계에서 단순히 앞뒤 순서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세종은 이념으로 인(仁)을 설정하고 실천을 펴나가는 정치를 하려 한다.
둘째 ‘시인발정’의 중요한 점은 인(仁)과 정치의 관계인데 인(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논어》에서 보아도 쉽지 않다. 인에 대해 19여 말이 있는데 ‘인’ 곧 ‘ㄱ’은 ‘ㄴ’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하지 않고 ‘의지가 굳세고 기상이 과감하며 순박한 사람’(子路, 二十七)이라고 하고, 또는 자장(子張)이 물었을 때 ‘공손함과 너그러움과 믿음성과 민첩함과 은혜를 베푸는 이 다섯 가지’(陽貨, 六)를 인이라고 답하기도 한다. ‘인자는 근심치 아니하며’(子罕, 二十八) ‘극(克), 벌(伐), 원(怨), 욕(欲)을 자제하여 행하지 아니하는 이를 인자(仁者)라 하올까요. 공자가 말하기를, 그렇게 하기도 어렵거니와 그것이 인자인지는 나도 알지 못하노라.’(憲問 二)
인(仁)은 어찌 보면 이것이 인이라고 하는 순간 인은 사라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 곧 ‘ㄱ’은 결국 ‘ㄴ’의 형체일 뿐이다. 그래서 인은 ‘ㄱ/ㄴ'인 인일 뿐이다. 따라서 인(仁)은 행적들로 이루어지게 된다.
인(仁)을 파자하면 사람[人] 둘[二]이 합성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사람 간의 사맛[소통]의 문제인 것이다. 서경에서 본심은 도심(道心)이고 인심(人心)은 욕심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사람은 이에 본심을 키워야 하는 데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도심(道心)과 연결되어야 한다. 곧 나의 본심인 도심과 남의 본심인 도심이 만나 일심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한마음이고 인(仁)이다.(이기동, 퇴계 철학의 본질과 현대적 의미, 2018. 3. 18, 사다헌 강의자료.) 인(仁)은 ‘어질 인’이라 하는데 똑똑하고 착한 것을 일컫는다. 또한 불교가 지향하는 지식과 깨달음의 뜻도 포함하고 있다.
인(仁)은 세종에게 있어서 여러 시정(時政)으로 실현된다. 이런 까닭으로 실록에 비록 중국의 고전의 경/사의 예가 많아도 이는 어디까지나 참고에 지나지 않고 실천에서 나타나는 바가 바로 인(仁)이고 인의 정치인 셈이다.
민본의 근간은 천하에 버릴 사람은 없고 천지의 길과 사람의 길이 같고 마지막으로는 백성 모두가 생생지락(生生之樂)의 기회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천하에 버릴 사람은 없다[無棄人也] : (박연이 무동의 충원과 방향의 제조, 맹인 악공 처우 등의 일을 아뢰다) 옛날의 제왕은 모두 장님을 써서 악사를 삼아서 현송(絃誦, 거문고를 타면서 시를 읊음)의 임무를 맡겼으니, 그들은 눈이 없어도 소리를 살피기 때문이며, 또 세상에 버릴 사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세종 13/12/25)
이 여러 절차는 백성들이 생생지락 곧 일터에서 신명 나게 일하는 기쁨의 기회를 누릴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생민의 주 : 임금이 말씀하시기를,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평안하게 된다. 내가 박덕(薄德)한 사람으로서 외람되이 생민의 주가 되었으니, 오직 이 백성을 기르고 어루만져 편안하게 하는 방법만이 마음속에 간절하여 ... 백성들이 ... 원통하고 억울한 처지를 면하게 하여, 고향 마을에서 근심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영구히 끊어져서 각기 생생하는 즐거움을 이루도록 할 것이다.(세종 5/7/3)
그리고 그 다스리는 원리는 하늘의 도에 있어서 하늘과 사람을 구별할 수 없다는 논리로 백성의 평안이 우선이다.
하늘과 사람, 목적은 같다 : 근정전에 나아가 죄인을 특별히 용서하여 주는 임금의 명령을 안팎에 반포하였다. 임금은 이르노라. 천지의 마음은 오로지 만물을 생육하는 데에 있고, 제왕의 도는 이 백성을 편안히 기르는 데에 있도다. 하늘과 사람은 비록 다르나, 그 목적은 같은 것이다. (세종 6/10/15)
천지지심(天地之心)이고 임금의 길이다. 이에 궁극적으로 하늘과 사람은 그 목적은 같은 것이다. 세종의 민본 사상은 백성을 편하게 함에 근거한 백성 사랑 사상이다.
민련(憫憐) : 형조에 임금이 명을 내리기를, ... 비록 죄를 용서해 주더라도 모두 가두어 두고 원범인(元犯人)의 죄가 판결되기를 기다리므로, 혹 병들고 얼[凍]고 굶주리며, 인하여 목숨이 끊어지는 데에 이르니 진실로 불쌍하고 가엾다.(세종 19/4/30)
죄수들에게 명을 내리는 것이지만 무엇인가 모자라고 고통받는 백성에 대한 근본적이고 동질적인 호생(好生)의 공감이 바로 민련(憫憐) 사상이다.
백성에게 필수 요소는 먹는 것, 입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찾는 ‘얼나’의 길을 찾게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