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순흥 교수] 십자군전쟁 이후, 종교개혁과 르네쌍스, 산업혁명을 겪고 서양이 눈을 뜨면서 지리상의 큰 발견과 이에 따른 세계적인 탐험여행은 서세동점(西勢東漸, 서양이 동양을 지배한다는 뜻으로, 밀려드는 외세와 열강을 이르는 말)을 초래하였고, 서세동점은 동시에 서학(西學)이 동점하는 계기가 되어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에 천주교가 전래하였다.
이 땅에 천주교가 소개된 것은 17세기 이후다. 중국의 선교사들이 한자로 저술한 천주교 관계 서적들이 17세기 초엽부터 조선에 들어왔고, 본격적으로 전파된 것은 18세기의 일이다. 천주교는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에 들어왔으나 뿌리내리기까지 수많은 박해를 받았다. 개신교는 19세기 말 서구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부터 시작되고, 이후 한국 개신교는 세계의 주목을 끌만큼 놀랍게 성장하여 오늘날 4명 가운데 1명은 개신교 신자일 정도로 양적으로 크게 팽창해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역사가 있다. 성지(聖地) 예루살렘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미 조선에 알려졌다. 1402년, 조선 건국 10년, 태종 2년, 세종이 5살 때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壹疆理歷代國都之圖>(줄여서 ‘강리도’)에 ‘후스(아랍어로 예루살렘)’, ‘다메섹(다마스쿠스)’ 등 수많은 성경 속의 지명들이 나타나 있다.
1492년 콜롬부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보다 90년 먼저, 1488년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한 것보다 86년 먼저, 1405년 명나라의 정화함대가 아프리카에 다녀온 것보다 3년이나 앞선 1402년에 조선은 세계 처음 바다로 둘러싸인 아프리카를 제대로 그려낸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천주교나 개신교가 들어온 것보다 수백 년 전에 성서의 지명들이 조선의 문물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흔히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우리나라를 처음 그린 지도라고 알고 있는데, 그보다 500년 전에 나온 강리도는 조선의 모습을 대동여지도보다 더 정확하게 그리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한가?
모두가 아는데 우리만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보물
유네스코에서 펴낸 《인류문화유산 600~1492》에는 강리도를 표지로 사용하고 있고, 600년부터 900년 동안의 인류 역사에서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업적의 하나로 <강리도>를 꼽고 있다. 미국 스미스소니안 박물관에서 나온 《1,000가지의 인류문화유산》에 세계 첫 금속활자인 고려의 직지활자가 2줄로 소개되어 있다. 비록 2줄로 소개되어 있지만 인류의 주요 문화유산 1,000 가지 안에 들어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인데, 강리도는 2쪽에 걸쳐 소개되어 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미국의 고등학교에서는 지리시간에 <강리도>를 가르치고, 미국 대학의 지리학개론 교재에는 <강리도>가 가장 먼저 나오는 지도(<그림 1>)다. 이태리의 갈릴레오박물관에서는 이태리어로 <강리도> 유투브를 만들어 세계에 알리고 있다. 1402년에 나온 조선의 지도가 세계사를 바꾼 것에 온 천하가 놀라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가방끈이 어지간히 길다고 할 수 있는 글쓴이가 <강리도>에 대해 들은 것이 겨우 1년 전이다. 요즘 아이들은 중학교 때 사회시간에 <강리도>를 배우기도 한다. 그런데 중국을 지도의 한가운데 놓고, 가장 크게 그렸다는 이유로. ‘중화주의적인 지도’라고 잘못 배우고 있다.
기독교인들도 1402년에 조선에서 만든 <강리도>에 성경의 지명이 나와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