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2025년 올해로 위대한 글자 훈민정음은 창제 582돌, 반포 579돌을 맞이했다. 훈민정음 창제는 세종대왕이 혼자 한 것이었지만, 해례본은 정인지ㆍ최항ㆍ박팽년ㆍ신숙주ㆍ성삼문ㆍ강희안ㆍ이개ㆍ이선로 등 8명의 학사와 함께 이뤄낸 집단 지성의 결과물이었다. 그런 만큼 15세기까지 이룩한 각종 학문 성과, 곧 인문학ㆍ과학ㆍ음악ㆍ수학 같은 다양한 지식과 사상이 융합 기술되어 있다. 인류 보편의 문자 사상과 철학이 매우 짜임새 있게 담겨 있다.
또 해례본은 1997년에 유네스코에 첫 번째로 오른 대한민국 세계 기록 유산이다. 섬세한 문자 해설서이면서 음성학 책이기도 하고 문자학 책이기도 하다. 15세기로 보나 지금으로 보나 으뜸 사상과 학문을 담은 책이자 현대 음성학과 문자학 그 이상의 값어치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의 문화유산인 해례본이 대단한 책이라는 건 알면서 정작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 원문이 한문이고, 한글로 뒤침(번역)도 대개 전문가들이 그들의 수준에 맞게 한 것이라 읽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국어국문학과나 국어교육학과에서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요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시 뒤쳐 펴내는 작업이 절실했다.
이런 생각으로 새롭게 뒤쳐서 나온 책이 《훈민정음》 해례본의 권위자 김슬옹 박사의 《훈민정음 해례본 함께 읽기》다. 김슬옹 박사는 강조한다. “이제는 우리 모두 《훈민정음》 해례본을 함께 읽고 나누어야 할 때다! 해례본에 담긴 세종 정신으로 모두 하나 되어 더욱 도약해야 할 때다."라고 말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권위자 김슬옹 박사의 쉽고 편하게 읽는 해례본 강독
《훈민정음 해례본 함께 읽기》 운동의 시작

이 책은 한글 운동과 한글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김슬옹 박사가 《훈민정음》 해례본을 일반인도 누구나 함께 읽고 그 내용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펴낸 책이다.
김슬옹 박사는 2005년에 훈민정음 역사 연구로 첫 번째 박사 학위를, 2010년에는 세종식 사유인 맥락 연구로 두 번째 박사 학위를, 2020년에는 해례본 순수 연구로 세 번째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그는 해례본 연구의 권위자답게 해례본 알리기 운동을 열정적으로 펼쳐왔다. 특히 나라 밖 특강과 전 세계인 대상 비대면 강의를 꾸준히 해왔다.
이 책도 그 운동의 하나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매개로 나라 안팎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더욱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해례본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함께 읽기》는 김슬옹 박사의 오랜 해례본 연구의 가장 완성된 최신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책은 펴냈지만, 일반 대중이 함께 읽는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 강독본은 처음이다. 그는 이 책을 시작으로 《훈민정음 해례본 함께 읽기》 운동을 더욱 널리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중학생 이상이면 누구나, 제대로 된 뒤침글로 쉽고 재미있게 읽기
훈민정음 곧 한글은 중고등학교 때 누구나 배웠다. 하지만 그것은 언해본의 일부로, 해례본은 구경조차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가장 큰 까닭은 해례본이 한문이고 제대로 된 뒤친글(번역문)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함께 읽기》는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배치하되, 어렵게 느껴지는 요소를 배제하고, 뒤침(번역)도 중학생 이상 읽을 수 있도록 되도록 쉽게 하고자 했다. 이렇게 해례본을 읽는 데 장벽이 되는 요소들을 덜어내면 글자를 만든 원리나 형태가 매우 과학적이고, 어떤 발음이든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 심지어 훈민정음을 만든 흥미진진한 배경과 과정까지, 세종의 폭넓은 사유와 해례본의 깊은 철학도 느낄 수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꼭 알아야 할 훈민정음 이야기
시험 준비에서 일반 교양까지 쉽게 파악하는 제자해 원리
《훈민정음》 해례본은 크게 세종대왕이 지은 ‘정음 편’과 세종대왕의 명으로 정인지를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이 풀이한 ‘정음해례 편’으로 나뉜다.
1부 ‘정음 편’에는 ‘세종 서문’과 ‘예의’ 편이 실려 있다. ‘세종 서문’에는 훈민정음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 그 값어치는 무엇인지가 간결하게 쓰여 있다. 곧, 한자로는 제대로 적을 수 없는 우리말에 적합한 새 글자를 만든다는 자주정신, 한자를 잘 모르는 백성도 쉬운 글자로 마음껏 소통할 수 있게 한다는 백성 사랑 정신, 그리고 모든 백성이 우리 글자를 쉽게 익혀 편안하게 살게 하려는 실용 정신 등이 담겨 있다. 이어서 나오는 ‘예의’ 편에서는 자음자와 모음자를 만든 원리를 설명한다. 곧, 발음 기관 또는 발음하는 모양을 본떠 자음자 17자를 만들고, 하늘과 땅과 사람을 본떠 모음자 11자를 만든 상형 원리다.
그리고 세종대왕의 명으로 정인지를 비롯한 집현전 학사 8인이 풀이한 2부 ‘정음해례 편’에서는 정음 편의 내용을 더욱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글자 만든 풀이(제자해), 첫소리 글자 풀이(초성해), 가운뎃소리 글자 풀이(중성해), 끝소리 글자 풀이(종성해), 글자 합치기 풀이(합자해), 낱글자 사용 보기(용자례)가 나온다. 그리고 정인지 서문에서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 반포한 큰 꿈의 배경과 값어치를 자세히 보여준다. 훈민정음을 직접 창제한 세종대왕을 모든 임금을 넘어선, 하늘이 내린 성인으로 평가하며 훈민정음의 위대한 꿈을 담았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해례본의 모든 내용을 제대로 알 수 있게 꼭 알아야 할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 문자의 창제 원리에서 철학까지 한눈에 펼쳐지게 담았다. 따라서 이 책 한 권이면 시험 준비를 하는 중학생부터 일반 교양으로 읽고자 하는 성인까지, 《훈민정음》 해례본을 쉽고 편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곧 《훈민정음 해례본 함께 읽기》 책, 해례본과 언해본 원전의 값어치를 살린 손바닥 책 꾸러미도 선보였다. 집집마다 하나씩 보관하고, 가까운 분들에게 선물용으로도 강력히 추천한다.
아래아를 발음하는 제주도 화자를 MRI로 찍어 연구한다 《훈민정음 해례본 함께 읽기》 지은이 김슬옹 박사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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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진 김슬옹 박사는 평생을 한글 연구에 헌신해 왔다. 2025년 1월에 펴낸 《훈민정음 해례본 함께 읽기》는 그의 세 번째 박사학위 연구 결과물이자, 일반인들도 해례본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대중적 교양서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김 박사의 연구 여정과 훈민정음 해례본의 값어치,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 훈민정음 해례본 연구에 평생을 바치게 된 계기는?
"외솔 최현배 선생님의 뜻을 잇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철도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깊이 연구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해례본을 공부하면 할수록 그 깊이와 값어치에 매료되었다. 특히 2005년 훈민정음 역사 연구로 첫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세종식 사유, 그리고 해례본 자체에 대한 연구로 두 번, 세 번의 박사학위까지 받게 되었다. 해례본은 단순한 문자 해설서가 아니라 15세기 인문학, 과학, 음악, 수학 등 다양한 지식과 사상이 융합된 걸작이란 생각이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까닭일 것이다. 이런 무가지보의 문화유산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 《훈민정음 해례본 함께 읽기》는 기존의 해례본 연구서와 어떤 점이 다른가?
"기존 해례본 관련 서적들은 대부분 학자를 위한 전문적인 내용이었다. 반면 이 책은 '함께 읽기'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중학생부터 일반 성인까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장 큰 특징은 366개의 문장으로 체계화하여 하루 한 문장씩 읽을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또한 세종 서문을 108자로 번역한 것도 처음이다. 이는 언해본의 108자 번역 정신을 살린 것이다 그리고 홀소리(자음자) 읽기 방식도 기존과 다르다. 'ㄱ, ㄴ, ㄷ'을 현대식인 '기역, 니은, 디귿'이 아닌 15세기 방식인 'ㄱ(기), ㄴ(니), ㄷ(디)'로 읽을 수 있게 했다. 또 종성자는 'ㄱ(윽), ㄴ(은), ㄷ(읃)' 식으로 제시했는데 이렇게 하면 누구나 15세기 방식으로 혼자서도 강독할 수 있다. 또한 영문 번역을 함께 실어 전 세계인들도 훈민정음의 값어치를 이해할 수 있게 했다."
- 해례본이 갖는 현대적 값어치는 무엇인가?
"해례본은 단순한 옛 문헌이 아니다. 현대의 관점에서 봐도 뛰어난 문자 이론서이자, 음성학 책이며 문자학 책이다. 특히 그 창제 원리의 과학성과 철학적 깊이는 오늘날에도 큰 의미가 있다. 해례본에서 말하는 '천지인(天地人)' 사상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강조한다. 또한 '각각 그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라는 상형의 원리는 직관적 이해를 돕는 디자인 철학이라 할 수 있다. 글자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체계적인 해설서까지 만든 세종과 학자들의 정신은 오늘날의 디지털 콘텐츠 제작이나 교육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말하려는 것이 있어도 끝내 제 뜻을 능히 펼치지 못하는' 백성들을 위해 문자를 만든 세종의 백성사랑 정신과 소통에 대한 열망은 현대 사회에 필요한 값어치다. 모두가 쉽게 배워 사용할 수 있는 문자로 소통의 벽을 허물고자 한 생각은 오늘날 정보 격차와 디지털 소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과도 맞닿아 있다."
-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정음해례 제자해에 나오는 '이제 정음이 만들어지게 된 것도 애초부터 지혜를 굴리고 힘들여 찾은 것이 아니고, 단지 말소리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었을 뿐이다'라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세종과 학자들은 자연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발견했다고 겸손하게 말하고 있다. 또한 정인지 서문에 나오는 '정음 창제는 앞선 사람이 이룩한 것에 따른 것이 아니요, 자연의 이치를 따른 것이다. 참으로 그 지극한 이치가 없는 곳이 없으니, 사람의 힘으로 사사로이 한 것이 아니다'라는 구절도 종요롭다. 훈민정음이 얼마나 위대한 창조물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아! 정음이 만들어져 천지 만물의 이치가 모두 갖추어졌으니, 그 정음이 신묘하다. 이는 틀림없이 하늘이 성왕(세종)의 마음을 일깨워, 세종의 손을 빌려 정음을 만들게 한 것이로구나'라는 구절은 훈민정음이 단순한 문자 창제를 넘어선 우주적 차원의 업적임을 강조한다."
- 《훈민정음 해례본 선물 꾸러미(《훈민정음 해례본 함께 읽기》 해례본 손바닥책》, 《언해본 손바닥책》도 함께 펴냈는데 그 까닭은?
"훈민정음의 값어치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다. 《훈민정음 해례본 함께 읽기》가 해례본의 철학과 원리를 깊이 있게 설명하는 교양서라면, 손바닥책 꾸러미는 원전의 품격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휴대가 가능한 형태로 제작한 것이다. 특히 해례본과 언해본을 함께 묶은 것은 두 문헌의 상호보완적 값어치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12차시로 구성된 '훈민정음 해례본 강독' 비대면 강의를 통해 나라 안팎의 많은 분과 훈민정음의 값어치를 함께 나누려고 한 것이다. 특히 나라 밖에서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다양한 언어로 훈민정음의 값어치를 알리는 활동도 확대할 계획이다.“
- 그동안 한글과 관련해서 많은 책을 펴낸 걸로 안다. 그러면 이번 펴낸 이 책이 완결본일까?
"그간 한글교양 등 121권(공저 70권)을 펴냈다. 학자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그것을 세상 사람들이 나누는 것이 본분이다. 내가 학자로서 살아가는 한 저술을 멈춰서는 안 된다. 이번에 펴낸 《훈민정음 해례본 함께 읽기》는 내 연구의 최신 결과물이지만 '완결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매우 심오한 책으로, 연구할수록 새로운 발견과 해석이 가능하다. 또한 시대와 독자에 맞게 계속 새로운 형태로 재해석하고 전달해야 한다. 이 책은 현재까지의 연구를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정리한 것이지만, 앞으로도 더 깊이 있는 연구와 더 다양한 방식의 전달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 우리는 한글을 세계 으뜸 글자라 하면서도 아직 우리 국민의 대부분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읽어보지 못한 것은 그동안 나온 책들이 쉽게 쓰지 않은 탓이라고 보아야 하나?
"그렇게 볼 수 있다. 또 《훈민정음 해례본》은 오랫동안 학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다. 기존의 번역서들은 대부분 한문학자나 국어학자들을 위한 전문적인 내용으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교육적 측면에서도 훈민정음의 창제 사실과 간단한 원리만 가르칠 뿐, 해례본의 깊은 철학과 과학적 원리는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심지어 국어국문학과나 국어교육학과에서도 해례본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훈민정음 해례본 함께 읽기》를 기획했다. 해례본의 한문 원문을 366개 문장으로 체계화하고,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로 번역했다. 또한 홀소리(자음자) 읽기 방식을 15세기 방식으로 제시하여 누구나 혼자서도 강독할 수 있게 했다. 세계 으뜸 글자인 훈민정음, 특히 그 원리와 철학이 담긴 해례본은 전문가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함께 읽고 나눠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이제는 정말 함께 읽을 시간이다.“
- 정부의 말글정책을 보면 한글이 으뜸 글자라 하면서도 실제 쓰는 말은 '윷놀이' 대신 '척사대회'처럼 어려운 한자말도 버젓이 쓰고, '함께 EAT다'처럼 외국어를 자랑스럽게 섞어 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국어기본법>에 벌칙조항 등 강제력이 없는 까닭이 아닌가? 아니 어쩌면 정작 우리말글에 관한 사랑이 부족한 까닭일 것이다. 이런 현상을 고쳐 나갈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문제의 핵심은 '우리말글에 관한 사랑이 부족한 까닭'이라는 지적에 동의한다. 법적 강제력도 중요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 말글의 값어치와 아름다움을 제대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개선 방안으로는 첫째, 교육 과정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의 깊은 철학과 과학적 원리를 더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우리 글자의 우수성과 그 창제 정신을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말글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생길 것이다. 둘째, 공공기관과 언론이 솔선수범하여 쉬운 우리말을 사용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정부와 공공기관은 '국어기본법'의 취지를 살려 어려운 한자어나 불필요한 외래어 대신 쉬운 우리말을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셋째, 우리말 순화 운동과 함께 우리말의 창의적 확장도 필요하다. 새로운 개념이나 사물을 표현할 때 무조건 외래어를 빌려 쓰기보다는 우리말의 조어력을 활용해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 넷째, 국민 참여형 캠페인과 함께 말글 문화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말글 사랑은 결국 문화적 자부심과 정체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우리말글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법적 강제가 없더라도 말글 환경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 '한글이름'이라고 쓰면 안 되며 '우리말 이름'이어야 한다. 나라 밖에 세운 '한글학교'는 글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말도 가르친다. 따라서 '배달말학교'라고 쓰는 게 바람직하다. 이런 현상은 말과 글을 구분할 줄 모르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현상을 바로잡을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적하신 것처럼 '말'과 '글'의 구분은 매우 종요롭다. '한글'은 글자체계이고, 우리의 언어는 '한국어' 또는 '우리말'이다. 이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생기는 혼란이 적지 않다. 이를 바로잡는 방법으로는 첫째, 교육 과정에서부터 말과 글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여 가르쳐야 한다. 국어 교육에서 '언어(말)'와 '문자(글)'의 차이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한글'은 문자체계를, '한국어'는 언어를 가리킨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국어 관련 공공기관과 학술단체에서 올바른 용어 사용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고 보급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한글이름' 대신 '우리말 이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도록 권장하는 것이다.
셋째, 나라 밖 한국어 교육기관의 이름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글학교'보다는 '한국어학교' 또는 '배달말학교'라는 이름이 교육 내용을 더 정확히 반영한다. 물론 이미 굳어진 이름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새로 설립되는 기관부터는 올바른 이름을 사용하도록 권장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언론과 출판계에서의 올바른 용어 사용이 중요하다. 영향력 있는 매체들이 말과 글을 정확히 구분하여 표현한다면, 대중의 인식도 자연스럽게 바뀔 것입니다.다섯째, 일상 언어생활에서도 이러한 구분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교육자와 연구자, 공무원 등 언어 사용에 영향력을 미치는 직업군에서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
말과 글의 구분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닌 언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관련된 문제다. 이러한 인식이 확산해야 더욱 정확하고 풍부한 언어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지금 쓰는 한글에는 '하늘 ㆍ(가운데 ㆍ)'가 없다. 서울여대 한재준 교수는 "제주말에 살아남은, 이 '하늘 ㆍ'가 홀소리(모음)의 중심이고 이 글자를 써야 완벽하게 된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관한 생각은 어떤가?
"'아래아(ㆍ)'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 모음의 중심이었다. 해례본에서는 이를 '하늘을 본뜬 글자'로 설명하고 음가는 입술은 ‘오’보다 더 벌리고 ‘아’보다 더 오므리며, 혀는 오처럼 가장 많이 오그리는 깊은 소리라고 하였고, 천지인(天地人) 삼재의 철학에서 '하늘'을 상징하는 핵심 모음이었다. 그러나 언어의 변화와 함께 19세기 후반부터 실제 발음에서 점차 사라지고,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에서 공식적으로 제외되었다.
한재준 교수의 지적처럼 제주도 사투리에는 이 '아래아(ㆍ)' 발음이 여전히 남아있으며, 이는 우리 언어의 역사적 층위를 보여주는 소중한 언어 자산이다. 그리고 훈민정음의 철학적 완결성 측면에서도 '아래아'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다만, 현대 표준어 발음에서는 이미 '아래아' 소리가 다른 모음으로 합류되었기 때문에, 이를 현대 한글 체계에 다시 도입하는 것은 실용적 측면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체와 같아서, 과거의 요소를 인위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항상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아래아'의 역사적, 철학적 중요성을 교육하고, 제주도 사투리와 같은 지역어에서 이를 보존하려는 노력은 매우 값어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고문헌 연구나 역사 언어학적 연구에서는 '아래아'를 정확히 이해하고 표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나는 '아래아'를 일상 언어생활에 다시 도입하기보다는, 훈민정음의 원리를 가르칠 때 그 철학적 의미와 중요성을 함께 교육하고, 제주도 사투리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이 소리의 값어치를 인식하는 방향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현대 한글의 실용성을 유지하면서도 훈민정음의 철학적 완결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전문위원으로 있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회장 최홍식)의 훈민정음 융합 연구단(연구책임자: 김슬옹)"에서는 제주도 아래아 발음이 가능한 제주도 토박이 화자의 발음 상황을 자기공명영상잔치(MRI)로 촬영하여 연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비록 긴 시간이었지만, 대담하면서 김슬옹 박사의 성가가 괜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훈민정음에 대한 분명한 철학과 사랑이 그 누구보다도 강렬함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었다. 한글 관련 책을 120권 넘게 쓴 학자의 거침없는 일갈은 대담하는 기자도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마지막 대담 중 제주도 아래아 발음이 가능한 제주도 토박이 화자의 발음 상황을 자기공명영상잔치(MRI)로 촬영하여 연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데 크게 손뼉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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