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이 좋은 까닭

  • 등록 2025.08.06 11: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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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들이 기성세대보다 훨씬 빠르게 그들의 생각을 펼쳐낸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31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가지마다 새잎이 나온다고 신록의 봄을 좋아한 것이 엊그제인 것 같은데 어느새 나뭇잎들이 녹색보다 더욱 진하게 변해 마치 검은 느낌을 주는 계절이 되었군요. 7월이 지나고 8월입니다. 참으로 계절의 버뀜은 무섭다고나 할까요. 한여름 40도 가까운 뜨거운 열기가 날마다 힘들게 하는 나날이지만 저는 요즘 기다려지는 게 있어서 이 더위를 참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집의 어린 곤충학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입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그 어린 학자가 여름 방학이거든요.

 

지난 5월 어린이날은 부처님 오신 날까지 합해져 휴식기간이 길었는데 그때 어린 학자가 우리 집을 방문했습니다. 요즘 애들은 산에 가자고 하면 잘 안 따라오는데 손말틀(휴대전화)을 들고 성큼 따라오더라고요. 산책로를 조금 들어가는데 이 학자가 길옆에 주저앉으면서 땅 가까이에 있는 벌레를 보며 소리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와 자벌레다."

 

 

우리 어른들이야 벌레를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그런데 그 어린 학자는 자벌레를 보고는 환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습니다. 자벌레가 자처럼 몸을 써서 움직인다고 설명합니다. 이 자벌레가 커서는 이렇게 된다며 대뜸 휴대전화로 곤충이 날개를 달아 변하는 사진을 보여주며 이 벌레가 다른 벌레와 어떻게 다른 지를 말해줍니다.

 

 

그리고 조금 가다가 다시 다른 벌레를 보고는 또 주저앉아 어른인 우리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곤충들의 종류나 이름을 아는 것도 많고 이들의 일생을 제대로 꿰차고 있더라고요. 아는 것도 정확히 잘 알고 있고 곤충들을 대하는 태도가 하도 진지하기에 그때 우리는 그에게 어린 곤충학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서 그 학자가 사는 동네의 숲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길가의 참나무 가지에 붙어있는 작은 집게벌레를 보더니 사진을 찍자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멀리서 대충 찍으니까, 휴대전화를 빼앗아 가까이에서 아주 잘 찍어내며 이게 사슴벌레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게 집게벌레가 아니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사슴벌레고 그것도 넙적사슴벌레라며 구체적인 이름까지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 하니까 사슴벌레 집게의 형태와 방향이 달라서 어떤 것은 왕사슴벌레라고 하는데 이것은 넙적사슴벌레라고 분명히 나눠서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휴대전화로 사슴벌레를 검색해서 서로 다른 종류인 것을 증명해 보이더라고요.

 

 

 

그날 저는 다시 두 손을 들었습니다. 이 정도라면 확실히 곤충학자 수준이 아닌가? 맨날 게임만 하는 것 같은 이 어린 것이 언제 이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깊이 파고들어 전문가처럼 많은 곤충에 대한 지식을 알고 또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곧바로 자기 것으로 하면서 정확한 지식체계를 갖추는 법을 터득한 것인가? 그러니 앞으로는 막내손자를 어린 곤충학자로 대접해 주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나이가 들어 사회생활도 많이 하면서 지나왔는데 우리가 살아온 방식을 기준으로 애들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곤 하지만 애들도 나름대로 자신들의 길을 잘 오고 있구나, 그것도 어른들의 압력 또는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자신이 스스로 개척해 오고 있구나. 그러니 가끔 볼 때 손주들이 부모에게 버릇없이 굴거나 게임에만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세상을 보고 세상의 이치를 파악하고 있는데 그것이 과거 우리들이 교과서만으로 선생님들의 가르침만 학습하던 때와는 달리 스스로 그렇게 한다는 것 아닌가? 참으로 어른이 너무 쉽게 애들을 판단하고 걱정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 1770~1850)는 '무지개'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입니다"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

 

그렇군요. 어린 손주에게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정보도 얻고 이를 통해 자연을 더욱 새롭게 보게 됩니다. 우리들은 이 곤충학자를 만난 이후 산길을 걸으며 산에 있는 작은 생명들, 곤충들, 꽃들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산에서 만난 나비가 무슨 나비인지, 그게 손자가 말해준 제비나비인지, 혹은 다른 나비인지를 생각해 보고 집에 와서 다시 찾아보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 산책길도 서두르지 않고 더 천천히 걷습니다. 그만큼 자연을 더 관조하며 우리들의 바쁜 삶을 늦추어 의미있게 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아침에 보니 참나무 잎이 떨어진 곳에 하얀 멋진 버섯들이 피어올랐습니다. 영국식으로 말하자면 로얄 애스콧 경마대회에 멋진 모자에 흰색의 드레스를 입고 나온 영국 귀부인들을 연상시키는 버섯들입니다. 이런 종류의 아름다움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산책객들이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가려 하기에 이것 보고 가시라고 권유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자연 속 생명체들의 아름다움을 통해 자연도 다시 보게 된 것이지요. 워즈워드의 그 무지개라는 시를 다시 읽어봅니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은 한없이 뜁니다.

내 어릴 때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한데,

나이 더 들어 늙어서도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죽기를 원합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입니다.

따라서 내 삶이

자연의 경건함으로 채워져

매일매일 이어져 나가길 바랍니다.

 

 

 

저는 요즘 세계를 흔들고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 '케데몬(케이팝데몬 몬스터즈)'의 강렬한 음악과 현란한 영상, 멋진 케이 팝 음악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한국인들의 전통과 지혜, 이 시대를 향한 메시지 이런 것들이 눈이 부실 정도로, 눈물이 날 정도로 잘 만들어진 것을 보면서, 이 애니메이션을 만든 주역들이 미국과 캐나다에 건너간 우리 한국인 2세 소녀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이런 우리의 후대들이 어느새 우리 기성세대들보다도 훨씬 현명하게 빠르게 세상을 잘 공부하고 그들의 생각을 펼쳐낼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기성세대들이 후대들에게 버릇없이 큰다고 걱정만 하지 말고 이들이 더 자유롭게 탐구하고 그들의 꿈을 찾고 능력을 살리도록 도와주는 것이 어른들이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 방학을 맞은 우리의 어린 곤충학자가 그동안 또 무엇을 공부하고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만나서 확인할 수 있다는 기대에, 방학을 만들어주는 더위가 고맙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동식 인문탐험가 sunonthe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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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인문탐험가

전 KBS 해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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