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지세대, 시간여행으로 기산 그림을 만나다

  • 등록 2025.10.26 13: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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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아트센터,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1883 인천 그리고 기산 김준근》
세계인이 큰 손뼉으로 화답할 K-공연이 될 것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 모든 것은 어쩌면 언젠간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조선을 그리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나와 같은 작은 환쟁이라도 우리의 것을 기록해야지. 그것이 내 작은 소명이다.”

 

어제 10월 25일 낮 3시에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에서 열린 전통연희단 잔치마당(대표 서광일)이 주최하는 창작판놀음 《1883 인천 그리고 기산 김준근 / 부제 : 기산, 시간을 그리다》 공연에서 개화기 조선의 풍속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화가 기산 김준근(배역 유인석)은 이렇게 독백한다.

 

 

1,500여 점의 풍속화를 남긴 그의 작품은 독일 무역상 세창양행(Sechang & Co.) 대표 칼 두아르드 마이어(Carl Eduard Meyer)를 통해 유럽으로 전해져, 현재 독일 함부르크 민속학박물관을 비롯한 전 세계 15여 개 나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작품 속에는 조선의 일상과 전통연희, 제례와 형벌 등 다양한 민속의 장면이 담겨 있으며, 당시의 사회ㆍ문화적 변화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공연이 시작되자, 1883년 인천 개항장의 풍경과 인물, 외세와의 갈등, 그리고 민중의 예술적 저항과 생존을 보여준다. 특히 무대에서는 기산의 그림이 영상으로 실시간 투사되어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듯 표현되며, 전통 장단과 현대 밴드가 결합한 창작 음악이 몰입감을 높인다. 특히 이 공연은 엠지(MZ)세대 캐릭터가 등장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세대 사이 공감과 소통의 의미를 더하는 구조로 이어간다.

 

무대가 열리자 아이돌 음악이 흐른다. 이어서 화려한 쇼 조명이 들어온다. 엠지세대 아이들이 등장하여 한바탕 춤을 춘다. 그리곤 “우엑! 오바 쌉쳐” 같은 어른들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한다. 그러다 합죽선 부채와 그림책을 줍고 부채질을 하자 번개가 치고 아이들은 억! 하는 사이 그림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시간여행이 시작되고 조선말기로 가서 기산 김준근을 만나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 뒤 기산을 따라다니면서 온갖 조선말기 풍속을 접한다. 연희 ‘설장구패’들을 만나고, ‘기생검무’를 보고, ‘광대줄타기’, ‘팔탈춤’ 등이 정신없이 이어진다. 현대의 아이들이 조선말기의 정통연희를 접하고 자신들 모르게 빨려 들어간다. 이 공연은 엠지세대 아이들이 시간여행을 통해 조선말기 연희를 만나는 단순한 모습이 아니라 무대 뒤편에 영상으로 기산의 그림을 보여줌으로써 기산의 풍속화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가신의 그림에 등장하는 화려한 설장구놀이, 기생검무, 광대줄타기, 팔탈춤을 접하게 하면서 현대의 아이들이 조선말기 전통연희에 빠져드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특히 이런 공연들을 적당히 보여주는 게 아니라 전문 연희꾼들의 수준 높은 공연으로 이어간 점은 이 공연을 주최한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의 마음가짐을 말해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광대줄타기’에서 수준 높은 줄타기 공연은 물론 어름산이와 어릿광대의 재담이 공연에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가도록 한 점과 화려한 검무 동작, 상모를 돌리며 정신없이 몰아가는 풍물판은 이번 공연 하나로 다양한 연희판을 접할 수 있게 하는 대단한 기획임을 말해주었다.

 

공연의 마지막에서 기산 김준근은 “제아무리 강산이 변하고 세상이 요동치더라도 우리 백성들은 언제나 늘 그 힘든 시기를 버티고 이겨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우리의 흥! 우리의 전통이 있었지. 우리의 전통을 지켜내는 것이 우리들의 뿌리를 지켜내는 것이란다. 나는 여기서 조선의 것을 지키고, 기억하고, 기록하겠다. 너희들도 너희들의 자리에서 너희들의 시간을 기억하고 너희들의 방식으로 기록하렴. 그리고, 나 기산 김준근도 기억해주렴. 알았지? 잘 가거라! 잘 살거라!”고 속삭였다.

 

 

1992년 창단된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은 인천광역시 전문공연예술단체로, 풍물ㆍ탈춤ㆍ줄타기 등 전통연희를 기반으로 한 창작공연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의 현대적 재해석에 앞장서고 있다. 2004년 개관한 국악전용극장 ‘잔치마당 아트홀’을 중심으로 지역문화 활성화와 예술교육, 창단 이래 30개국 50여 도시 초청 등 나라 밖 교류사업을 꾸준히 이어오며, 2010년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어린이 국악극 《금다래꿍》, 연희판놀음 《인천아리랑 연가》, 창작판놀음 《기산, 시간을 그리다》 등이 있으며, 나라 안팎을 아우르는 문화예술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서광일 대표는 이번 작품을 통해 “전통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로 향하는 다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산 김준근의 붓끝에서 담아낸 조선의 삶과 예술은 지금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번 작품은 인천의 역사와 민중의 삶, 그리고 예술의 힘을 현대적 감성으로 되살린 무대다. 또한 기산은 단순히 그림을 판매한 화가가 아니라, 기록을 통해 민족의 혼을 지키려 한 예술가였다. 관객들이 이번 공연을 통해 우리의 뿌리와 자긍심을 다시 느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24일 저녁 7시에 공연을 보고 또 보러 왔다는 부평 삼산동에 사는 강수원(57) 씨는 “엠지세대가 시간여행으로 전통연희를 접하고 빠져들어 가는 이야기가 참 흥미로웠다. 더군다나 한 공연에서 수준 높은 설장구, 줄타기, 검무, 탈춤 등을 한꺼번에 보고 즐길 수 있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좀 더 가다듬고 발전시키면 세계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K-공연으로 큰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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