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의 시간, 인생의 카타르시스입니다

  • 등록 2026.05.16 11: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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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여행자, 사라진 시간을 걷다(김경한, 쌤앤파커스)》를 읽고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319]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가 얼마 전에 《인문여행자, 사라진 시간을 걷다》 책을 냈습니다. 2021년도에 《인문여행자, 도시를 걷다》를 냈을 때도, 책이 나온 지 한 달도 안 되어 8쇄를 찍고, 교보문고와 네이버에 인문 베스트셀러로 오르는 등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이번 책 역시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바로 베스트셀러로 올랐네요. 특히 청년들이 좋아하는 책으로 소문이 나, 인스타그램에서 화제라는군요. 김 대표는 고맙게도 이번에도 정성 들여 사인을 하여 저에게 책을 보내주셨습니다.

 

 

저번 책의 부제는 <낯선 곳에서 생각에 중독되다>였는데, 이번 책의 부제는 <문학과 예술이 태어난 곳으로 떠나다>입니다. 저번 책은 인문여행자 김경한 대표의 첫 인문여행 책이라 먼저 낯선 곳에서 생각을 풀어낸 것이라면, 이번 책은 좀 더 구체적으로 문학과 예술이 태어난 곳을 찾아 인문여행자의 생각을 풀어냈군요.

 

그래서 책은 1부를 [문학으로 걷다]라고 하여, <분노의 포도> 작가 존 스타인벡의 미국 몬터레이 등 일곱 도시에 관해 얘기하고, 2부에서는 [건축으로 걷다]라고 하여, 천상의 조각품 타지마할이 있는 인도 아그라 등 10개의 도시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3부에서는 [음악으로 걷다]라고 하여, <서머타임> 재즈에 취해 미국 뉴올리언스를 찾아가는 등 8개 도시에 취하고, 4부 [미술로 걷다]에서는 안도와 모네로 예술의 섬으로 새로 태어난 일본 나오시마 등 여섯 곳을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특히 4부에서는 추사 세한도의 제주와 고요한 바다 같은 추상화가 아그네스 마틴의 전시가 열린 강릉을 소개해 주셔서 더 반가웠습니다. 한편, 미식가를 위한 음식도시가 빠져서는 안 되겠지요? 그래서 5부에서는 [음식으로 걷다]라고 하여 죽음과도 맞바꾸는 복어 맛의 일본 시모노세키 등 7 도시를 소개하고, 마지막으로 6부에서는 [자연으로 걷다]라고 하여 존 웨인이 서부영화를 찍다가 휴식을 취하곤 하던 파우마밸리가 있는 미국 샌디에이고 등 7군데를 소개하며 책을 맺습니다. 7부에서도 한국 청산도와 인제 방태산 설둔마을이 나와 반갑네요.

 

김 대표는 책머리글 ‘길은 언제나 우리보다 앞서 있다’에서 사라진 시간을 걷는다는 것은 결국 잊힌 존재들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여행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시간과 의미의 잔상을 찾아가는 사유의 행위라고 합니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찔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그저 낯선 곳에서 호기심 충족, 동행자들과의 스트레스 해소, 욕망에의 탐닉 등에 그칠 때가 많을 테니까요. 저도 예외일 수 없겠지요.

 

저는 세기말에서 새천년으로 넘어올 때 가족들과 함께 20일 동안 호주와 뉴질랜드 여행을 했었습니다. 새천년으로 넘어가는 특별한 시간대여서 그런지, 저에게는 여러 가지로 기억되는 여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계속 흐르면서 그 행복했던 여행 기억은 파편화되고 흐려지며 점점 제 기억창고에서 사라져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2003년 말부터는 여행을 갔다오면 계속 글 여행기나 사진 여행기로 기록을 남기고 있지요. 그렇게 기록을 남기다 보니, 김 대표님 말씀처럼 시간과 의미의 잔상을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그럼 김 대표가 기록한 사라진 시간 속의 인문여행자 기록을 맛보기로 몇 꼭지 살펴볼까요? 1부 [문학으로 걷다]에서 김대표는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날아가 47살의 나이에 리스본에서 생을 마감한 작가 페르난도 페소아(1888~1935)를 만납니다.

 

“우리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이다. 이는 우리가 만든 이미지일 뿐,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페소아의 <<불안의 서>>에 나온 이 몇 줄의 문장이 자신을 리스본으로 데려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페소아의 일기장을 들고 리스본을 걸었다고 합니다. 책 표지에 리스본 언덕을 오르는 전차의 모습이 실렸는데, 이때 찍은 사진인 모양입니다. 김 대표는 사진을 찍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리스본 시내, 언덕으로 올라가는 낡은 전차는 오래전, 이 도시가 흥청거렸을 때의 추억을 간직한 풍경이다” 저도 올 4월 초에 리스본에 갔었는데, 그전에 이 책을 읽고 갈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문학을 하면서 무려 75개의 다른 이름을 사용했던 페소아, 그가 쓴 《불안의 서》, 여기에 한때 대항해 시대의 영광을 누렸던 포르투갈의 몰락을 생각하며, 김 대표는 글의 마지막에 이렇게 씁니다.

 

“나에 대한 폭력은 익숙한 곳으로부터 멀어져 보는 것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고, 반드시 떠나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는 곳으로 때가 되면 떠나고 싶은 것은 내면에 뭉쳐져 있는 자신에 대한 결핍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인생을 살아가며 내 영혼의 울림을 쫓아가고 싶다.”

 

그렇게 영혼의 울림을 쫓아가던 김 대표는 2부 [건축으로 걷다]에서는 사라진 제국의 시간을 찾아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을 찾습니다. 저는 ‘알람브라 궁전’ 하면, 먼저 귓가에 마음을 아련하게 하는 트레몰로 기법의 기타 연주곡이 맴돕니다. 프란시스코 타레가가 작곡한 이 기타곡으로 ‘알람브라 궁전’은 더욱 사람들 뇌리에 각인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 대표는 아래와 같이 얘기하면서 알람브라 궁전으로 들어갑니다.

 

“오후의 햇빛을 머금은 알람브라의 돌기둥들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눈이 부셨고, 인간이 빚었으되 인간의 솜씨라 믿기 어려울 만큼 아름답고 세련된 건축미를 드러냈다. 그 빛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궁전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그라나다는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한 이슬람이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곳 아닙니까? 이슬람이 다시 지브로울터 해협을 건너 철수한 뒤, 오랫동안 알람브라 궁전은 버려져 있다시피 하였지요. 그러다가 1829년 이곳을 방문한 워싱턴 어빙이 알람브라 궁전에 매혹되어 펜을 들어 <알람브라 이야기>를 쓰면서, 알람브라 궁전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며 오늘과 같은 영화를 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김 대표는 책에서 워싱턴 어빙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4월 초에 알람브라 궁전을 거닐었는데, 김 대표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 제 눈앞에 아라베스크 양식의 궁전이 천천히 스쳐 지나가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스치는 알람브라 궁전의 풍경 속에서 이슬람 무어인들의 영광과 몰락도 파노라마처럼 흐릅니다.

 

[음악으로 걷다]에서는 김 대표가 리스본의 시내를 거닐면서 파두에 흔들리는 영혼들을 찾는 글이 끌립니다. 저도 리스본에 갔을 때 비록 포르투갈이 사랑하는 작가 페르난도 페소아는 놓쳤지만, 어느 조그만 공연장에서 파두의 선율에 흠뻑 젖어 들었기 때문이지요. 김 대표는 파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갖가지 사연을 안고 떠난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마음,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는 이들을 기다리며 한숨처럼 내뱉던 멜로디가 오늘날 세계적으로 알려진 리스본의 파두다. 파두는 노래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이들의 ‘운명’이고 ‘숙명’이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을 알면서 끝내 놓지 못하는 그리움, 그것은 우리의 한과도 가깝게 닿아 있다.”

 

그렇습니다. 저도 예전에 처음 파두를 들으면서 이상하게 파두에 끌렸는데, 허공을 흐르는 파두의 선율에서 어떤 운명, 어떤 한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파두를 리스본 현지에 가서, 호소하는 듯한 여가수의 파두를 바로 앞에서 들으니, 가슴이 저리더군요. 그러한 파두를 김 대표 책에서 다시 보니, 그때 들은 여가수의 파두가 제 펜대를 움직이게 하는 모양입니다.

 

 

이거~ 계속 《인문여행자, 사라진 시간을 걷다》에 나오는 글을 얘기하는 것은 베스트셀러를 직접 사서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예의가 아니겠지요? 그래서 김 대표가 책머리의 글 ‘길은 언제나 우리보다 앞서 있다’에서 마지막에 다짐하는 글을 인용하며 《인문여행자, 사라진 시간을 걷다》 책을 본 소감을 마칩니다.

 

“리스본의 골목 벤치에 앉아 다음 여정을 상상했다. 문학과 역사의 시간을 찾아 걷는 일은 당분간 계속되리라. 시대가 바뀌고 풍경이 사라져도 내 시선은 여전히 사라진 시간의 그림자를 향할 것이다. 존재와 부재, 기억과 망각이 교차하는 그 경계 위에서 나는 묻고 또 묻는다. 내 마음이 동의하고 기쁘게 이끌려가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김 대표가 이번에 저에게 책을 보내주며 써준 싸인글에서도 “카이로스의 시간, 인생의 카타르시스입니다”라며, 카이로스를 얘기해주었습니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크로노스’적 시간과 달리, 인생과 역사 속에서 주어지는 특별한 순간입니다. 저도 앞으로는 여행하면서 내 마음이 동의하고 기쁘게 이끌려가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묻고 또 묻겠습니다. 김 대표님! 이번에도 소중한 카이로스의 기록을 저에게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낯선 곳에서 김 대표가 카이로스의 시간을 만날지 기대됩니다!

 

양승국 변호사 yangaram@lawlog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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