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김영기와 함께 월하 스승에게 전수 장학생으로 인정받고, 가곡 공부에 전념해 온 이승윤의 이야기를 하였다. 김영기가 공연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해 오면서 가곡의 지평을 넓혀 왔다면, 이승윤은 가곡의 후진들을 열심히 양성해 온 가객이란 점에서 견줄 수 있다는 점, 그는 공연 당일, 우조(羽調) <중거(中擧)>를 불렀는데, 그 곡은 <이수대엽>에서 파생되어 나온 변주곡의 이름으로 <중허리>, 또는 <중허리 드는 자진한잎>으로도 부른다는 점, 초장 중간 부분을 고음(高音)으로 들어낸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란 점도 이야기 하였다.
우리가 전통가곡을 감상할 때, 가령, 우조 <이수대엽>이라든가, 또는 우조 <중거>와 같은 낯선 이름을 대하게 되는데, 악곡의 이름도 친숙하지 않은 편이거니와 곡명 앞에 붙여 소개하는 <우조>라고 하는 이름도 어떤 뜻을 지닌 용어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간단하게 정의하면, <우조(羽調)>라고 하는 말은 <웃조>, 곧 높은 악조라고 생각하면 된다. 낮고 평평한 악조인 평조(平調)에 견줘, 상대적으로 높은 악조를 한자(漢字)로 표기한 이름인 것이다. 이들 명칭에 관한 용어들은 기회가 있는 대로 설명을 해 나갈 예정이다.
발표 당일, 이승윤이 부른 <중거>는 ‘청조야 오도고야’로 시작하는 노래인데, 이 노래는 멀리 떨어져 있는 임(任)의 소식을 전해주는 상징적 존재, 곧 ‘청조(靑鳥-파랑새)를 통해 임을 그리워하고 있는 내용을 표출하였다. 이 노래에서는 단순하게 보고 싶거나, 그리워하는 표현보다는 닿을 수 없는 거리를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바라는 애절함을 담고 있다. 이승윤은 마치 한 장의 편지를 써 내려가듯, 반주 음악에 맞추어 그리움을 조용히 불러나갔으며, 객석은 그가 안내하는 시(詩)와 노래의 세계를 동행했다. 남녀 가곡창 감상을 위해서는 각 장(章) 노랫말의 이해가 절대적이기에 이 노래를 간단하게 소개해 보기로 한다.
대여음(大餘音-반주악기들의 전주)
1장, 청조(靑鳥)야 오도고야,(청조야 오는구나)
2장, 반갑다, 님의 소식,
3장, 약수(弱水)삼천리(三千里)를 네 어이 건너온다(건너오느냐).
중여음(中餘音-반주악기들의 간주)
4장, 우리 님,
5장 만단정회(萬端情懷-만 가닥 그리운 정)를 네 다 알까 하노라.
주로 교육현장에서 후학들을 지도해 온 이승윤은 월하 스승의 교육방침이야말로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 자신이 국립국악원 연주단으로 활동할 당시에도 그러했고 그 이후, 나라 밖 대학 강단에서 우리의 가곡을 지도할 때나, 국립국악고교에서 정가(正歌) 전공 지도교사로 재직할 때나, 정년 퇴임 뒤에도 스승에게 배운 가곡의 가르침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가곡에 있어 음정도, 장단도 중요하지만, 단순한 기교나 기술의 전달이 아니라, 가곡을 대하는 태도나 그 정신이 먼저”라는 스승의 가르침이었다는 점이다. 그의 말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저는 평소 가곡이야말로 바른 마음과 절제된 자세에서 시작된다고 믿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지도하는 학생들에게도 재주나 기교를 앞세우기보다는 긴 호흡과 집중력을 강조했지요. 정가의 정신과 예술혼을 노래 속에 담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현장에서 터득한 그의 가곡 교육관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가곡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선비가 한 손에는 책, 또 한 손에는 악기를 들어 몸과 마음을 수양하던 음악을 오늘의 학생들에게 전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거나 간단치 않았어요. 낯설고 어려운 과정이기도 했고요.” 그뿐만 아니라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정좌(正坐)한 채, 긴 호흡으로 불러야 하는 가곡은 성과를 재촉하는 현시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어요. 늘 느끼는 점이지만, 가곡이야말로 긴 시간 속에서 무르익어야 하는 음악이잖아요.”
월하 스승이 세상을 뜬 뒤, 가곡을 대하는 그의 마음도 달라졌다. 더는 스승의 노래를 들을 수 없게 된 상실감 속에서, 오히려 전승의 책임은 더욱 뚜렷해졌다고 말한다. 아마도 스승에게 배운 노래를 바르게 보존하고 또한 올바르게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스승의 제자들끼리 모여서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는 다짐이 그 이후의 시간을 이끌었다고 담담하게 회고하고 있었다.
스스로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성품 뒤에는, 실로 탄탄한 공력과 화려한 음악적 성취가 자리하고 있다. 단정하고 깔끔한 발음, 긴 호흡으로 느린 악곡까지 원만하게 소화해 내는 그의 저력은 그간 쌓아온 성실한 경력과 치열한 공력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전국남녀 경창대회>, <소남상 전국 가곡경연대회>를 비롯해서 전국 규모의 경연에서 수상, <KBS 국악대상> 등의 경력도 화려하지만, 《국립국악원》 정가부문 연주단원 역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초청강사, <국립국악고교> 정가 전공 교사, 그 이후 《단국대》, 《추계 예술대》, 《한양대》 등에서 가곡을 지도하며 많은 후학들을 지도해 왔다. 그런가 하면,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중학교 음악교과서를 집필하였고, 중등 음악과 교사 자격연수회의 초청강사, 현재 단국대 초빙교수로 대학에서 가곡을 지도하고 있는 현역이다.
무대 위에서 부르는 가곡과 교실에서의 전승은 서로 다른 길 같아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방향으로 가는 길임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가객으로 보인다.
<다음 주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