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국립한글박물관의 총체적 위기

  • 등록 2026.06.04 12: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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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한류 시대, 근본 해결책을 찾아야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한류 열풍에 따라 세계가 한글,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훈민정음》 해례본(1446) 탄생지, 한글의 본고장으로 세계인이 몰려들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그 한복판에 있어야 할 국립한글박물관은 문이 닫혀 있다. 필자가 31일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을 때는 ‘관람객 수 세계 3위’라는 입간판과 더불어 곳곳에 관람객이 북적였지만 그 옆 국립한글박물관은 ‘휴관’ 안내판과 더불어 공사판 가리개로 접근조차 어려웠고 가리개 너머 그 모습이 을씨년스러웠다.

 

 

2025년 2월 1일 옥상 증축 공사 중 발생한 화재로 박물관은 휴관에 들어갔다. 2024년 10월부터 시작된 증축 공사 휴관까지 합치면 사실상 4년에 걸친 장기 폐쇄다. 박물관 측은 2026년 7월 착공, 2028년 10월 재개관을 목표로 175억 원 규모의 복구공사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9만 점에 달하는 소장 자료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세계문자박물관 등에 분산 위탁된 상태다.

 

한글 한류가 정점을 향해 가는 결정적 시기에 한글 대표 박물관이 4년 동안 문을 닫는다. 이 손실을 화폐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2026년은 훈민정음 반포 580돌, 한글날(가갸날) 제정 100돌, 훈맹정음 100돌이 겹치는 한글문화 큰잔치의 해다. 그 해를 박물관 휴관 상태로 맞이해야 한다는 것은 한국 문화행정사에 기록될 통탄할 일이다.

 

화재는 결과일 뿐, 본질은 따로 있다

 

이 사태를 단순한 안전사고로 보면 본질을 놓친다. 화재는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왜 개관 10년 만에 대대적인 증축 공사가 필요했는가? 그 답에 모든 문제가 응축돼 있다.

 

2014년 개관 당시 한글 단체들은 한글 종주국의 위상에 걸맞은 만 평(약 33,000㎡) 규모의 박물관을 요구했다. 그러나 실제 건립된 박물관은 연면적 11,322㎡, 곧 약 3,425평에 불과했다. 요구의 3분의 1 수준이다. 처음부터 좁았고, 처음부터 미완성이었다. 한글 자료는 해마다 늘어나는데 수장고는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교육ㆍ연구ㆍ전시 공간은 부족했다. 결국 개관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아 증축 공사에 들어가야 했고, 그 공사판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다시 말해 이번 사태는 2014년 개관 당시의 축소된 설계가 10년 만에 폭발한 구조적 모순의 결과다. 졸속 설계가 안전사고로 귀결된 것이다.

 

1~2년 남짓 관장, 그 자리에 비전이 깃들 수 있겠는가?

 

박물관은 양적으로는 성장했다. 직원 수가 100명을 넘는 규모로 커졌고 예산도 늘었다. 그동안 국립한글박물관이 이뤄낸 성과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한글 한류 시대에 박물관은 질적으로 더 성장할 필요가 있다. 세계인이 한글의 발상지를 찾아왔을 때 보여줄 수 있는 상설 콘텐츠는 지금 수준으로는 빈약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관장의 지도력이다. 위키백과 등에 정리된 역대 관장 임기를 보면 개관 11년 동안 최근 부임한 11대 관장을 빼면 관장이 10명이다. 평균 임기는 1년을 조금 넘는다. 1~2년 임기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부임해서 업무 파악하는 데 6개월, 사업 구상하는 데 6개월이면 임기가 끝난다. 중장기 비전, 학술 기획전, 국제 교류, 디지털 전환, 그 어느 것도 호흡이 짧다. 국립한글박물관이 한글 한류의 거점이 되지 못한 가장 큰 까닭은 바로 이 짧고 잦은 관장 교체의 누적 효과에 있다.

 

근본 해결책: 네 가지 방향

 

해결책은 명확하다.

 

첫째,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개방형 임용 방침에 따라 관장을 공모제로 전환해야 한다. 한글학ㆍ박물관학ㆍ문화행정 등에 대한 전문성과 전망을 가진 인사가 공개경쟁을 통해 선임되고, 임기 3년에 연임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국립중앙도서관, 국립국어원, 대한역사박물관 등 관계 기관도 이미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

 

둘째, 재개관을 단순 복구가 아니라 전면 재구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175억 원의 공사비를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에 따라, 2028년 박물관은 또다시 협소한 채로 다시 열거나, 한글 종주국의 명예를 회복하는 새출발이 되거나, 둘 가운데 하나가 된다. 터 확장, 분관 설치, 통합 수장 센터(파주시 탄현면) 활용, 디지털 한글박물관 고도화 — 이 모든 것을 종합한 종합계획이 필요하다.

 

셋째, 휴관 4년을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학술 총서 발간, 디지털 콘텐츠 구축, 국제 학회 유치, 지역·해외 순회전 강화 등으로 박물관은 건물이 닫혀도 기능은 살아 있어야 한다. 마침, 최근 임성환 11대 관장이 취임하였으므로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주기 바란다.

 

넷째, 충주 〈우리한글박물관〉을 세종시로 이전ㆍ수용해 제2국립한글박물관으로 격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충주 〈우리한글박물관〉은 김상석 관장이 40여 년에 걸쳐 모은 한글 문화ㆍ생활사 자료 5,000여 점을 소장한 채 2009년에 문을 연, 국립한글박물관보다 5년이나 앞선 우리나라 첫 한글박물관이다. 이곳에는 국립한글박물관이 갖고 있지 않은 귀한 한글 자료들이 다수 소장돼 있어 학계와 한글 운동 진영에서 그 값어치를 오래전부터 주목해 왔다. 그러나 개인 박물관의 한계로 전시 공간이 부족해 대다수 자료가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는 형편이다.

 

마침, 세종시는 화재로 휴관에 들어간 국립한글박물관의 임시 전시실 유치를 적극 추진하고, 장기적으로 세종박물관 터 안에 한글박물관 분관 설치까지 검토하고 있다. 〈우리한글박물관〉의 소장 자료를 세종시로 옮겨 나라가 인수ㆍ관리하는 제2국립한글박물관으로 재편한다면 다중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서울 본관의 휴관 4년 공백을 일정 부분 메울 수 있고, 한글 창제자 세종의 이름을 딴 행정수도에 한글박물관이 자리 잡음으로써 도시의 정체성과 한글문화의 상징성이 자연스럽게 결합한다.

 

또 개인이 평생을 바쳐 모은 귀중한 자료가 사장(死藏)되지 않고 국가 자산으로 보존ㆍ활용된다. 무엇보다 서울(용산)–세종 두 거점의 국립한글박물관 체제가 구축돼, 한글 한류 시대에 걸맞은 규모와 권역별 접근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2014년 개관 당시 좌절된 '만 평 규모'의 꿈을 단일 건물 확장이 아닌 분관 체제로 실현하는 길도 이로써 열린다.

 

한글은 우리만의 자산이 아니다

 

한글은 한국인의 글자에 그치지 않는다. 한글의 뿌리 훈민정음을 해설한 《훈민정음》 해례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며, 훈민정음은 인류가 가진 가장 정교한 글자 체계의 하나로 세계가 인정한 공동 유산이다. 그 본거지가 폐쇄된 채 4년을 흘려보내는 것은 한국 정부가 한글에 매기는 값어치의 척도를 의심받게 한다.

 

화재는 사고였지만, 사고를 부른 협소한 설계는 정책의 결과였고, 그 정책의 빈곤을 낳은 것은 짧은 임기의 행정가 관장 체제였다. 건물을 다시 짓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박물관을 운영하는 철학과 인사 시스템을 다시 짓는 일이다.

 

2026년, 훈민정음 반포 580돌과 한글날 100돌을 맞아 박물관 문이 닫혀 있는 모습이 부끄럽지 않은가? 2028년 재개관 때, 이 부끄러움을 회복할 단단한 기반을 지금부터 세워야 한다. 그 길은 셋이 하나로 모인다. 공모제 관장 도입으로 지도력을 바로 세우고, 서울–세종 양 거점 체제로 규모와 상징성을 확보하며, 휴관 4년을 한글 한류 시대를 준비하는 도약의 시간으로 바꾸는 일. 이것이 화재가 우리에게 던진 진짜 과제다.

 

* 이 의견은 《한글학》(경진출판)을 쓴 학자로서의 순수 개인 의견임을 밝혀 둔다.

 

김슬옹 교수 tomul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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