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구화산에 피어난 신라의 차꽃과 선향(禪香)

  • 등록 2026.06.12 11: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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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열전(3) 지장보살 김교각
[라석의 차와 시서화] 18

[우리문화신문=손병철 박사/시인]  

 

차는 단지 목을 축이는 잎이 아니다.

한 잔의 차 속에는 사람의 마음과 수행, 시대의 정신과 문화의 흐름이 함께 스며 있다. 그래서 차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한 시대를 밝힌 수행자의 향기를 만나게 된다.

신라의 김교각(金喬覺, 696~794).

중국 구화산(九華山)에 들어가 마침내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은 이 거룩한 승려는, 단지 불교의 수행자만이 아니었다. 그는 차를 통해 민중을 구하고, 수행과 노동을 하나로 엮어낸 동아시아 차문화사의 선구자였다.

 

많은 사람은 한국 차문화의 시작을 흥덕왕 3년(828) 김대렴이 당에서 차씨를 들여온 일에서 찾는다. 그러나 김교각은 그보다 무려 백 년 앞선 성덕왕 17년(719), 이미 신라의 차씨를 품고 당나라 구화산으로 들어갔다고 전한다. 이는 한국 차문화가 단지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문화가 아니라, 오히려 신라에서 중국으로 전해진 흐름 또한 있었음을 말해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단순히 차를 마시는 풍류를 즐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안휘성 구화산의 척박한 산중에서 그는 굶주린 백성들과 함께 밭을 일구고 차를 심었다. 수행은 곧 노동이었고, 노동은 다시 자비의 실천이었다.

 

후대 사람들이 이를 두고 “농선병행(農禪竝行)”이라 부른 까닭도 여기에 있다.

굶주린 민중이 몰려들자, 김교각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중생들이여, 우리도 저 넓은 땅에 농사를 지어 함께 먹읍시다.

굶어 죽는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법문이 없으리라.”

 

 

이 한마디는 선(禪)의 본질을 보여준다. 말로만 깨달음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차를 심고 밭을 일구며 생명을 살리는 일 속에서 불법을 실천한 것이다. 차는 그에게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자비의 양식이자 수행의 기운이었다.

 

《구화산지(九華山志)》에 실린 기록에 따르면, 김교각이 가져간 차는 훗날 “금지차(金地茶)”라 불리며 명성을 얻었다. 노호동(老虎洞) 절벽 위에 남아 있는 오래된 차나무는 지금도 그의 전설을 품고 있다. 줄기 속이 대나무처럼 비어 있다는 기록은, 마치 비움을 통해 향기를 얻는 선가의 마음을 닮아 있다. 후대의 문인들과 차인들은 이러한 김교각의 정신을 잊지 않았다.

 

 

송대의 문장가 주필대(周必大)는 김교각 탑전에 조석으로 차 공양을 올리는 광경을 보고 이렇게 감탄하였다.

 

“차향은 신비롭고, 그 맛은 천하일품이다.”

 

또 구화불차(九華佛茶)를 노래한 시에는 이런 구절이 전한다.

 

“봄 안개 속에서 돋아난 어린 찻잎은

바위 사이 선운(禪雲)을 머금고 자라나네.”

 

이는 단순한 자연의 풍경이 아니다. 구화산의 차는 곧 수행자의 정신이었고, 산 전체가 하나의 선방이었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신라의 무상선사 김화상(無相禪師 金和尙) 정중무상(淨衆無相) 또한 그러하였다. 그 역시 당나라 사천 땅에서 선과 차를 함께 펼치며 차를 수행의 일부로 삼았다. 후인들은 그의 선풍을 기려 “차를 마시는 것은 곧 마음을 씻는 일”이라 하였고, 차연(茶煙)이 피어오르는 풍경을 두고 “선심(禪心)이 구름 되어 산중에 머문다”라고 노래하였다. 당나라 시인들의 차시는 단지 풍류가 아니었다.

 

육우(陸羽)가 《다경(茶經)》을 통해 차를 도(道)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면, 신라의 승려들은 차를 삶과 수행 속으로 직접 스며들게 하였다.

 

무상은 선차(禪茶)의 길을 열었고, 김교각은 농선병행의 길을 열었다. 한 사람은 선심을 차향 속에 담았고, 또 한 사람은 자비를 차나무로 심었다.

그래서 구화산의 차꽃은 단순한 꽃이 아니다.

그것은 신라의 정신이 중국의 산천 속에서 다시 피어난 문화의 꽃이다.

 

구화산이 중국불교 4대 성산이 된 것은 산이 높아서가 아니다. 한 신라 승려가 그 산에 자신의 삶 전체를 심었기 때문이다. 그는 차나무를 심어 백성을 살렸고, 자비를 심어 지장신앙을 꽃피웠으며, 마침내 자신의 육신마저 등신불로 남겨 천이백 년 세월을 넘어 오늘의 사람들에게까지 향기를 전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화산의 차향은 단지 차의 향기가 아니라, 신라에서 건너온 한 수행자의 원력(願力)이 아직도 피워내는 선향(禪香)인 것이다.

 

그리고 그 향기는 천이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구화산의 안개 속을 떠돌며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고 있다. 차는 잎으로 남지 않는다. 차를 심은 사람의 마음으로 남는다. 구화산의 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금지차의 잎사귀마다, 아마도 아직 김교각의 선심과 자비의 숨결이 서려 있다.(대야산 기슭 불한산방에서)

 

 라석(羅石) 손병철(孫炳哲) 

 

북경대학 미학ㆍ철학전공 철학박사/시인

물파공간화랑 서울ㆍ북경 관장 역임

《라석심물시》, 《손병철시전집》 등 9권 시집 펴냄

국제복희역학회 회장, 한국불한선차회 회장

 

 

 

손병철 박사/시인 lasokso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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