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개인은 제 민족을 위해서 일함으로 인류와 하늘에 대한 의무를 수행한다.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차오. 훈훈한 기운이 없소.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세상을 만들어야겠소.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해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한 말이다. 일평생을 오로지 대한독립을 위해 뛰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을 미국 리버사이드라는 작은 도시에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미주도산기념관 건립 의미와 글로벌 한민족 미래교육 전략>이라는 주제의 국회 정책 세미나가 어제 9월 7일 아침 10시 30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를 주관한 사람들은 배현진(국민의힘), 김준혁(더불어민주당),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가 함께 했다.
세미나를 시작하기 앞서 배현진 국회의원이 개회사를 하고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곽도원(데이빗 곽) 회장이 환영사를 했다. 이어 김영삼민주센터 김덕룡 이사장과 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김재실 회장, 경기도 안민석 교육감이 축사를 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독립정신을 겨레가 이어가야 할 위대한 정신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축사에 이어 제1발제자인 장태한 UC Riverside 교수는 “도산 안창호와 미국 최초 한인 공동체, 파차파 캠프의 역사적 의미”라는 주제로 이야기했는데 장 교수는 “1905년 초, 도산의 주도로 한인들이 파차파 캠프 막사에 집단 거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파차파 캠프가 미국 대륙 최초 그리고 최대의 조직적 한인 집단 거주지라고 본다. 따라서 이곳에 안창호 선생의 기념관을 짓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제2발제자인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곽도원 회장이 “미주도산기념관은 미래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곽도원 회장은 “우리의 다음 세대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어떤 책임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파차파 캠프에 지을 기념관에서 배워야 한다. 또 파차파 캠프에 지을 기념관의 교육적 효과는 정체성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긍심ㆍ시민성ㆍ리더십 등을 아울러 얻을 수 있다.”하고 하면서 기념관은 단순히 기억의 공간이 아니라 교육의 공간이라고 했다.
마지막 발제는 김준혁 국회의원 순서였는데 국회의 다른 중요한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해 김선회 보좌관이 발제문을 대신 읽었다. 발제에서 김준혁 의원은 “첫째 도산 안창호 선생님 유족과의 충분한 소통이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미주 한인사회의 폭넓은 공감과 참여가 필요하다. 셋째 기념관의 위치와 건립 방식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곧 기념관은 무엇보다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어야 한다. 가령 LA 도심이나 LA총영사관 인근처럼 한인뿐 아니라 일반 시민과 방문객들이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 조성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이후 열린 종합토론에서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소병선 수석부회장은 “초기 한인들의 노동, 이민, 학교, 교회, 언론, 자치조직과 독립운동은 모두 미국 이민사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미주도산기념관의 궁극적인 질문은 ‘한국을 미국에 어떻게 알릴까’가 아니라 ‘미주 한인의 역사를 통해 미국과 세계를 어떻게 더 잘 이해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청중들의 질문을 받았는데 우리문화신문 양인선 기자는 신분을 분명히 밝히면서 다음 3가지 질문을 했다.
”첫째, 2018년, LA시내에서 광복절 행사에 참여한 뒤 리버사이드시에 가서 도산 안창호 동상을 보았다. 리버사이드시는 예쁘고 조그만 정겨운 도시였다. 그러나 접근성이 좋지 않은 거기에 도산기념관을 지었을 때 일반 관광객이 얼마나 찾을까 의문이다. 한국 방문객 또한 얼마나 될지도 걱정이다. 국가의 막대한 예산과 정책지원은 신중해야 하고, 지어놓고 관리 제대로 못 하면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
둘째, 도산의 외손자 필립안 커디 선생도 만났다. 그는 도산 안창호 기념관 건립 프로젝트에 대해 이를 기획하는 사람들을 보고 '도산을 팔고 있다'라는 표현을 했다. 후손이 생존해 있으므로 필립 선생과의 협력과 동의도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필립안 커디 선생은 장태한 교수가 쓴 《도산공화국》 책자에 꽤 많은 오류가 있다고 자세히 조목조목 밝히고 있는데 왜 정정을 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셋째, 리버사이드시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안창호 기념관을 새로 짓기보다는 유서 깊은 LA대한인국민회를 독립운동의 산실로서 보수 확장, 후세 교육 등에 돈을 쓰면 더 좋지 않을까?“
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이에 관해 제1, 제2 발제자와 토론자가 모두 나서서 답을 했지만,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답변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충무로에서 이날 세미나에 참석했다는 조지훈(28살, 대학원생) 씨는 “장태한 교수의 ‘파차파 캠프가 최초 한인 거주지였다는 것에는 수긍하기 힘들다. 한인의 미주 초기 집단 거주지는 하와이이며, 이후 본토로 건너간 한인들의 최초 집단 거주지는 샌프란시스코다. 이후 리들리나 새크라멘토 등도 대규모 한인 주거지이며 그에 견주면 리버사이드시의 파차파 캠프가 '최초 한인 거주지' 라고 주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백번 양보한다 해도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리버사이드 같은 도시에 거금을 들여 기념관을 짓는 것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제한된 시간상 청중들의 질의를 많이 들을 수 없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세미나를 지켜보면서 이날 행사를 통해 “미주 리버사이드에 막대한 국가 예산을 들여 도산 안창호 기념관을 지어야 한다.”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행사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미주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이번 국회 세미나를 추진한 사람들이 <리버사이드시 파차파 캠프에 740억짜리 도산 안창호 기념관 건립>을 기획하고 있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는 견해가 있다.
1902년 미국에 도착한 안창호ㆍ이혜련 부부독립운동가는 한인 자치 공동체 형성 및 권익 보호에 힘쓰는 한편, 190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인친목회를 이끌었고 1905년에는 미 본토 최초의 한인 정치ㆍ민족 운동 단체인 공립협회(共立協會)를 만들어 활동하는 등 미주지역 독립운동을 주도한 분으로 미주동포는 물론이요, 대한민국에서도 추앙받는 독립운동가다. 그러나 인공지능 시대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기념관을 기획 한다는 것은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이제는 있는 기념관도 골칫덩어리가 되어 가는 시대다.
그러한 예산이 있으면 '최초 한인 주거지'에 소규모 기념관을 지어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알찬 교육의 장으로 사용하는 한편, 수백억의 예산을 아껴 전 세계의 한인 2세들을 고국에 데려와 독립정신을 드높이는 사업에 썼으면 한다. 왜 미국에만 수백억의 국가 예산을 들여 도산 안창호 선생의 기념관을 지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