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광화문 한글현판 덧달기가 정말 어려운가?

  • 등록 2026.09.10 10:5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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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한글 현판 달기, 찬성쪽 이건범 대표에게 반대쪽 논리로 따져 봤다

[우리문화신문=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필자는 광화문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 달기 국민 모임 공동 대표로 이 안을 처음 제기하는 데 앞장선 사람이다. 문체부 장관이 나서고 주무 부서인 문체부 국어정책과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는 무엇인지 같은 공동 대표인 이건범 대표와 얘기를 나눠봤다. 지난 7월 26일 연세대 백양누리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행정안전부가 연 첫 ‘모두의 토론회’에서 나온 반대 의견의 문제는 무엇인지 함께 따져 봤다.

 

이날 반대쪽 발표를 맡은 이는 김현경 한국전통문화대 국가유산관리학과 교수다. 그 주장은 이렇게 간추릴 수 있다.

 

광화문은 역사 속에서 여러 번 무너지고 다시 세워졌다. 그때마다 현판도 바뀌었다. 그러나 언제나 하나만 골랐다. 지금 논의되는 한글 현판 추가는 그 변화들과 성격이 다르다. 이미 복원이 끝난 건물 위에 새 상징을 한 겹 더 얹는 일, 곧 ‘중첩적 개입’이다. 이것은 문화유산 보존의 원칙에 어긋난다. 새로운 뜻을 더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문화유산의 모습을 바꿀 수는 없다. 한글의 가치는 현판이 아니라 전시나 해설, 교육 같은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과 근거가 무엇인지 필자가 반대쪽 논리로 묻고 이건범 대표가 답하는 식으로 핵심 쟁점을 정리해 보았다.

 

 

- 반대쪽은 ‘중첩적 개입’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광화문은 바뀔 때마다 현판을 하나만 골랐는데, 이번 제안은 그 전례와 다르다는 겁니다.

 

  “그 걱정은 지나치다고 봅니다. 광화문은 진품인지 가려야 하는 고려청자도 아니고, 철통 보안 속의 모나리자도 아닙니다. 진품이 아니라 복원한 건물이에요. 그런데도 ‘진품을 훼손한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면 논의 자체가 어긋납니다.

 

역사적 건축물을 어떻게 보존하고 복원할지 정한 국제 기준으로 ‘베니스 헌장’(1964년)이 있습니다. 이 헌장도 복원하면서 무언가를 새로 더하는 일을 금지하지는 않습니다. 실제 사례도 있습니다. 프랑스 임금들이 대관식을 하던 랭스 대성당에는 1974년 샤갈의 작품이, 2011년에는 독일 작가 크노벨의 추상 작품이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갔습니다. 2019년 불이 났던 노트르담 대성당도 남쪽 예배당 스테인드글라스를 현대 작품으로 바꿔, 복원에 우리 시대의 흔적을 남기려 하고 있고요.”

 

- 하지만 ‘금지하지 않는다’와 ‘권한다’는 다릅니다. 반대도 같은 베니스장을 근거로 듭니다.

 

  “헌장을 끝까지 읽어야 합니다. 헌장은 새로 더하는 것을 막는 대신, 근거 없이 짐작해서 옛것처럼 꾸미지 말라고 합니다. 새로 만든 것은 새로 만든 것임을 알아볼 수 있게 하라는 것이지요. 그 잣대를 정직하게 들이대면, 진짜 문제는 한글 현판이 아니라 지금 걸려 있는 한자 현판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 도발적으로 들립니다. 근거는요.

 

  “지금 현판은 19세기에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걸었던 것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근거가 넉넉하지 않아요. 글씨 모양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희미한 사진에 기대어 서체를 짐작했고, 바탕과 글씨 색도 흰 바탕에 검은 글씨일 것이라고 짐작해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경복궁 영건일기》에서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였다는 대목이 나와 2023년에 다시 바꿨지요.

 

자료가 부족하면 짐작해서라도 그럴싸하게 되살리는 게 낫지 않느냐 싶을 겁니다. 하지만 베니스 헌장은 짐작에 기대야 하는 지점에서 복원을 멈추라고 합니다. 새로 무언가를 더하는 것보다, 원래 모습인 척하는 것이 진정성을 더 크게 해친다고 보는 겁니다.”

 

- 그렇다면 순서가 바뀐 것 아닙니까. 한자 현판의 근거가 부실하다면 그 근거를 보완하는 게 먼저지, 왜 한글 현판을 다는 것이 해법이 됩니까?

 

  “한자 현판을 떼자거나 다시 만들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베니스 헌장의 운영 지침을 보면, 나중 세대가 더한 것이라도 역사적 값어치가 있으면 그것 역시 진정성의 한 부분으로 봅니다. 지금의 한자 현판도 원래 모습과 닮아서가 아니라, 광화문에 그런 현판이 걸려 있었다는 역사적 맥락 덕분에 진정성의 일부가 되는 겁니다.

 

1994년 일본 나라에서 채택된 ‘나라 문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나중 세대가 일부러 고친 것까지 문화유산의 진짜 속성으로 받아들이고, 그 공동체의 정신과 감정까지 진정성을 재는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근거가 약한 한자 현판도 받아들일 수 있고, 같은 논리로 한글 현판을 더하는 일도 훼손이 아니라 진정성을 넓히는 일이 됩니다.”

 

- 바로 그 지점을 반대쪽이 걱정합니다. 나라 문서를 그렇게 끌어다 쓰면 ‘공동체가 원한다’는 까닭으로 어떤 손질이든 정당해지지 않겠습니까? 원형 보존이라는 원칙 위에 특정 값어치가 올라서는 순간, 다른 주장들도 줄을 설 거라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아무 데나 이럴 일은 아닙니다. 으뜸 상징 공간인 광화문 한 곳이면 넉넉하다는 것이 저희 입장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이 수정 자체가 진정성의 일부가 되고, 우리 시대의 흔적이 더해져 진정성은 더 풍부해질 거라고 봅니다.”

 

- 광화문에 한글 현판이 걸렸던 때도 있었습니다. 다만 그때는 한글 현판 ‘하나’였지, 한자와 나란히 건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대쪽이 “언제나 하나만 골랐다”고 지적하는 것도 그 대목입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난 것을 되돌리자는 게 아닙니다. 우리 시대의 층을 한 겹 더 쌓자는 겁니다. 역사적 건축물에 새 시대의 값어치와 공동체의 마음을 담아 역사의 지층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살아 있는 문화유산의 진화라고 생각합니다. 나란히 걸 것이냐 바꿔 걸 것이냐는 그다음 문제이고, 저희는 한자 현판을 존중하려고 나란히 거는 쪽을 택한 겁니다.”

 

- 반대쪽은 전시나 해설, 교육, 디지털 콘텐츠로도 충분하다고 합니다. 조별 토론에서도 ㅇ외벽영상(미디어파사드)이나 드론쇼 같은 절충안이 여럿 나왔습니다.

 

  “해설판과 현판은 무게가 다릅니다. 현판은 그 건물이 무엇인지 스스로 밝히는 이름표입니다. 이름표에는 쓰지 못하게 하고 옆에 설명만 붙이자는 건, 한글을 여전히 곁다리로 두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 하지만 그 논리를 뒤집으면 이렇게도 됩니다. 현판이 아니면 한글의 값어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도 지나친 전제 아닙니까. 사전 설문에서 97%가 한글을 대표 문화자원으로 꼽았습니다. 한글의 위상은 이미 인정받고 있는데, 그 인정이 꼭 현판이라는 형식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광화문은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의 정문입니다. 여기에 한글 현판을 더하는 일은 광화문이라는 문화유산의 정신적ㆍ공동체적 진정성을 높이는 길이자, 문화 독립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 대목에도 반론이 있습니다. 한자 현판을 그대로 둔다고 사대주의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한글의 값어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의견이 이날 토론에서 나왔습니다.

 

  “그렇게 보시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압니다. 저는 이것을 상징의 문제로 보고, 그분들은 실질의 문제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 차이는 토론으로 좁혀 가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은 것들

대담을 마치고 나니 오히려 양쪽이 합의한 지점이 또렷해졌다. 이날 토론회에서 찬반은 갈렸지만, 충분히 공론을 모으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는 데는 뜻이 모였다.

쟁점은 크게 둘로 좁혀진다.

 

하나는 광화문을 무엇으로 볼 것이냐다. 옛 자료로 확인해 복원을 마친 문화유산으로 볼 것인가, 우리 시대의 값어치를 담을 수 있는 국가 상징 공간으로 볼 것인가. 사전 설문에서 광화문을 문화유산으로 보는 응답과 시민의 일상 공간으로 보는 응답이 나란히 높았다는 사실은, 이 물음이 둘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더하기’와 ‘바꾸기’의 경계다. 이건범 대표는 한글 현판을 덧다는 일을 ‘더하기’라 부르고, 김현경 교수는 ‘중첩적 개입’이라 부른다. 같은 행위를 두고 이름이 갈리는 한, 논쟁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번 토론회 결과를 정책 검토에 참고하되, 누리집 의견 게시판과 전문가 의견 조사, 대국민 설문조사로 여론을 더 모으겠다고 밝혔다. 결론은 아직 나지 않았다.

 

훈민정음을 공부해 온 사람으로서 나는 두 가지에 각별한 무게를 둔다. 경복궁은 훈민정음이 태어나고 《훈민정음》 해례본이 지어진 공간이라는 점, 그리고 ‘광화문’이라는 이름 자체가 세종 때 집현전 학사들이 지어 올린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한자 현판을 그대로 둔 채 한글 현판을 덧다는 방안을 제안했다.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tomul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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