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손병철 철학박사/시인]
8. 한국의 새로운 실험 ― ‘패노메논‘과 상의 방향을 바꾸는 문화
한국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비판을 넘어 새로운 제도적 실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6년 7월 발표된 ‘패노메논(FANOMENON)‘ 계획은 팬(Pan)과 현상(phenomenon)을 결합한 이름 자체에서부터 새로운 문화적 방향을 보여 준다.
곧 새로운 팬덤현상에 주목한 것이다. 현재 발표된 계획에 따르면 2027년 12월 2일부터 12일까지 서울아레나와 고양 킨텍스에서 K팝 공연과 팬덤 시상,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 등을 결합한 대형 K컬처 행사가 추진된다.
특히 주목할 것은 팬덤을 시상하는 발상이다. 계획에 따르면 한 해 동안 가장 영향력과 열정을 보여 준 팬덤 공동체를 선정하고, 해당 예술가가 팬을 대신하여 상을 받는 새로운 방식이 구상되고 있다. POP 음악 수입국에서 K-POP 문화 발신국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상의 방향이 바뀐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기관이 가수에게 상을 주고, 가수는 팬에게 감사했다. 새로운 구상에서는 팬의 활동과 문화적 이바지가 하나의 상의 대상이 되고, 가수가 팬을 대신하여 그 상을 받는다. 이것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쌍방향의 거대한 팬덤문화 현상이다.
특히 ’누가 누구를 인정하는가?‘라는 문화적 질문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가수가 팬에게 박수받고, 팬이 다시 가수의 음악을 세계에 전달하며, 가수와 팬의 관계가 하나의 문화적 생태계를 이루는 구조. 이것은 심물철학의 관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실험이다. 그 구조가 일방적 전달보다 상호 순환과 공명을 중시하는 생태문화적 관계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도 중요한 조건이 있다. 한국이 미국의 중심을 대신하는 또 하나의 패권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서울이 새로운 세계의 꼭대기가 된다면 그것은 탈중심이 아니라 중심의 교체일 뿐이다. 패노메논(FANOMENON)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향한 더욱 창발적 사고와 개방적 실천이 요구된다.
진정한 탈중심은 서울과 로스앤젤레스, 파리와 자카르타, 상파울루와 라고스의 문화가 서로의 차이를 지닌 채 직접 연결되는 것이다. 패노메논의 미래적 값어치도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한국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는가가 아니라, 한국을 하나의 파동 중심으로 삼아 세계의 여러 문화가 서로 새로운 파동을 만들어 내는가에 있다. 기대해 볼만한 새로운 창조적 실험이다.
9. 활물과 심물망 ― 살아 움직이는 음악문명의 새로운 구조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오늘날의 문화는 과거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 움직인다. 음악은 음반이라는 물질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스트리밍 플랫폼과 알고리즘, 영상과 사회관계망을 통해 끊임없이 이동하고, 사용자의 반응에 따라 다시 새로운 경로의 물길을 만든다.
이러한 시대의 음악은 필자가 제시한 ‘활물(活物)‘의 개념으로 읽을 수 있다. 활물은 단순한 생명체가 아니다. 인간의 기억과 판단, 값어치와 감정이 기술과 사물 속에 스며들어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존재방식이다. 하나의 음악 역시 창작자의 마음이 기술과 소리라는 물(物) 속에 들어가고, 그것이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수많은 사람의 반응과 만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그리고 이러한 활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움직이는 관계의 장이 심물망(心物網)이다. 음악가와 팬, 승강장(플랫폼)과 알고리즘, 공연장과 도시, 언어와 기억이 하나의 거대한 심물 네트워크를 이룰 때, 문화는 어느 한 기관이 독점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신기운(新氣運)의 문명이 전개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 속에 들어가는 마음이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의 기운으로 작용한다. 인공지능이 음악을 추천하고, 알고리즘이 노래를 확산하며, 승강장이 세계의 청취자를 연결할 때, 우리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 무엇을 연결할 것인가. 어떤 기억을 남길 것인가. 누구의 목소리를 더 크게 들리게 할 것인가. 심물문명(心物文明)의 윤리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10. 심물지파의 물파미학 ― 중심이 아니라 파동으로 이해하는 예술
물파미학(物波美學)은 예술의 값어치를 하나의 중심에서 내려오는 명령으로 보지 않는다. 예술은 퍼지고, 부딪히고, 되돌아오며, 서로 다른 존재들 사이에서 새로운 공명을 만들어 내는 기운의 파동이다. 파동은 기운작용으로 마음과 공명한다. 감동이 없는 예술은 죽은 예술이다. 살아 있는 문화가 될 수 없다.
서울에서 만들어진 음악이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청년에게 도달했을 때, 그 청년은 더 이상 세계문화의 주변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음악을 자신의 언어와 삶의 경험 속에서 받아들이고, 춤과 영상, 글과 행동으로 다시 응답하는 공명의 순간 그는 새로운 파동의 출발점이 된다.
이를 심물지파(心物之波)라고 부를 수 있다. 예술을 통한 마음과 사물, 사람과 사람의 감응이다. 심물지파는 마음에서 시작된 파동이 물적 형식을 얻어 세계로 퍼지고, 다시 다른 마음의 감응을 통하여 새로운 물적 형식을 만들어 내는 순환의 파동이다. 그것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전파가 아니라, 수많은 지점에서 되돌아오고 다시 퍼져 나가는 공명의 운동이다.
따라서 물파미학의 세계에는 영원히 고정된 중심과 주변이 존재하지 않는다. 바람에 의한 파도가 다른 해안에 닿듯, 어느 한 지점에서 발생한 파동이 다른 지점에 닿으면, 그곳 역시 잠시 새로운 중심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21세기의 새로운 세계문화는 탈중심 시대를 맞고 있다. 그것은 ‘중심이 없는 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중심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다중심적 세계다.
11. 탈식민 시대의 새로운 대중문화
이러한 문화적 변화는 더 넓은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식민주의는 영토를 지배하는 데서만 작동하지 않았다. 언어를 서열화하고, 문화를 중심과 주변으로 나누며, 어느 나라의 예술을 보편적인 것으로, 다른 지역의 예술을 지역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방식 역시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따라서 탈식민은 과거의 지배자를 단순히 새로운 지배자로 바꾸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가 타인의 문화에 이름을 붙이고, 그 문화가 보편적 세계로 들어갈 자격을 일방적으로 심사할 수 있다는 권위주의 사고방식 자체를 넘어서는 것이다. 예술의 값어치를 특정 제도만이 일방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문화권력이 또 하나의 패권과 식민주의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BTS와 K팝이 세계적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서 한국이 새로운 문화제국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식민지 경험을 한 한국은 그 폐해(弊害)와 모순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히려 한국 문화가 경험한 가장 중요한 가능성은 자신의 언어와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세계의 다양한 문화와 직접 연결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제 K컬처가 해야 할 일 역시 세계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가 자유롭게 만나고 새로운 감응을 만들어 내는 심물망의 결절점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식민주의적 패권이나 인종적 우월주의의 종말을 의미한다.
서울은 세계의 유일한 중심이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중심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도시와 다른 언어, 다른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두고 연결될 때 진정한 탈중심의 새로운 심물혁명이 시작된다.
12. 새로운 시상제도가 지향해야 할 것
새로운 시대의 음악시상제도 역시 이러한 변화에 응답해야 한다.
첫째, 지역과 언어가 음악 장르를 대신해서는 안 된다. 문화적 뿌리는 존중해야 하지만, 그것이 작품의 보편적 평가를 가로막는 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전문성과 대중성은 서로 배제할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존해야 한다. 전문가의 평가는 예술적 깊이를 살피고, 대중의 감응은 실제 문화적 생명력을 현장에서 보여 줄 수 있다.
셋째, 팬덤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주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팬덤의 규모가 곧 예술적 값어치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며, 창의성과 공익성, 문화적 다양성 역시 함께 고려돼야 한다.
넷째, 기억의 권력 역시 개방되어야 한다. 누가 무엇을 기록하고 어떤 무대를 역사 속에 남길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특정 기관의 독점적 권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다섯째, 제도는 스스로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권위는 오류가 없는 권위가 아니라, 시대의 새로운 파동을 들었을 때 자신의 구조를 성찰하고 고칠 수 있는 권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은 시상식만의 문제가 아니다. 승강장과 방송, 인공지능 추천 시스템, 문화정책과 세계적 축제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 21세기 문화문명의 새로운 기준이다. 새로운 기준과 표준을 만드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많은 시행착오와 성찰을 거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