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손병철 철학박사/시인]
"그때 헌안대왕은 멀리서 제자의 예를 표하고,
차와 향을 예물로 보내 한 달도 거르지 않았다.
(時憲安大王 遙展攝齋禮
贄以茗馞 使無虛月)"
...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신라 말, 왕궁에서 성주산의 깊은 절까지 달마다 차와 향이 전해졌다. 그것은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하사품이 아니었다. 장차 왕위에 오를 사람이 산중의 선사를 스승으로 받들어, 제자의 예로 올린 공경의 예물이었다. 보내는 사람은 왕자였으나 마음은 제자였고, 받는 사람은 아무런 세속의 권세도 없는 수행자였으나 여섯 임금이 법을 묻던 큰 스승이었다.
차 한 봉과 향 한 자루에는 왕관보다 높고 깊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동방의 대보살, 무염 낭혜화상 무염(朗慧和尙 無染, 800~888)은 태종무열왕의 8대손으로 태어났다. 왕실의 혈통을 이었으나 세속의 영화를 쫓지 않고 열두 살에 설악산 오색석사에서 출가하였다. 부석사에서 《화엄경》을 공부한 뒤, 821년 바다를 건너 당나라로 들어갔다.
당시 당나라에서는 선종의 새로운 바람이 크게 일어나고 있었다. 무염은 여러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수행하다가 마곡산의 보철선사에게서 법맥을 이어받았다. 당나라에 머문 이십여 년 동안 그의 학문과 수행, 보살행이 널리 알려져 사람들은 그를 ‘동방의 대보살’이라 불렀다.
845년 신라로 돌아온 무염은 오늘날 보령의 성주사에 머물며 성주산문을 열었다. 권력과 명예가 아니라 마음을 곧바로 깨닫는 선법을 펼치자, 전국에서 수많은 수행자가 모여들었다. 문성왕에서 진성여왕에 이르기까지 여섯 임금이 그를 존경하여 법을 물었고, 문하에는 이천여 명의 제자가 모였다고 전한다.
그의 법명인 무염(無染)은 ‘물들지 않음’을 뜻한다. 세상의 온갖 빛깔 속에 살면서도 탐욕과 명예에 마음을 물들이지 않는 것이 선사의 길이었다. 맑은 물에 찻잎을 띄우되 물은 차의 향을 받아들이고, 차는 물속에서 제 향기를 온전히 드러내듯, 무염은 세상과 만나면서도 세속에 물들지 않았다.
왕자가 달마다 올린 차와 향
무염의 생애와 사상을 전하는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는 최치원이 왕명을 받아 지은 신라의 대표적인 금석문이다. 이 비문에는 훗날 헌안왕이 되는 왕자가 무염에게 제자의 예를 갖추었던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
왕자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차와 향을 예물로 보냈고, 그것을 한 달도 거르지 않았다. 한 번의 선물은 호의일 수 있지만, 달마다 이어진 공양은 마음의 서원이다. 봄의 새 차에서 여름의 짙은 향으로, 가을의 맑은 기운에서 겨울의 따뜻한 물로 계절이 바뀌어도 공경하는 마음은 끊어지지 않았다. 차가 귀하던 신라에서 왕실의 차는 높은 신분을 드러내는 물품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헌안왕은 그 귀한 차를 자기 권위를 위해 쓰지 않고 스승에게 올렸다. 차를 보내는 행위를 통하여 자신을 낮추고, 가르침을 구하는 제자의 자리에 섰다.
임금이 스승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순간, 차는 권력의 상징에서 구도의 매개로 바뀐다. 이 차를 ‘존사차(尊師茶)’라 부를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권력보다 높은 스승의 자리
헌안왕은 신라 제47대 왕으로 857년부터 861년까지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탑비가 전하는 차 이야기는 그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무염을 스승으로 받들었음을 보여 준다. 세속에서는 임금 자리가 가장 높지만, 정신의 세계에서는 진리를 깨우쳐 주는 스승의 자리가 더 높다. 왕자는 자기 신분을 앞세우지 않고 제자의 예를 다하였다. 차와 향을 올린 것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권력이 지혜 앞에 머리를 숙인 일이었다.
참된 왕도는 백성 위에 군림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현명한 이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데서 시작된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수 없고, 자신의 욕망을 비우지 못한 권력이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염이 왕자에게 전한 것은 정치적 술책이 아니라 물들지 않는 마음의 길이었을 것이다. 바깥세상을 바로잡기 전에 안의 마음을 밝히고,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더욱 자신을 낮추라는 무언의 가르침이었다.
차와 향에 담긴 마음
심물철학에서 차와 향은 물(物)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는 구체적인 예물이다. 그러나 그 물을 움직이게 한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心)이었다. 차만 보내고 마음이 따르지 않았다면 그것은 값비싼 물품의 이동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헌안왕이 차에 존경과 구도의 마음을 담았기에, 차는 왕자와 선사를 잇는 살아 있는 심물이 되었다.
왕자의 공경심은 차가 되어 산을 넘었고, 무염의 법은 다시 가르침이 되어 왕궁으로 돌아갔다. 마음이 물을 움직이고, 물이 다시 마음을 밝힌 것이다. 향은 피어올라 허공에서 사라지지만 그 향기는 사람의 마음에 남는다. 차는 마시면 형체가 없어지지만 그 맑은 기운은 몸과 정신에 스며든다. 차와 향은 사라짐으로써 오히려 뜻을 완성한다. 이는 형체 있는 물이 형체 없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심물순환(心物循環)의 모습이다.
헌안왕이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차와 향을 보낸 것은 한 번의 감동에 머무르지 않는 지속적인 수행이었다. 공경은 마음속 생각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이 반복되는 행동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한 사람의 덕이 된다. 처음에는 왕자의 마음에서 한 줄기 뜻이 일어났다. 그 뜻은 차와 향이라는 물에 담겨 성주산으로 향했다. 선사는 그 정성을 받아 법으로 응답하였고, 그 가르침은 다시 임금의 마음과 나라의 정치로 이어졌을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 차를 움직이고, 차가 두 사람의 인연을 맺으며, 그 인연이 수많은 제자와 백성에게 퍼져 나가는 것, 이것이 심물지파(心物之波)다. 파동은 향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끊임없이 멀리 번진다. 천여 년 전 왕자가 올린 차 한 봉의 의미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도 그 마음의 파동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금의 차, 제자의 마음
신라의 차문화에서 차는 부처에게 올리는 공양이었고, 임금과 귀족이 누리는 귀한 음료였으며, 선승의 정신을 맑히는 수행의 벗이었다. 낭혜화상 무염과 헌안왕의 이야기에 이르면 차는 다시 하나의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그것은 스승을 존경하고 진리를 구하기 위하여 올리는 존사차이다. 존사차의 귀함은 차의 품질이나 값에 있지 않다. 자신을 낮추는 마음, 가르침을 구하는 정성, 한 달도 거르지 않는 한결같음에 있다. 좋은 차를 한 번 올리는 것보다 변하지 않는 마음을 오래 지키는 일이 더 어렵고 귀하다.
무염은 임금의 차를 받았으나 권력에 물들지 않았고, 헌안왕은 왕자의 신분이었으나 스승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다. 한 사람은 무염의 청정함으로 법을 전하고, 한 사람은 공경의 마음으로 그 법을 받아들였다. 차는 두 사람 사이에서 말 없는 가르침이 되었다. 왕관은 한 시대의 권위를 나타내지만, 공경하는 마음은 시대를 넘어선다. 향은 허공으로 흩어지고 차는 한 잔 속에서 비워졌으나, 임금이 제자의 예로 올린 그 마음은 천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까지 남아 있다.
차를 올린 사람도, 차를 받은 사람도 이제는 없지만 그 공경의 향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진실한 마음으로 올린 한 잔의 차는 마시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밝히며 후세의 마음속에서 다시 우러난다. 그것이 낭혜화상 무염과 헌안왕이 우리에게 남긴 존사차의 깊은 뜻이다.
(2026.9.10. 불한산방에서 라석)
라석(羅石) 손병철(孫炳哲)
북경대학 미학ㆍ철학전공 철학박사/시인
물파공간화랑 서울ㆍ북경 관장 역임
《라석심물시》, 《손병철시전집》 등 9권 시집 펴냄
국제복희역학회 회장, 한국불한선차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