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토란 같은 가을의 맛 - 토란국

  • 등록 2026.09.12 11: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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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깨와 버섯을 만나 더 맛있고 든든해지는 가을 음식
[음식과 건강 9]

[우리문화신문=유용우 한의사]  ‘알토란 같다’라는 말을 흔히 쓴다. 내용이 충실하고 야무지며 실속이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알토란은 말 그대로 토란의 알뿌리다. 흙 속에서 토실토실하게 여문 토란의 모습을 보고 속이 꽉 찬 사람이나 물건을 알토란같다고 말한 것이다.

 

그 토란은 9월에 들어서면 제철을 맞는다. 예전에는 한가위 무렵이면 빠지지 않는 음식이었다. 햇토란을 캐어 국을 끓여 차례상에 올렸고, 쇠고기와 다시마를 넣고 푹 끓인 토란국은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음식이었다.

 

토란은 감자나 고구마처럼 전분이 많은 뿌리채소지만 맛과 식감은 사뭇 다르다. 잘 익힌 토란을 한입 먹으면 처음에는 담백하다. 그러다가 혀로 누르면 부드럽게 으깨지고 미끈하면서 포근한 질감이 느껴진다. 물컹한 질감이 반가운 거의 유일한 음식이지 않을까 한다. 따라서 토란은 강렬하게 맛있는 음식이라기보다는 국물의 맛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재료다. 그래서 토란은 무엇과 함께 끓이느냐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진다.

 

토란은 ‘까고 우려낸 뒤’ 먹는다

 

 

어릴 적 어른들이 토란을 손질할 때면 “토란을 깐다”라고 했다. 토란은 실제로 먹기까지 제법 손이 많이 간다. 먼저 흙을 씻고 껍질을 벗긴다. 그런데 맨손으로 토란을 까다 보면 손이 가렵거나 따끔거릴 수 있다. 생토란에는 옥살산칼슘 등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현미경으로 보면 바늘처럼 생긴 결정이 피부와 점막을 자극한다. 그래서 토란을 깔 때는 고무장갑을 끼는 것이 좋다.

 

껍질을 깐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깐 토란은 물에 담가두었다가 쌀뜨물에 한번 삶아내면 좋다. 삶은 물은 버리고 다시 씻어 국에 넣는다. 이렇게 하면 토란 특유의 아리고 떫은맛과 자극을 줄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우리 조상들이 음식을 만들어온 지혜다. 자연에서 얻은 모든 식물이 처음부터 사람에게 순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삶고, 어떤 것은 데치고, 어떤 것은 물에 우려내고, 또 어떤 것은 발효시켜 먹었다. 사람은 오랜 경험을 통해 식물의 거친 성질은 줄이고 좋은 맛과 영양은 취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토란을 ‘깐다’라는 과정도 그렇게 자연의 식물을 사람의 음식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토란국에는 왜 들깨가 들어가야 맛있을까?

 

나는 토란국을 먹을 때 들깨가루가 들어가야 비로소 맛이 완성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까닭을 생각해 보면 토란과 들깨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절묘하게 채워준다.

 

토란은 전분이 많고 지방은 적다. 맛은 담백하고 질감은 부드럽고 미끈하다. 반대로 들깨는 지방이 풍부하고 고소한 향이 강하다. 특히 들깨의 지방에는 알파리놀렌산을 비롯한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다. 토란의 부드러운 전분질에 들깨의 기름기가 더해지면 국물은 한층 부드럽고 농후해진다. 토란만으로는 조금 심심했던 맛에 들깨의 고소한 향까지 들어오니 음식의 중심이 잡힌다.

 

따라서 토란과 들깨의 궁합을 굳이 특별한 약리작용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토란은 부드러움을 주고 들깨는 고소함을 채운다. 탄수화물이 중심인 토란에 좋은 지방까지 더해지니 맛과 영양이 함께 보완되는 것이다.”

 

쇠고기와 버섯을 만나면 국물이 깊어진다

 

여기에 내가 하나 더 넣고 싶은 것이 버섯이다.

예전에 산에서 난 자연산 버섯 세 종류에 쇠고기를 넣어 끓인 국을 먹은 적이 있다. 무슨 버섯이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까지 먹어본 국 가운데 손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자연산 버섯의 깊고 복잡한 향이 쇠고기 국물과 그렇게 잘 어울린다는 것이 뜻밖이었다.

 

알고 보면 여기에도 맛의 원리가 있다.

쇠고기에는 이노신산 계열의 감칠맛 성분이 있고 버섯에는 구아닐산과 글루탐산 계열의 감칠맛 성분이 있다. 서로 다른 감칠맛 성분이 만나면 맛이 더욱 풍부하게 느껴진다. 특히 버섯의 향은 쇠고기의 적당한 지방과 만나 국물 전체로 퍼진다.

 

그래서 토란국을 조금 더 풍성하게 끓이고 싶다면 쇠고기와 표고버섯을 함께 넣어보길 권한다. 자연산 식용버섯을 확실하게 구할 수 있다면 두세 종류를 섞어도 좋겠지만, 일반 가정에서는 말린 표고버섯 몇 장이면 충분하다. 말린 표고를 불린 물도 버리지 말고, 육수에 사용하면 국물 맛이 더욱 깊어진다. 여기에 다시마를 조금 넣으면 감칠맛의 바닥이 만들어지고 마지막에 들깨가루를 풀면 한 그릇이 완성된다.

 

“토란은 부드러움을, 버섯은 향을, 쇠고기는 깊이를, 다시마는 감칠맛을, 들깨는 고소함을 보탠다.” 어느 하나가 다른 재료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음식이다.

 

가을의 시작에 토란을 먹는 까닭

 

맛있는 음식은 몸에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한의학에서 토란은 우두(芋頭)라 하여 예부터 음식이면서 약용으로도 이용했다. 비위를 편안하게 하고 소화를 도우며, 뭉친 것을 풀어주는 방향으로 활용해 왔다. 현대 영양학에서 보아도 토란은 전분을 비롯한 탄수화물이 주성분이고 식이섬유와 칼륨 등을 함유하고 있다. 특히 토란의 전분 입자는 비교적 작고 익히면 부드러워져 국이나 탕처럼 푹 익혀 먹기에 좋은 식재료다.

 

이러한 토란이 가을의 초입에 나오는 것도 흥미롭다.

한여름 동안 우리 몸은 더위를 견디느라 많은 에너지를 쓴다. 땀을 흘리고 찬 음료와 과일을 많이 먹으며, 더위 때문에 입맛을 잃기도 한다. 그러다가 9월이 되면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몸은 이제 열을 밖으로 내보내는 여름의 방식에서 벗어나 서서히 안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이때부터 음식도 달라진다.

수박이나 참외처럼 수분이 많고 시원한 여름 과일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땅속에서 여문 토란이나 고구마처럼 묵직한 음식이 식탁에 올라오기 시작한다. 여름 동안 지친 위장을 달래면서 다가오는 서늘한 계절을 견딜 에너지를 차곡차곡 채워가는 것이다. 토란국은 바로 그 경계에 놓여 있는 음식이다.

 

잘 깐 햇토란에 쇠고기와 버섯을 넣고 푹 끓인다. 부드럽게 익었을 때 들깨가루를 풀어 한소끔 더 끓인다. 뜨끈한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으면 토란은 입안에서 포슬포슬 풀어지고, 버섯과 쇠고기의 감칠맛 뒤로 들깨의 고소함이 남는다. 여름 음식이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음식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조금씩 몸을 채우는 음식이 필요하다.

 

“알토란처럼 속이 꽉 찬 토란 한 알. 가을이 시작되는 지금, 우리 몸도 그렇게 조금씩 속을 채워갈 때다.”

 

유용우 한의사 dolpha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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