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만에 완성한 한시(漢詩)

2013.05.19 11:30:06

[소병호의 한시 산책 2] 유성룡, 양희의 한을 풀어주다


십년 만에 완성한 “詩欲凍
(시욕동)


유치숙(柳痴叔)의 놀라운 예지력
 
서애(西崖) 유성룡(柳成龍)에게는 모자란 삼촌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를 유치숙 이라고 불렀다. 유씨네 집의 바보 아저씨란 뜻이다. 유치숙은 어느 날 느닷없이 서애를 찾아와 바둑을 한판 청했다. 서애는 당시 바둑계의 국수(國手)였다. 어이가 없었지만 상대가 숙부인지라 마지못해 응해 주었다. 치숙은 바둑알을 하나씩 딱딱 놓을 때 마다 무슨 뜻인지 모를 소리를 뇌까려댔다.

“딱!”
“설타음순시욕동!”
“딱!”
“매표가선곡생향!”
“조카 뭘 그렇게 꾸물대시나? 설타음순시욕동!”
“허허 주무시나? 매표가선곡생향!”첫판에서 겨우 한 점 차로 서애가 졌다. 한 판 더 두기로 했다.

“나를 모르면 죽어. 이놈아! 설타음순 시욕동!”
“죽긴 왜죽어? 여기 매표가선곡생향 나간다! 매표가선곡생향!”
치숙의 날궂이 같은 소리는 점입가경이었다.
서애가 또 졌다. 져도 크게 졌다.

“조카 이번엔 마지막 한판이네. 설타음순시욕동, 매표가선곡생향!”말끝마다 그놈의 소리. 귀가 마다하고 문을 닫을 지경이었다.
“설타음순이라 시욕동, 매표가선에 곡생햐~~ㅇ!”
막판을 두는 동안에는 숫제 그 날궂이 에다가 육자배기 가락까지 붙여 무당 푸닥거리 하듯 흥얼대다 막판이 끝났다. 서애는 집도 못 내고 불계로 졌다. 바둑인생 최초의 참패요 치욕이었다. 치숙에게 치욕을 당한 셈이다. 그제서야 서애는 숙부가 바보가 아니라 비범한 인물임을 알았다.

저승사자가 기다리는 곳으로
 
이튿날 대궐에서 급한 전갈이 왔다. 호남의 한 고을(일설에는 정읍)에 부임하라는 교지였다. 서애는 교지를 받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고을은 일년이상 관장자리가 비어 있는 유령의 고을이었다. 부임하는 관장마다 하룻밤을 못 넘기고 급사했다. 그러니 아무도 가려고 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서애는 죽을 각오로 부임했다. 영접을 나온 이속들의 표정이 시들하다.

‘내일아침 송장 칠 준비를 미리 해놓자’는 표정들이다.

한 밤중에 뒤가 마려워 측간에가 쪼구리고 앉아 끙끙 힘을 쓰고 있을 때 갑자기 무엇이 불알을 꽉 움켜쥔다.
“설타음순시욕동!” 못이 박히게 귀에 익은 소리! 순간! 서애의 입에서
“매표가선 곡생향!” 하고 반사적으로 대구가 튀어 나왔다.

그러자 주위가 환해지면서 젊은 선비 하나가 모습을 내타낸다.
“사또! 소생의 한을 풀어주신 이 은혜 백골난망이옵니다. 소생은 양희라 하옵니다.”

사연인 즉 이러했다. 양희는 살아생전에 글을 잘 지었는데 어느날 기발한 싯구가 하나 떠올랐다.
“설타음순시욕동”
그러나 이에 맞는 대구(對句)가 떠오르지 않아 그는 고민하다가 글 상사병에 걸려 죽었다. 그리하여 원귀가 되어 고을 관장에게 나타나 호소했으나 놀라서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서애는 죽은 선비의 원을 풀어주게 되었다.

눈송이가 읊조리는 입술에 지니 시가 얼어 붇는 듯 하고(雪墮吟脣詩欲凍,  설타음순시욕동) 
매화 꽃잎이 노래하는 부채에  나부끼니 곡조에 향기가 난다.(梅飄歌扇曲生香, 매표가선곡생향)

서애는 바보 숙부가 아니었으면 목숨을 잃었음에 틀림없다. 숙부가 바둑을 두는 동안 왜 그렇게도 집요하고 철저하게 세뇌교육을 시켰는가를 알 수 있었다. 유치숙은 저자에 숨어 사는 이인(異人)이었던 것이다.
<출전: 야사>

사실과 다른 이야기
 
위 이야기는 꾸며낸 것이다. 양희는 소시적에 매화를 완상(玩賞)하다가 설타음순시욕동이라는 싯구가 떠올랐으나 그 댓구가 영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냥 잊어버리고 말았다. 십여년이 지난 어느 날 밤 꿈속에 어떤 사람이 찾아와 왜 여지껏 그 시의 댓구를 짓지 않느냐고 힐문하면서 ‘매표가선 곡생향’ 이라고 지어 주었다.
양희는 꿈을 깬 후 두 귀에다 여섯구를 보태 칠언율시를 지어 10여년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 양희는 청나라에 동지사로 다녀오는 길에 옥하의 객관에서 병사했다.
<출전 : 대동기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歲寒盟
(세한맹)

1)幽人要結2)歲寒盟
○○ㄱㄱ ㄱ○◎
獨訪江樓興轉狂(陽)
ㄱㄱ○○ㄱㄱ◎
雪墮吟脣詩欲凍
ㄱㄱ○○○ㄱㄱ
梅飄歌扇曲生香(陽)
○○○ㄱㄱ○◎
人從3)銀漢橋邊過
○○ ○ㄱ○○ㄱ
月掛瓊瑤宮裏涼(陽)
ㄱㄱ○○○ㄱ◎
明日日高風正急
○ㄱㄱ○○ㄱㄱ
招魂何處覓餘芳(陽)
○○○ㄱㄱ○◎
(유인요결세한맹)
 
(독방강루흥전광)
 
(설타음순시욕동)
 
(매표가선곡생향)
 
(인종은한교변과)
 
(월괘경요궁리량)
 
(명일일고풍정급)
 
(초혼하처멱여방)

벼슬이 싫어 숨어살리라 굳게 다짐하고
홀로 강루에 오르니 미친 듯 흥이 인다.
읊조리는 입술에 눈발이 날리니 싯구가 얼어붙고
노래하는 부채 끝에 매화가 나부껴 곡조가 향기롭다.
사람들은 은하를 따라 건너고
달은 섬궁에 걸려 서늘하구나.
내일 해가 높이 뜨고 바람이 급히 불면
어디서 넋을 불러 남은 향기를 찾으리?

 

Pledging to hide.

 
A hermit I reject the world pledging to hide,
I visit alone the tower by the river I feel rapturous pleasure.
Snow hits my murmuring lips, freezing the verses of my poetry,
The singing fan of ume flowers flow adding the aromatic melody.
People want to follow the Milky Way but only can cross a bridge,
While the moon hangs in the heavenly hermit’s house cooling.
When the sun rises high and the sudden wind blows tomorrow,
Where can we summon the spirit to find the scent remaining?
Yang Hui, (1515 ~ 1580) Passed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작자(作者)약력
양희(梁喜) :1515(중종10) ~ 1580(선조13). 자는 구이(懼而). 호는 구졸암(九拙菴). 본관은 남원. 노정 ․ 이후백과 더불어 도의와 학문을 닦아 영남 3걸로 일컬어졌다. 명종 1년(1546)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지평․목사․승지를 거쳐 장례원 판결사를 역임. 1580년 동지사로 청나라에 갔다가 옥하의 객관에서 병사. 이조판서에 추중되었고 구천사(龜泉寺)에 배향되었다.


▣주해(註解)

1) 유인 : 은자 숨어사는 사람. 2) 세한 : 추운계절. 역경. 굳은 절조. 늘그막

※ 세한맹 (盟) : 미상.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절조를 지키며 살겠다는 다짐(?) 3) 은한 : 은하수
 





 

 

제산 기자 hwang68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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